(68) 유교와 불교의 ‘우주관’을 듣고, 집을 둘러보니 전과 달라보였다

2017.12.01 21:14 입력 2017.12.01 21:29 수정

김봉렬 한예종 총장과 안동 병산서원·봉정사

명사 70인과의 동행에 참가한 답사객들이 지난 25일 경북 안동 병산서원 입교당에 앉아 김봉렬 한예종 총장(가운데)의 설명을 듣고 있다. 병산서원 교장의 자리에서 바라본 병산은 입교당 기둥과 만대루를 통해 자연스레 나뉘어 드러난다. 안동 | 김영민 기자 viola@kyunghyang.com

명사 70인과의 동행에 참가한 답사객들이 지난 25일 경북 안동 병산서원 입교당에 앉아 김봉렬 한예종 총장(가운데)의 설명을 듣고 있다. 병산서원 교장의 자리에서 바라본 병산은 입교당 기둥과 만대루를 통해 자연스레 나뉘어 드러난다. 안동 | 김영민 기자 viola@kyunghyang.com

오전 7시30분, 버스는 경부고속도로로 미끄러져 들어갔다. 바깥 기온은 영하 2도. 쌀쌀한 날씨 속에 참가자들은 새벽부터 서둘렀다. 지난 25일, 경향신문 창간 70주년 기획 ‘명사 70인과의 동행’ 68번째 목적지는 경북 안동의 병산서원과 봉정사다. 답사를 이끈 김봉렬 한국예술종합학교 총장은 “1교시는 휴강”이라면서 “다들 눈 좀 붙이시라”고 했다.

답사 주제는 ‘건축을 통해 바라보는 두 가지 시선’이다. 조선 후기 성리학적 세계관을 대표하는 병산서원과 고려시대 불교적 세계관을 대표하는 봉정사를 둘러보기로 했다. ‘휴강’ 선언과 함께 버스 안 불이 꺼졌다. 이어폰을 꽂았다. ‘볼빨간사춘기’의 노래 ‘우주를 줄게’가 흘러나왔다.

‘별빛 아래 잠든 난 마치 온 우주를 가진 것만 같아~. 난 그대 품에 별빛을 쏟아 내리고 은하수를 만들어 어디든 날아가게 할 거야~.’

가사 그대로, 모든 연애는 우주적 사건이다. 연애가 시작되는 순간, 온 우주가 내 안에 들어온다.

버스는 충주휴게소에 들렀다. ‘휴강’이었던 1교시가 끝났다. 김 총장이 마이크를 들었다. 건축은 지어질 당시의 세계관이 반영된 종합예술이다. “조금은 알고 보시는 게 좋다”고 시작한 김 총장의 강의가 이어졌다. ‘한예종 3대 명강의’로 꼽히는 김 총장의 강의는 폭이 넓으면서도 깊이를 빠뜨리지 않았는데, 흐름이 편안해 귀에 감겼다. 역사와 종교, 철학을 넘나드는 지식의 파노라마가 펼쳐졌다. 창밖에 전날 내린 눈으로 눈꽃이 흐드러졌는데, 아무도 창밖을 볼 수가 없었다.

“현자들이 탄생한 시기가 기원전 5세기, 6세기 언저리입니다. 청동기 사회가 철기 사회로 바뀌던 시기였지요. 청동검은 길어야 30㎝ 정도예요. 더 길면 무르고 부러져요. 그걸로는 찌르기밖에 할 수 없단 말이에요. 공격이 점으로 이뤄집니다. 사회관계도 점이던 시절이지요. 중국으로 치면 춘추시대쯤 됩니다. 철기문화가 들어오면서 상황이 바뀝니다. 철검은 1m가 넘어요. 휘두르는 무기입니다. 점이 아니라 공간의 형태로 전쟁이 벌어집니다. 상대를 끝장내는 전쟁이 가능해집니다. 철기를 만들기 위한 정치경제적 집중도 이뤄집니다. 중국이 전국시대를 넘어 진나라로 통일되는 시기입니다.”

고타마 싯다르타의 시대도 그때였다. 청동기에서 철기로 넘어가면서 침략과 살육 전쟁의 규모가 커졌다. 죽음에 대한 태도가 바뀌던 시기였다.

싯다르타의 세계관은 혁명적이었다. “고통은 욕망에서 오는 겁니다. 욕망을 극소로 줄이면 고통이 줄고 행복이 늘어나는 거죠. 욕망을 줄이려면 다 버려야 돼. 버리고 또 버려도 버릴 수 없는 게 있죠. 그게 바로 목숨이고, 나라는 존재입니다. 그걸 더 파고 들어가요. 존재는 감각의 총체다. 인식론으로 넘어갑니다. 불교적으로 ‘식(識)’이라고 표현하는데, 더 파고들어가면 잠재의식까지 가요. 그걸 10번 타고들어가는 게 십연기설이에요. 궁극적으로 가면 아무것도 없는 ‘공(空)’의 세계로 가는 거죠. 이걸 깨달아야 해탈에 이르는 거고. 어렵죠?”

나에서 공으로 가는 해탈의 길에 계급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게 바로 싯다르타의 혁명적 사상 ‘사성평등’이라는 얘기다. 불교는 이 지점에서 대중종교를 향한다. 모두가 내가 되고 만인이 해탈에 이를 수 있는 세계. 윤회의 우주적 전환이 이뤄진다. 김 총장의 설명이 이어진다.

“어차피 윤회는 해야 돼. 그런데 여기 사바세계에서 윤회는 별 게 없어. 아무리 금수저로 태어나도 인생은 고통이잖아요. 지금 우리 주변의 재벌들 보세요. 돈이 많다고 행복할까요. 2500년 전 인도 사람들이 생각합니다. 다른 세계, 다른 우주에서 태어나고 싶다. 사바세계에서 서쪽으로 백만억 불국토를 지나가면 거기에 서방정토가 있어요. 한 불국토가 은하계인 거예요. 공간적으로 윤회하겠다, 지금으로 치면 저기 안드로메다 성운에 있는 외계인으로 태어나겠다, 이런 생각을 한 거죠. 그런 불국토가 3000개 정도 만들어져요. 하나의 불국토에는 한 명의 부처가 계시다는 세계관. 사바세계에는 석가모니 부처, 서방정토에는 아미타불, 연화장에는 비로자나불. 이게 불교와 사찰을 이해하는 가장 중요한 포인트예요. 1세1불설. 어려운 얘기를 이렇게 쉽게 전달하는 자도 별로 없어요.” 꽃비가 내린다는 극락세계처럼 버스 안에 웃음꽃비가 내렸다.

불교의 우주 속에서 헤엄치고 있을 때 어느덧 버스는 병산서원에 도착했다. 서애 류성룡(1542~1607)의 위패를 모시는 서원이다. 김 총장이 마이크를 잡았다. “오후에 갈 봉정사는 ‘천등산 봉정사’예요. 봉정사를 안고 있는 뒷산이 천등산이기 때문이죠. 병산서원의 뒷산은 화산이에요. 화산은 하회마을의 주산입니다. 병산은 서원 앞에 있는 산이에요. 병풍처럼 생긴 산이죠. 절은 뒷산의 이름을 붙이고, 서원은 앞산의 이름을 붙였습니다. 이게 두 건물의 가장 중요한 차이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불교의 우주와 유교의 우주가 다르기 때문이다. 공자 시절의 유교는 통치학이자 윤리학이었다. 당나라를 지나 주자의 시대에 오면서 유교가 성리학이 되고, 죽음 이후의 세계에 대해 설명하며 종교적 색채를 띤다. 고등종교가 되기 위해서는 죽음을 직면하는 존재의 불안에 해답을 내릴 수 있어야 한다. 인간은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 주자는 사람이 수태가 되는 순간 육체가 만들어지고 하늘(天)의 혼(魂)과 땅(地)의 백(魄)이 어우러져 접합이 되면서 특별한 인간이 태어난다고 생각했다. 인간은 개별적 존재로서의 유일하고 특별한 우주다. 죽음은 육체로부터 혼과 백이 떠나 흩어지는 과정이다. 내세는 없다. 영원으로 가는 길은 군자가 되는 길이다. 이치를 깨달아 실행하는 이가 군자다. 김 총장은 “여기서 깨달은 자(人)와 깨닫지 못한 자(民)의 구별이 발생한다”고 설명했다.

성리학의 세계는 인과 민의 세계다. 모든 것은 인을 중심으로 돌아간다. 답사객들은 병산서원의 강의실이라고 할 수 있는 입교당 위에 올라 앉았다. 가운데는 교장(人)의 자리, 왼쪽과 오른쪽이 학생(民)의 자리다. 김 총장의 설명이 이어진다.

“본말이 전도되면 안된다는 말 들어보셨죠? 조선 후기 성리학은 본(本)과 말(末)을 구분하고 본에 집착하는 학문으로 바뀌었어요. 옷의 본질은 뭘까요. 피부 보호. 디자인, 색깔 이런 건 다 말에 해당하는 거죠. 그러니까 조선 후기 옷은 기껏해야 흑백, 디자인이랄 게 없어요. 고려시대에는 남자 상의 종류만 20가지가 넘었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집의 본질은 뭘까요. 비만 피하면 되는 거죠. 유교 건축은 단청, 장식 이런 게 없어요.”

경북 안동 봉정사 극락전의 모습. 측면 지붕 밑 목조부재가 화려하게 드러나는 고려 건축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다. 안동 | 김영민 기자 viola@kyunghyang.com

경북 안동 봉정사 극락전의 모습. 측면 지붕 밑 목조부재가 화려하게 드러나는 고려 건축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다. 안동 | 김영민 기자 viola@kyunghyang.com

세계관을 이해한 뒤 바라본 건축은 이전과 달라졌다. 건축은 우주를 담는다. 성리학 건축에서 집은 그릇이었다. 사람을, 자연을 담는 것이 본질이다. 담기 위해서는 비어 있어야 한다. 입교당에서 바라보는 널찍한 건물이 병산서원을 빛나게 만드는 ‘만대루’다. 교장의 자리에서 만대루를 통해 바라본 병산은 지붕과 기둥으로 분할돼 새로운 맛을 낸다. 지붕 위 하늘과 기둥 사이로 보이는 땅, 그 밑을 지나는 사람들로 천(天), 지(地), 인(人)이 완성된다. 병산을 보는 건물이라서 병산서원이다. 김 총장은 “종법적 위계질서를 강조하는 유교 건축물은 반드시 인(人)의 자리에서 봐야 의미를 알 수 있다. 제가 지금 앉아 있는 자리”라고 말한 뒤 자리에서 일어났다. 답사객들이 그제서야 그 자리에 앉아서 밖을 봤다. 맛이 달랐다.

조선 후기 성리학의 본(本)에 대한 집착은 사회경제적 구조 변화와 맥이 닿는다. “임진왜란 때 국내총생산의 80%가 사라졌어요. 경제적으로 궁핍해지니까 사상적으로도 더욱 근본에 집착할 수밖에 없었죠. 음식의 본이 뭘까요. 허기만 때우면 되는 거예요. 음식의 맛은 말(末)이니까 발전할 수가 없었죠. 전 간고등어를 별로 안 좋아해요.” 김 총장의 설명에 답사객들이 무릎을 쳤는데, 점심식사는 아니나 다를까. ‘안동 간고등어’다.

식사를 마치고 봉정사를 향했다. 굽이굽이 길을 따라 올라 봉정사 입구에 내렸다. 앞서 설명한 불교의 세계, 불국토의 세계로 들어가는 입구다.

고려 때 세워진 봉정사 극락전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건축물이다. 그런데 막상 앞에 서니 별 감흥이 없다. “봉정사를 고칠 때 고증이 덜 됐어요. 이른바 ‘박조시대’ 때잖아요. 육영수 여사가 좋아했다는 계란색으로 온통 칠해놓으면 칭찬받던 때예요,” 이질감은 그래서였다.

극락전을 제대로 보려면 옆으로 돌아야 한다. 넓은 정면은 기둥이 4개인데, 좁은 측면에 기둥 5개를 넣었다. 벽 위쪽 공포 등 목조 부재들이 빽빽하면서도 화려하게 달렸다. 김 총장은 “고려시대 건물은 ‘뼈대 미인’으로, 실내에도 천장 치는 대신 기둥과 공포를 그대로 드러냈는데, 그 미적 감각이 대단하다”고 했다.

역시 우주관의 차이다. 불교의 우주는 ‘1세1불’의 우주다. 하나의 세상에 하나의 부처가 있다. 하나의 건물이 그 자체로 세계다. 완성에 대한 열망이 다르다. “고려시대 공예가 발달한 이유예요. 장인들은 물건 하나를 만들 때 그 자체를 우주, 세계로 생각한 거죠. 완벽하게 만들어야 하는 거예요. 건물은 물론, 창살 하나, 문고리 하나를 만들어도 그 자체로 하나의 우주를 만들려고 했어요. 고려시대를 대표하는 고려청자는 그렇게 만들어졌습니다.”

사찰 건물들은 그래서 위계가 없다. 극락전 앞에 마당이, 대웅전 앞에 또 마당이 있다. 각각의 절이 각자의 부처를 모시고 있다. 절이 모여 절을 만든다. 화엄경의 핵심 사상인 부분이 전체고, 전체가 부분이라는 우주관이 봉정사 가람 배치에 오롯이 담겼다.

대웅전 오른쪽에 난 길을 따라가면 영산암이 나온다. 조선말기 건축물이다. 영화 <달마가 동쪽으로 간 까닭은> 촬영지였다. 입구 문에 ‘우화루(雨花樓)’라는 현판이 걸렸다. 극락에 내린다는 꽃비다. 극락으로 가는 길인데 입구가 좁았다. 김 총장의 설명이 귀에 쏙 들어온다. “조선시대에 억불정책이 있었잖아요. 절에 있어 양반들은 귀찮은 존재였어요. 승려들은 노비 취급을 당했죠. 그래서 암자 입구가 좁아요.”

영산암 마당에 들어서자 탄성이 쏟아졌다. 오른쪽으로 치우친 입구가 마당으로 연결되면서 대각선으로 발길과 눈길을 끈다. 김 총장은 “1로 만들었으나 √2의 공간 깊이를 만들어내는 기막힌 구성”이라고 했다. 층이 나뉜 마당은 한쪽에 솟은 소나무 그림자로 층위를 가르고 나눴다가 다시 모은다. “그림자라는 허상으로 실상의 공간을 바꾸는 효과”란다. 마당 가운데 서서 몸을 한바퀴 돌리면 1층이었던 공간이 2층이 됐다가 다시 1층으로 이어진다. 마치 모리츠 에셔의 그림 한가운데 서 있는 듯한 환상적인 경험. 삼성각 앞 길게 뻗은 툇마루에 앉아있노라면 자연스레 선의 세계에 빠진다. 김 총장은 “불교의 선(禪)을 건축적으로 가장 잘 드러낸 곳”이라고 했다. 그래, 여기가 바로 우주다. 오는 길 들었던 ‘온 우주를 가진 것만 같아’라는 가사가 주는 기시감. 돌아오는 버스 안, 모처럼 가슴이 부풀었다.

[명사 70인과의 동행] (68) 유교와 불교의 ‘우주관’을 듣고, 집을 둘러보니 전과 달라보였다

추천기사

바로가기 링크 설명

화제의 추천 정보

    오늘의 인기 정보

      추천 이슈

      이 시각 포토 정보

      내 뉴스플리에 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