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달곰하다, 구수하다…한여름의 양구

2019.08.05 21:30 입력 2019.08.05 21:33 수정
김진영 식품 MD

양구 5일장

양구에는 한 가지 메뉴만 팔면서 뛰어난 맛을 내는 식당이 여럿이다. 가볍고 고소한 콩물로 말아내는 콩국수(위)나 건더기가 듬뿍 담긴 육개장(아래) 한 그릇을 먹기 위해 기꺼이 양구 오일장(가운데)을 찾을 만하다.

양구에는 한 가지 메뉴만 팔면서 뛰어난 맛을 내는 식당이 여럿이다. 가볍고 고소한 콩물로 말아내는 콩국수(위)나 건더기가 듬뿍 담긴 육개장(아래) 한 그릇을 먹기 위해 기꺼이 양구 오일장(가운데)을 찾을 만하다.

5·10일에 장이 서는 강원도 양구에 가려고 마음먹었더니 날짜가 7월29일이다. 평소에는 장이 서는 날만 알아보고 별 생각 없이 출발했지만 이번에는 서둘렀다. 7월 말은 휴가철이다. 명절과 새해 첫날 다음으로 차량 정체가 심할 때다. 오전 6시 조금 넘어 춘천 가는 고속도로를 탔다. 평소 같으면 통행 불가인 3차로 가변차선에 운행 가능하다는 표시가 들어와 있다. 새벽부터 휴가 떠나는 차가 많았다. 평소처럼 여유롭게 출발했으면 아마 두 시간 이상을 더 길 위에서 보냈을 것이다.

■ 고랭지 채소의 우월함

양구 읍내에 있는 중앙시장 주차장 자리에 오일장이 선다. 한눈에 장이 다 보일 정도로 규모는 다른 장터와 비교해 작다. 외지에서 들어오는 이보다는 지역 주민을 위한 장이다 보니 크지 않다. 강원도 내륙에 있는 까닭에 규모에 비해 생선이나 건어물을 파는 어물전이 많다. 읍내에 있는 슈퍼마켓 냉장고에도 생선이 있지만 손으로 만지고, 소금 쳐주고, 살갑게 이야기하는 맛까지 더해져 호떡집보다 어물전이 더 바빴다.

제주·영월의 맛을 합친 양구 메밀전병은 내 입맛을 맞춘 완벽한 ‘삼합’

양구 메밀전병

양구 메밀전병

강원도 장터답게 메밀전병이 있다. 전병 굽는 할머니 주변으로 동네 분들이 앉아 나누는 도란도란 이야기 속에 뚝딱뚝딱 전병이 만들어졌다. 그냥 지나치다가 멈춰 메밀전병을 주문했다. 메밀 반죽을 얇게 부치고 속을 넣는 것은 같지만 그 속이 달랐다. 제주 메밀 총떡은 무를 볶아서 넣는다. 영월 메밀전병은 볶은 김치를 넣었다. 제주와 영월의 맛을 합치면 좋겠다 싶었는데 양구 메밀전병이 딱 내 마음을 알아줬다. 양구 메밀 전병의 소는 채를 썬 무를 매콤하게 무친 것이다. 고소한 기름 맛, 구수한 메밀전병, 매콤 새콤한 소, 완벽한 삼합이었다. 바로 부친 감자전이나 녹두전을 더하면 간식으로 그만이다.

강원도 하면 감자나 옥수수, 고랭지 배추가 유명하다. 많이 재배하거니와 배추 같은 경우는 한여름 기온이 높은 곳에서는 자라지 못하기에 해발고도가 높아 상대적으로 서늘한 강원도에서만 생산이 된다. 감자나 옥수수 재배도 많지만 그밖에도 여름철 강원도에서는 다양하고 맛있는 농산물이 난다. 낮 기온이 30도가 넘어도 밤 기온이 25도 이하로 떨어지면 과일과 채소가 단단해지고 단맛이 든다. 낮에 광합성으로 만든 에너지를 시원한 밤바람이 당분으로 바꾼다. 한여름 강원도가 있기에 그나마 맛있는 채소나 과일을 먹을 수 있다. 그래서 다들 고랭지, 고랭지 하는 게다.

■ 7월 양구의 달곰한 맛

후숙한 멜론이 부드럽다면 하미과 멜론은 아삭, 단맛의 여운은 길다

최근 양구에서 생산되는 ‘하미과’ 멜론은 후숙 없이 냉장고에 두었다가 바로 먹어도 아삭한 단맛이 일품이다.

최근 양구에서 생산되는 ‘하미과’ 멜론은 후숙 없이 냉장고에 두었다가 바로 먹어도 아삭한 단맛이 일품이다.

7월의 양구는 달곰하다. 멜론은 겉모양에 따라 네트(net)와 무네트 멜론으로 나눈다. 네트 멜론은 표면에 그물 모양이 있는 멜론이고, 무네트는 무늬가 없다. 무네트 멜론 중에서 껍질 색이 노란 ‘양구멜론’이 있다. 양구멜론은 청양고추와 같다. 청양고추가 처음 나왔을 때 충남 청양에서 생산한 것이라 여긴 사람들이 많았다. 시간이 지나면서 매운 고추의 일종이라는 것이 알려졌다. 양구멜론도 마찬가지다. 영(young)의 일본식 발음 양그를 양구로 발음하면서 양구산 멜론처럼 여겨졌다. 초창기에는 양구멜론 재배를 양구에서 많이 하기도 했지만, 요즘은 네트 멜론을 많이 생산한다고 한다. 연한 초록빛이 도는 머크스멜론이 네트 멜론의 대표 품종이다. 최근에는 과육 색이 주황빛인 캔털루프 멜론을 경북 지역에서 생산하면서 여러 멜론을 맛볼 수 있게 됐다. 양구에서 생산하는 ‘하미과’ 멜론이 최근 추가되면서 더 다양해졌다. 멜론은 수확한 뒤 며칠 두고 후숙을 해야 단맛을 오롯이 즐길 수 있다. 후숙을 잘하면 본전 이상을 뽑을 수 있는 게 멜론이지만, 적당한 후숙 타이밍 잡기가 쉽지 않다. 반면 하미과 멜론은 후숙 없이 냉장고에 두었다가 먹을 수 있는 멜론이다. 후숙한 멜론이 부드러운 단맛이라면, 하미과 멜론은 아삭한 단맛이다. 단맛의 여운은 똑같이 길다. 하미과 멜론의 여름 수확은 끝났고 10월에 다시 나온다고 한다. 배꼽농장(010-5712-7777)

오일장터에 파란 사과가 눈에 띄었다. 양구에서 재배한 아오리 사과다. 아오리 사과는 파란 사과로 알려졌지만, 실상은 빨간빛이 도는 사과다. 사과 저장 기술이 없던 시절에는 전년에 수확한 사과가 봄이면 떨어졌다. 아오리사과는 사과 중에서 가장 빨리 나오는 품종이다. 7월이면 얼추 익어 먹을 만했기에 아오리사과를 원래부터 파란색 사과인 양 팔았다. 아오리 사과는 8월이 되면 빨갛게 색이 돈다. 제대로 익은 아오리 사과는 새콤달콤한 맛이 일품이다. 사과 저장 기술이 발달하면서 아오리 재배를 많이 하지 않는다. 7월까지 지난해 수확한 부사가 있어 더 이상 아오리사과를 찾는 이가 없다.

최근 양구를 비롯한 강원도의 사과 재배 면적이 넓어지고 있다. 온난화 탓에 경북보다 위쪽에 있는 강원도가 사과를 기르기 유리하게 됐다. 아직은 강원도 사과가 덕유산, 지리산 일대, 경북 내륙의 봉화, 청송, 의성보다는 유명하지 않다. 낮과 밤의 기온차가 큰 강원도 기후 덕에 맛이 뛰어난 사과가 나오고 있지만 아는 이가 드물다. 계속해서 평균기온이 오른다면 아마도 강원도 사과의 명성도 따라 오르지 않을까 싶다. 강원도 하면 감자였지만, 몇 년 뒤면 사과라고 할지도 모를 일이다.

■ ‘한 놈만 패는’ 양구 식당들

콩탕집·육개장집…‘한 놈만 패는’ 식당들 가성비와 가심비 모두 ‘짱’

인제 민통선에 꿀 보러 가는 길에 일부러 들러 콩국수를 먹는 양구 읍내의 한 식당이 있다. 이 식당은 원래 주메뉴가 콩탕이다. 돼지 뼈 육수에 순두부를 넣고 끓인 음식이다. 여름에 주로 오가는 탓에 시원한 콩국수만 한 그릇 한다. 어느 순간부터 도시에서 파는 콩국수 국물이 크림소스처럼 진득해졌다. 진한 것을 넘어 찐득한 식감 때문에 콩국수를 잘 먹지 않게 됐는데, 여기는 콩물이 가볍고 고소하다. 가을에 양구에서 난 콩을 사놨다가 1년 내내 쓴다고 한다. 콩국수 고명으로 파프리카와 양배추가 올라간다. 한여름 양구에서 나는 파프리카와 양배추는 단맛이 가득하다. 일교차가 큰 기후 덕이다. 매해 출장길에 들러 콩국수를 먹었는데 작년에는 먹지 못했다. 점심시간이 지나면 문을 닫는다는 것을 깜빡하고 오후 늦게 간 탓이었다.

그 바람에 바로 옆집에서 열무국수를 맛볼 수 있었다. 이 집은 콩물이나 얼갈이, 김치가 맛있는 것도 있지만 콩국수 한 그릇이 6000원으로 저렴하다는 것도 매력이다. 가성비, 가심비 모두 ‘짱’이다. 동문식당(033-481-1057)

양구 식당 중에는 ‘한 놈만 패는’ 식당들이 몇 집 있다. 한 가지 메뉴만 판다는 얘기다. 위의 콩탕집도 그렇고, 시장 내 옥천식당도 내장탕 하나에 편육만 판다.

오일장터에서 슬슬 5분 정도 걸으면 육개장집 간판이 하나 보인다. 돼지고기볶음도 메뉴에 있지만 다들 육개장만 찾는다. 전문점까지 있을 정도로 파는 곳은 많아도 제대로 내기 어려운 것이 육개장이다. 양구 읍내에서만 10년 넘게 육개장을 끓이는 곳이다. 숙주가 다른 곳보다 많고, 국물을 넘길 때 매운맛이 살짝 난다. 건더기가 많아 먼저 건더기를 먹다가 밥을 말아야 한다. 건더기의 간이 세지 않아 그냥 먹어도 괜찮다. 오전 11시부터 문을 열지만, 점심 때가 되면 예약 손님으로 차기 시작한다. 인근 군부대나 운동 시합차 양구에 온 외지인들이 예약 손님이다. 파로호 국밥(033-481-7807)

■ 구수함으로 채운 시래기 한 상

한 끼 정도는 시래기 먹어야 하는데, 쌈장·상추·밥과의 조화는 환상적

양구에선 오로지 시래기를 얻기 위해 무를 재배한다. 시래기 한정식에는 찜과 무침, 쌈장 등 시래기를 활용한 다양한 음식이 올라온다.

양구에선 오로지 시래기를 얻기 위해 무를 재배한다. 시래기 한정식에는 찜과 무침, 쌈장 등 시래기를 활용한 다양한 음식이 올라온다.

양구는 시래기 때문에 자주 갔었다. 무를 수확하고 남은 무청을 말린 것이 시래기다. 양구는 거꾸로 무청을 얻기 위해 무를 재배한다. 무는 버린다. 특별히 무청이 맛있는 품종을 재배하기 때문이다.

늦가을 서리가 내리면 ‘펀치볼(화채그릇(Punch Bowl)처럼 생겼다는 해안분지)’로 유명한 양구군 해안면 사람들은 시래기 작업으로 바빠진다. 시래기는 겨우내 말린 것을 주로 사고판다. 불리고, 삶아야 비로소 시래기의 구수한 맛을 본다. 몇 년 전부터 시래기를 삶아서 급랭한 것이 나온다. 라면 봉지 크기로 200g씩 담겨 있다. 요리할 때 바로 넣으면 끝이다. 펀치볼 시래기(033-481-0388)

양구에서 한 끼 정도는 구수한 시래기를 먹어야 한다. 시래기 감자탕도 있고, 정식도 있다. 보통의 한정식은 1인분 주문이 안되지만 양구는 가능하다. 한정식을 주문하면 갓 지은 밥이 나온다. 양구에서 생산한 오대미다. 강원도를 비롯, 일조량이 적은 곳에 적합한 품종이다. 반찬으로 나오는 시래기 찜이나 무침도 좋지만, 시래기를 잘게 다져 만든 쌈장이 특히 맛있다. 고기를 얹어 먹는 것보다 상추에다 갓 지어 김이 나는 밥을 올리고 시래기 쌈장을 올리면 천하일미가 된다. 쌈장, 상추, 시래기, 밥 네 가지 모두 양구의 풍토를 담고 있는 까닭에 어느 하나 튀지 않고 조화로운 맛을 낸다. 시래정(033-481-6616)

춘천에서 양구읍까지는 약 50㎞ 정도다. 소양강 옛길로 굽이굽이 돌아가면 두어시간 걸리겠지만 배후령 터널이 뚫리고 46번 국도가 곧게 정비되면서 양구 가는 길이 한결 편해졌다. 한 시간이면 양구에 도착한다. 오가는 길에 약수터로 빠져도 좋고, 중간에 소양강 전망대에 들렀다가 옛길을 호젓이 운전하는 것도 좋다. 미술관이나 박물관도 많거니와 나름 맛있는 식당도 곳곳에 있기에 여행하기 좋은 양구다.

■ 필자 김진영

[지극히 味적인 시장](15)달곰하다, 구수하다…한여름의  양구


제철 식재료를 찾아 매주 길 떠나다 보니 달린 거리가 60만㎞. 역마살 ‘만렙’의 24년차 식품 MD.


추천기사

바로가기 링크 설명

화제의 추천 정보

    오늘의 인기 정보

      추천 이슈

      내 뉴스플리에 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