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종일 꼬인 날 강원도 막장 ‘된찌’ “이거면 됐지”

2022.07.08 16:06 입력 2022.07.08 18:53 수정
김진영 MD

(85)강원 원주 새벽시장·오일장

고기는 예측 가능한 맛이었지만, 반전은 된장찌개에 있었다. 강원도 막장으로 끓인 된장찌개에 따로 나온<br />양념을 넣고 막 퍼온 밥을 비빈 뒤 고기 한 점 얹으니 세상 찾기 어려운 맛이 탄생했다.

고기는 예측 가능한 맛이었지만, 반전은 된장찌개에 있었다. 강원도 막장으로 끓인 된장찌개에 따로 나온
양념을 넣고 막 퍼온 밥을 비빈 뒤 고기 한 점 얹으니 세상 찾기 어려운 맛이 탄생했다.

전국을 제집처럼 드나드는 필자는 어디를 가나 익숙하다. 특히 자주 가던 충남 홍성이나 전남 담양, 경북 의성은 마치 고향처럼 가는 날 설레기까지 한다. 자주 가던 곳은 아니었지만, 장가를 가면서 익숙한 곳이 원주다. 원주 중에서 문막이 처가가 살던 곳이다. 원주를 출장으로 처음 간 것은 월드컵이 열리는 해, 2002년 즈음으로 기억한다. 충주에서 일 보고는 원주의 어느 산골에 있는 공장을 찾아갔다. 우리밀 과자였는지, 빵 만드는 곳이었는지 기억은 잘 나지 않는다. 그 덕에 원주는 ‘우리밀’로 저장되어 있었다. 저장된 기억이 희미해지는 사이 별다른 새로운 기억은 추가되지 않았다. 20년 지나 새롭고 재미난 기억이 오일장과 새벽시장으로 업데이트되었다.

우리나라 생활협동조합의 시작이 원주였다. ‘한살림’의 시작이 원주였고, 그에서 파생한 여러 단체가 여전히 전국에서 활동하고 있다. 생활협동조합의 도시 원주답게 상설시장 또한 잘되고 있다. 오일장 또한 2, 7일이 든 날에 열리고 있다. 장마가 잠시 물러나 더위가 무엇인지 보여 주던 토요일(7월2일)에 원주 오일장을 찾았다. 예전에 강(릉), 원(주)을 합쳐서 강원도라 불렀다. 그만큼 중요한 도시였다. 오일장의 규모가 도시 규모에 맞게 컸다. 규모가 크다고 재미까지 있는 것은 아니었다. 시장을 몇 바퀴 돌아도 남는 것은 땀밖에 없었다. 난감함이 밀려왔지만, 믿는 구석이 있었다. 매해 4월부터 12월까지 열리는 새벽시장. 이른 새벽인 4시부터 장이 열린다. 사람이 오기 시작하면서 장터는 흥이 난다. 흥에 정이 붙으면서 흥정이 오가면 어느덧 아침 9시, 새벽시장 문 닫는 시각이다.

중국 황실에서 먹었다는 하미과 멜론, 단맛의 깊이가 다르다.

중국 황실에서 먹었다는 하미과 멜론, 단맛의 깊이가 다르다.

새벽 4시부터 5시간 여는 새벽시장…농민이 주인인 ‘찐’ 로컬매장
‘아는 맛’ 고기·‘상상못할 맛’ 된장찌개가 공존하는 오일장 한우골목
힘겨웠던 일정, 맛난 추어탕 전골로 마무리했으니 ‘그러면 된 거다’

다음날 새벽시장이 열린, 오일장이 열리는 민속 풍물 시장 옆 둔치로 나갔다. 시장까지 가는 길은 둑길이다. 그 길을 가기 위해 길 건너에서 나란히 걷는 사이에 벌써 장을 보고 가는 이들이 제법이다. 둑길에 올라서니 비로소 장터가 눈에 들어왔다. 생각했던 것보다 컸다. 예전에 강릉 새벽시장 정도겠지 했는데 그 규모보다 두어 배 이상 컸다. 서둘러 장터에 들어섰다. 판매하는 사람들은 농민이다. 판에 박혀 가고 있는 로컬푸드 매장과 격이 다른 실제의 로컬 매장이 눈앞에 펼쳐져 있었다. 시장 관리소에서 내준 허가증에는 사는 곳과 이름이 적혀 있었다. 그 허가증 있는 이만 판매할 수 있다. 장터의 물건은 제각각이었다. 7월 초순에 볼 수 있는 모든 농산물이 모여 있었다. 복숭아, 자두, 살구, 매실이 있었다. 남녘의 매실은 예전에 끝났지만, 강원도는 나고 있었다. 마늘, 양파도 한창이었고 살까 말까 고민한 고춧잎이나 깻잎 또한 싱싱함이 남달랐다. 다듬어 내놓은 쪽파나 실파 또한 여느 매장에서도 볼 수 없는 수준이었다. 오가다 맛본 멜론, 하미과 멜론은 후숙하지 않아도 될 정도로 맛이 좋았다. 중국 황실에서 먹었다고 하는데 필자라도 이걸 먼저 먹었을 것이다. 노란 하미과와 파란 하미과 두 가지 맛을 봤다. 같이 간 이와 동시에 “노란 거 주세요”를 외쳤다. 단맛의 깊이가 달랐다. 두어 걸음 옮기다가 작은 오이가 눈에 들어왔다. 농부가 작은 오이 하나를 내밀었다. ‘토종 오이.’ 작아서 꼬마 오이나 피클용 오이처럼 보이는 녀석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기다란 오이와 달리 통통하고 짤막한 몸통이다. 기다란 모양을 가진 개량 오이와 달리 긴 여운을 지닌 향과 청량한 단맛이 일품이다. 단단한 육질이기에 씹는 소리 또한 더위를 한 방에 날린다. 소박이, 장아찌, 피클 등 크기는 작아도 어떤 형태의 음식을 만들어도 좋다는 농부의 이야기에 맛본 이들은 하나같이 사 갔다. ‘이따 취재 끝나고 사야지’ 하다가 못 산 필자만 빼고 말이다. 시장 양쪽 끝은 사무실 사람들이 나와 입구를 지키고 있다. 허가를 받지 못한 이들 또한 양쪽 끝 입구에서 장을 펼치고 있다.

개량 오이와 달리 ‘통통짤막’하지만 육질이 단단하고 청량한 단맛이 일품인 토종 오이.

개량 오이와 달리 ‘통통짤막’하지만 육질이 단단하고 청량한 단맛이 일품인 토종 오이.

시작점과 달리 끄트머리 쪽에는 반조리나 조리한 음식 파는 곳이 있다. 메밀전이나 전병, 김 나고 있는 묵을 팔기도 하지만, 가장 인기 있는 것은 두부였다. 구매 연식이 제법 있는 듯 손에 지폐 든 이들이 순서를 기다리며 줄 서고 있었다. 새벽시장을 돌다보면 정신이 없어 보여도 혼돈 속에 나름의 질서는 있었다. 강원도의 동쪽 강릉에서 맛봤던 새벽시장의 재미를 서쪽인 원주에서 제대로 즐겼다. 원주의 오일장은 나쁘지 않았다. 시장의 재미를 더한다면 새벽시장을 꼭 봐야 한다. 농민이 주인인 장터가 바로 새벽시장이며 로컬 장터다.

새벽시장의 재미가 장보기라면 오일장은 역시 먹는 재미다. 강원도 장터에서 빠지지 않는 먹거리가 메밀 음식. 전과 전병은 장의 크기가 크든 작든 항상 있다. 메밀전은 반죽 위에 배추나 김치를 올리기에 맛이 비슷하다. 전병은 지역마다 조금씩 달랐다. 영월은 매콤했고 양구는 무채와 김치가 적당한 맛이었다. 홍천의 총떡은 나름의 맛이 있었다. 원주는 세 곳의 맛과 아주 달랐다. 김치가 들어가는 것은 같았다. 다만 당면이 들어가 김치만두 먹는 느낌이 들었다. 김치만두 좋아하는 이라면 좋아할 맛이 원주의 메밀전병이다. 먹기 전에는 양구 전병이 최고였다. 먹고 나서는 원주 것이 가장 마음에 들었다. 미니분식 (033)746-6964

다사다난한 출장의 마침표를 ‘맛있게’ 찍어준 추어탕 전골.

다사다난한 출장의 마침표를 ‘맛있게’ 찍어준 추어탕 전골.

언제부터인지는 몰라도 강원도의 여름은 수리취떡이다. 원주 또한 오일장 이곳저곳에서 떡을 팔고 있었다. 지나치다가 수수부꾸미를 부치는 점포 앞에서 떡을 샀다. 팥고물이 적당히 묻어 있는 모양새가 마음에 들었다. 떡을 맛보니 예전에 예산 오일장에서 맛본 떡이 생각났다. 요새 떡은 단맛이 먼저 반긴다. 맛있는 떡은 단맛이 아니라 떡의 식감이 먼저 반겨야 한다고 생각한다. 씹을수록 품고 있는 단맛을 내줘야 한다고 여긴다. 여기 떡이 딱 그랬다. 떡을 씹는 사이 단맛은 그저 옆에서 씹는 것을 조용히 보조하고 있었다. 오랜만에 맛나게 떡을 먹었다. 이번 출장길에 여러 식당을 알아보고 갔지만 먹은 곳은 한 곳이다. 그러나 그곳은 차마 쓸 수 없는 수준이었고, 한 곳은 토요일 오후부터 주말 내내 장사를 하지 않았다. 또 한 곳은 폐업해서 부랴부랴 다른 식당을 알아봤다. 폐업한 식당은 육우를 내는 곳이다. 적절한 가격에 맛있는 고기를 먹을 수 있기에 육우나 황소 등 등급 낮은 소고기를 애써 찾아 먹곤 한다. 아쉬운 마음에 대략 본 시장통의 한우구이 골목으로 찾아갔다. 시장 안에 있는 작은 골목을 사이에 두고 스무 곳 남짓의 고깃집이 몰려 있었다. 그중 한 집을 찾아 들었다. 태백의 실비집 같은 분위기가 나지만 가격은 서울 도심 수준. 맛없었고, 폐업하고, 문 닫는 등 온종일 꼬인 날이었기에 더는 찾아볼 엄두를 내지 못하고 앉았다. 안창살 2인분(360g)을 주문하니 9만6000원. 고기 맛은 등급을 보면 예측 가능한 맛. 마블링이 있지만 육향은 없는 소고기 맛이었다. 고기 주문하면서 된장찌개를 주문하니 반전은 ‘된찌(된장찌개)’에 있었다. 간장을 덜 뺀 강원도 특유의 막장으로 끓인 된장찌개에 막 퍼준 밥이 같이 나왔다. 여기에 고추 장아찌를 잘게 잘라 볶은 것과 소고기 고추장이 따로 차려졌다. 막장으로 끓인 찌개로만 비벼도 밥은 맛있었다. 두 양념을 넣고 비비니 세상에서 찾기 어려운 맛. 고기를 먹기 위해서는 찾지 않겠지만 된장찌개 넣고 비빈 밥에 고기 올려 먹을 생각이면 찾을 것 같다. 상상할 수 있는 맛의 고기와 상상할 수 없는 맛의 된장찌개가 공존하는 골목이다. 따로 식당 이름은 이야기하지 않는다. 메뉴가 대동소이하고 된장찌개가 집마다 개성이 있다. 저렴한 것이 차돌박이가 섞여 있는 모둠 구이가 3만8000원이다.

원주 메밀전병은 김치만두를 좋아하는 이라면 좋아할 맛이다.

원주 메밀전병은 김치만두를 좋아하는 이라면 좋아할 맛이다.

전날과 달리 잘 풀리던 일요일도 잠시. 추어탕 먹고 집으로 올 생각이었지만 생각대로 풀리지 않았다. 전병을 먹고 차로 돌아왔는데 시동이 걸리지 않았다. 시동을 걸어 주는 스타터 모터가 갑자기 타 버렸다. 긴급 견인을 불러 수리를 하고 출장의 마지막 종착지를 찾아갔다. 보통의 추어탕은 몇 명이 가든 1인용 뚝배기에 나온다. 이 집은 주문한 인원에 맞게 냄비가 커진다. 전골로 나온다. 맛은 처음 보는 맛이다. 버섯, 고사리, 채소가 듬뿍 들어 씹는 맛이 좋았다. 산초가루 또한 맛을 더했다. 차 때문에 생각 같지 않던 출장길은 추어탕에 걸맞은 김치까지 더해진 맛있는 점심으로 마무리를 했다. 필자가 잘하는 말이 “그러면 된 거다”이다. 불행을 곰곰이 따져 보면 불행 속에서 행운이 보인다. 차는 고장 났지만, 일요일에 문 연 곳이 있어 고쳤고, 어제는 힘들었지만, 오늘 시장 구경은 재미있었다. 힘들었지만 또 하나의 시장을 끝냈으니 더할 나위 없었다. 시동을 걸면서 속삭였다. “그러면 된 거다.” 장터추어탕 (033)735-2025

▶김진영

[지극히 味적인 시장]온종일 꼬인 날 강원도 막장 ‘된찌’ “이거면 됐지”


매주 식재료를 찾아 길을 떠난다. 먹거리에 진심인 만렙의 27년차 그린랩스 팜모닝 소속 식품 M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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