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 저유소 화재' 항소 기각…"증인신문 때 질문도 없더니…"

2021.06.15 15:11 입력 2021.06.15 16:25 수정

2018년 ‘고양 저유소 화재’ 당시 풍등을 날려 재판을 받게 된 디무두 누완(왼쪽)이 15일 오전 의정부지법에서 항소가 기각된 뒤 최정규 변호사와 법정 밖에서 안내문을 읽고 있다. 전현진 기자 jjin23@kyunghyang.com

2018년 ‘고양 저유소 화재’ 당시 풍등을 날려 재판을 받게 된 디무두 누완(왼쪽)이 15일 오전 의정부지법에서 항소가 기각된 뒤 최정규 변호사와 법정 밖에서 안내문을 읽고 있다. 전현진 기자 jjin23@kyunghyang.com

공사 현장에 떨어진 풍등을 호기심에 날렸다가 인근 저유소에 떨어져 기름 탱크가 폭발한 ‘고양 저유소 화재’ 사건의 당사자인 스리랑카 출신 노동자 디무두 누완(30)의 항소가 기각됐다. 1심에서 선고된 벌금 1000만원이 유지됐다. 5년 넘게 부모님을 만나지 못한 디무두는 상고 없이 벌금을 내고서라도 고향에 가야할 지 고민했다.

의정부지법 형사항소2부(재판장 최종진)는 15일 “피고인의 항소를 기각한다”고 밝혔다. 디무두는 2018년 10월7일 경기 고양시 인근의 서울-문산 간 고속도로 공사 현장에서 초등학생들이 날렸다 떨어진 풍등을 주워서 날렸다가 이 사건에 휘말렸다.

풍등은 바람을 타고 날아가 인근 대한송유관공사 저유소에 떨어졌고, 제초 작업 후 곳곳에 쌓여있던 마른 잔디에 불이 붙었다. 20분쯤 뒤 휘발유가 들어있던 기름 탱크 터졌다. 화염 방지 장치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 실화(失火) 혐의가 적용돼 기소된 디무두에게 1심 재판부는 지난해 벌금 1000만원을 선고했다. 당시 재판부는 “피고인은 단순한 호기심·장난에서 풍등을 날렸을 뿐인데, 여러 불운이 겹쳐 피고인의 과실에 비해 거대한 결과가 발생했음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고 했다.

항소심에서 디무두 측 변호인단은 그가 풍등을 날릴 당시 인근에 저유소가 있었는지 몰랐다고 주장했다. 디무두는 수사 과정에서도 “스리랑카에서는 그런 중요한 시설(저유소)은 군인들이 지킨다”며 허술하게 관리되던 그 시설이 저유소인 줄 몰랐다고 했다. 디무두가 속한 업체 등이 저유소를 지목해 특별히 주의를 당부하는 안전교육을 실시하지도 않았다고 했다. 또 풍등을 날린 행위가 기름 탱크의 폭발로 바로 인과관계로 연결되는 것도 아니라고 주장했다. 저유소의 관리 부실 등 불운의 연속으로 일어난 일이기에 디무두에게 법적 책임을 물을 수 없다는 것이다.

항소심 재판부는 이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부는 “피고인의 한국어 실력과 공장에서 이뤄진 안전교육의 내용, 관련자 진술을 종합해보면 사건 당시 저유소의 존재를 알 수 있음을 충분히 인정할 수 있다”며 “피고인이 풍등을 날린 행위가 화재 발생의 원인임이 명백(하다)”고 밝혔다. 또 “1심 선고 이후 사정 변경을 인정할 만한 아무런 자료가 없다”며 항소를 기각했다.

법정을 나온 디무두와 변호인 최정규 변호사는 잠시 말을 못 했다. “저유소의 존재를 몰랐다는 동료 외국인 직원의 진술이 있었는데, 증인신문 때는 (재판부가) 아무런 질문도 안 해 놓고, 그냥 믿기 어렵다면 어떻게 그걸 입증해야 하는 건지….” 최 변호사가 말했다.

디무두는 통역인을 통해 말했다. “23일에 집에 가는 비행기를 끊었어요. 코로나19로 (스리랑카가) 또 봉쇄가 될지 몰라요. 지금은 풀린 상태예요. 다 포기하고 그냥 편찮은 부모님을 뵈러 가고 싶어요.”

최 변호사는 “많이 지쳤을 것”이라고 했다. 풍등을 날린 2018년 10월17일부터 항소심 선고까지 983일이 걸렸다. 디무두는 상고를 하고 벌금을 미리 내면 출국이 가능한지 알아보거나, 그냥 상고를 포기하고 벌금을 내야 할 지 고민해보기로 했다. “가긴 가더라도 몸도 안 좋은데 건강검진은 받아야지.” 사건 당시부터 디무두를 챙겨온 그의 직장 금풍건설의 조정현 이사가 그를 위로했다. “위내시경도 못 했잖아. 더 있다 가도 돼. 퇴직금도 받아야지.” 비가 계속 내렸다. 최 변호사는 “(풍등을 날린) 그날, 비가 왔으면 좋았을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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