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시간 넘게 강풍 동반한 폭우… 거리는 순식간에 암흑천지로

2012.07.01 22:01 입력 2012.07.01 22:50 수정

유신모 워싱턴 특파원 현지르포

지난달 29일 밤 9시쯤 기자가 사는 미국 워싱턴 DC 인근 버지니아주 페어팩스 집 창문 밖으로 엄청난 비바람이 몰아치기 시작했다. 번개가 사정없이 내리치더니 엄청난 폭우를 동반한 강풍이 2시간 이상 이어졌다. 가로수가 뽑히고 전신주가 넘어지면서 주변은 물론 집 안도 순식간에 암흑천지로 변했다. 냉장고도, 가스레인지도, TV도, 인터넷도 멈춰섰다. 외부세계를 연결해주는 휴대전화마저 배터리가 거의 닳아가는 상황이었다. 체감온도 40도가 넘는 무더위 속에서 뒤척이며 밤을 지새울 수밖에 없었다.

지옥 같은 밤을 보낸 뒤 다음날인 30일 더위도 피할 겸 휴대전화 배터리 충전을 위해 집을 나섰다. 오전 9시인데도 기온은 30도에 육박했다. 넘어진 가로수와 간판으로 가득찬 거리가 모습을 드러냈다. 신호등은 모두 꺼진 상태였고, 간간이 경찰차와 구급차만이 사이렌을 울리며 분주히 오갔다. 버지니아주 페어팩스 카운티 전 지역에 전력이 공급되는 가구나 건물은 거의 없었다.

2시간 넘게 강풍 동반한 폭우… 거리는 순식간에 암흑천지로

시민들이 거리로 몰려나오기 시작했다. 정전으로 차고 문을 열지 못해 발이 묶인 시민들도 많았다. 방전된 휴대전화 배터리를 충전하고 자동차에 넣을 휘발유와 생필품을 확보하는 것이 급선무였지만 문을 연 주유소는 물론 상점도 찾기 어려웠다.

북버지니아에서 비교적 피해가 적었던 챈틀리 지역에 문을 연 주유소가 몇 개 있다는 경찰의 말을 듣고 챈틀리로 향했다. 그러나 신호등이 없는 거리에 차량들이 몰려들면서 교차로를 지날 때마다 수십분이 걸리는 교통지옥이 이어졌다. 간신히 도착한 주유소에는 차량들이 꼬리를 물고 늘어섰다. 간간이 눈에 띄는 편의점에서는 물과 얼음, 생필품이 금세 동이 났다. 신용카드 결제가 이뤄지지 않아 현금이 없는 시민들은 그대로 발길을 돌려야 했다.

미국 수도 워싱턴 시민들이 지난달 30일 시내 중심가 듀퐁서클 인근 도로에서 전날 이 지역을 강타한 폭풍으로 쓰러져 있는 나무 옆을 지나가고 있다.  워싱턴 | AP연합뉴스

미국 수도 워싱턴 시민들이 지난달 30일 시내 중심가 듀퐁서클 인근 도로에서 전날 이 지역을 강타한 폭풍으로 쓰러져 있는 나무 옆을 지나가고 있다. 워싱턴 | AP연합뉴스

▲ 워싱턴·4개주 비상사태 선포
더위 피하려 시민들 쇼핑몰로

이날 북버지니아 지역의 문을 연 호텔은 집을 떠나 대피한 시민들로 일찌감치 숙박 예약이 마감됐다. 일부 시민들은 가족들을 모두 차에 태우고 피해를 입지 않은 타 지역으로 장거리 여행을 떠나기도 했다. 오후가 되면서 전력이 복구된 페어팩스 지역 대형 쇼핑몰에는 더위를 식히려는 인파가 몰렸다. 쇼핑몰 관계자는 “평소 주말보다 3배 이상 많은 수”라고 말했다. 쇼핑몰 내 커피숍과 식당은 물론 건물 어디든 전기 코드가 있는 곳에는 사람들이 몰려 휴대전화와 노트북을 충전하느라 바빴다. 통신회사 매장 직원은 “매장에 있던 차량용 충전기 30여개가 모두 팔렸다”고 말했다. 시민들은 쇼핑몰 바닥에 주저앉아 집에 돌아갈 수 있을지 걱정했다. 전력회사로부터 자신의 집에 전력 공급이 재개됐다는 문자메시지를 받은 시민들은 환호성을 올렸고 다른 사람들은 초조하게 휴대전화를 들여다보며 연락을 기다렸다.

다시 밤이 찾아오면서 워싱턴 DC 중심가와 인근 펜타곤시티, 알링턴 카운티 등은 대부분 전력 공급이 재개됐다. 하지만 매클린, 폴스처치, 페어팩스 지역은 여전히 ‘문명사회’와 거리가 멀었다. 주정부 관계 당국은 “피해가 완전히 복구되려면 1주일 정도 걸릴 것”이라며 전력이 공급되지 않는 가구는 대피할 것을 권고했다.

집으로 무작정 돌아온 뒤 몇 시간이 지난 1일 새벽이 돼서야 비로소 전기 공급이 재개됐다. 체감온도 45도에 달하는 폭염 속에서 에어컨과 인터넷이 없는 지옥 같은 하루가 끝난 것이다.

지난달 29일 밤 인디애나주에서 메릴랜드주까지 800㎞를 휩쓸고 지나간 강풍과 폭우, 폭염으로 최소 13명이 사망하고 300만가구에 전력 공급이 끊긴 것으로 나타났다. 피해를 본 수도 워싱턴 DC와 버지니아·메릴랜드·웨스트버지니아·오하이오 등 4개주는 30일 비상사태를 선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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