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바마 이민개혁 기대 컸는데… 부모님 계속 추방 대상”

2014.12.01 21:49 입력 2014.12.01 22:09 수정

미국 거주 미등록 한인 이주자 조정빈씨

13년 전 이주 후 ‘움츠린 삶’… 형제만 2년 전 추방 유예

“엄마·아빠 고생 안쓰러워” 미혜택 부모 14만 넘을 듯

미국 버지니아공대에 재학 중인 조정빈씨(20·사진)는 지난달 20일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이민 관련 행정명령을 손에 땀을 쥐고 지켜봤다. 오바마 대통령의 발표가 끝나자 그는 실망감을 감추지 못했다. 자신과 같은 미성년 입국 추방유예자(DACA)의 부모는 강제추방 유예 대상에서 제외됐기 때문이다.

지난달 29일 버지니아주 애넌데일의 한 제과점에서 만난 조씨는 “대통령의 행정명령 발표가 상당히 지체된 뒤에 나온 것을 감안할 때 내용 면에서 좀 더 나갈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았다”고 말했다.

“오바마 이민개혁 기대 컸는데… 부모님 계속 추방 대상”

조씨는 일곱 살 때 부모를 따라 미국으로 이민해 한국어가 서툴렀다. 부모와 대화할 때만 한국어를 쓴다고 했다. 네 살 난 남동생까지 네 가족이 2001년 비자 없이 미국 국경을 넘었으니 그가 미등록 이주자로 산 지는 13년이 된다. 부모에게 “다른 친구들보다 너는 더 조심해서 살아야 한다”는 말을 지겹도록 들어야 했고, 친구들이 운전면허를 받을 때 그는 운전할 필요가 없다고 둘러대야 했다. 버지니아공대에 합격하고도 경제적 부담 때문에 2년제 대학에 입학해야 했다.

그래도 그에게 오바마는 고마운 존재다. 부모 따라 입국한 청소년에 대한 추방을 유예하는 행정명령이 2012년 내려져 절반쯤이나마 미국 사회의 일원으로 받아들여졌기 때문이다. 1년 후 버지니아주가 DACA 적용자에게도 주(州)민 학비부담 대상을 확대하면서 대학 등록금이 절반 가까이 낮아져 버지니아공대에 재입학할 수 있었다.

전북 중소도시의 한 중산층이던 그의 집안은 여전히 미국 사회의 가장자리에서 분투하고 있다. 부모의 이민 결정은 자식의 더 나은 교육 기회를 위해 내려졌다. 그런 점에서 자신은 좀 더 자유로운 교육을 받은 것을 혜택으로 여긴다고 했다. “한국에서 들려오는 10대 관련 뉴스나 친척들 얘기를 접하면서 불안정한 내 지위에 대한 불편함은 상쇄됐다. 부모의 결정에 감사하고 안도한다.

하지만 추방될 위험을 무릅쓰고 장시간 일하고, 아파도 병원에 잘 가지 못하는 엄마, 아빠를 보면 안쓰럽다.”

의회에서 이민개혁 법안이 통과되지 않으면, 부모의 안정적 지위는 물론 조씨 역시 영주권을 받지 못한다. 조씨는 한국 정부가 미 의회에 로비 중인 전문직 비자 쿼터 확대는 자신과 같은 인문·사회계 학생에게는 별로 혜택이 없을 뿐만 아니라, 그 수도 자기 같은 사람들에게 혜택이 돌아가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고 했다. 미주한인봉사교육단체협의회(NAKASEC)에 따르면 현재 조씨 부모와 같은 처지에 있는 사람들은 14만명이 넘는 것으로 추산된다.

하와이에 사는 김대진씨(46·가명)는 이번 행정명령의 혜택을 입은 경우다. 2003년 학생 비자로 이민한 김씨는 3년 뒤 투자 이민 비자로 바꿔 자영업을 시작했으나 2009년 금융위기 때 파산하고 미등록 이주자가 됐다. 많은 돈을 들여 비자 재발급을 시도했지만 실패했고, 계속 숨어 살았다. 하지만 미국에서 출산한 시민권자 자녀의 부모 자격으로 이번에 구제 대상이 됐다. 그는 지난달 21일 시카고 한인교육문화마당집 등이 마련한 전화회의에서 “이제 그간의 무거운 마음을 덜어버리려 한다”고 말했다.

미국 내 주류 한인단체들의 활동만 보면 잘 보이지 않지만 자기 신분을 드러내놓지 못하는 미등록 이주자는 생각보다 많다. 18만~24만명으로 추산된다. 이들은 대다수가 중남미 출신인 1100만명의 미등록 이주자들과 정치적 입장을 같이하며 오바마 행정부의 이번 이민개혁 과정에 적지 않은 힘을 발휘했다. NAKASEC의 버지니아 지역 담당자 김동윤씨는 “많은 한인단체들은 의회를 상대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같은 이슈에만 목소리를 낸다. 하지만 노동·이민 문제를 얘기하는 한인들의 목소리도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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