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주민 인정’ 역사적 국민투표 앞둔 호주 여론은

2023.09.05 15:21 입력 2023.09.05 16:04 수정

지난달 30일(현지시간) 호주 다윈에서 원주민 지위 보장 기구를 위한 개헌 ‘예스’ 캠페인 지지자들이 부스를 운영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지난달 30일(현지시간) 호주 다윈에서 원주민 지위 보장 기구를 위한 개헌 ‘예스’ 캠페인 지지자들이 부스를 운영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애버리진(호주 원주민)과 토레스해협 주민들을 위한 헌법 기구를 세움으로써 이들을 호주 최초의 주민으로 인정하도록 합니다. 당신은 이러한 개헌에 찬성합니까?”

호주 국민들이 다음달 14일 국민투표에서 받게 될 질문이다. 이번 투표를 통해 호주는 원주민의 지위와 권리 보장을 위한 헌법 기구 ‘보이스’를 설립할지 여부를 결정한다. 유권자들이 투표 용지에 ‘예스(Yes·찬성)’ 또는 ‘노(No·반대)’를 적어내야 함에 따라, 찬반 양측은 각각 예스·노 캠페인을 치열하게 벌이고 있다.

현재로선 ‘예스’ 측이 분발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투표일을 6주 앞둔 4일(현지시간) 호주 매체 ‘디오스트레일리안’이 실시한 여론 조사를 보면, 개헌 반대가 53%로 찬성(38%)보다 높았다. 같은 날 영국 가디언이 자체 조사한 결과에서도 48%가 반대, 42%는 찬성을 답했다.

호주 원주민은 누구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애버리진과 토레스 해협 주민으로 구성되는 호주 원주민은 6만년 이상 호주 대륙에 거주했으며, 현재 호주 전체 인구의 약 3.2%를 차지한다. 이들은 고유의 역사, 전통, 언어를 각각보유한 수백개의 하위 그룹으로 이뤄져 있다.

오래도록 대륙의 주인으로 살던 이들은 1788년 영국이 호주를 식민지로 만들면서 ‘인간 이하’의 처지로 전락했다. 호주 헌법은 ‘주인이 없는 땅에 국가를 세웠다’는 논리에 기반해 작성됐으므로, 이에 따르면 호주 원주민은 사람으로 인정되지 않는다. 원주민들은 새로운 질병에 노출됐으며 노예나 다름없는 환경에서 노동을 강요당하면서 인구수가 급감했다. 원주민 말살 정책에 따라 토지를 약탈당했고, 아이도 빼앗겨 백인 가정에 강제로 입양 보내야 했다. 1910년부터 1970년대까지 이러한 동화 정책에 따라 가족과 떨어진 원주민 어린이는 3명 중 1명 꼴이다.

원주민은 1967년에서야 개헌을 통해 호주 공식 인구 조사에 포함됐다. 그간 호주 정부가 과거의 말살 정책을 공식 사과하는 등 원주민 권리와 지위 향상에 일부 진전이 있긴 했지만, 원주민들은 여전히 사회적으로 크게 소외돼 있다. 이들은 높은 자살률과 범죄율 등에 시달리고 있으며 기대수명 또한 비원주민 집단에 비해 8년이나 짧다.

찬·반 격론…결과 예측 어려워

앤서니 앨버니지 호주 총리가 지난달 30일(현지시간) 호주 애들레이드에서 개헌 투표일을 발표하며 개헌에 찬성할 것을 독려하고 있다. AP연합뉴스

앤서니 앨버니지 호주 총리가 지난달 30일(현지시간) 호주 애들레이드에서 개헌 투표일을 발표하며 개헌에 찬성할 것을 독려하고 있다. AP연합뉴스

이에 따라 원주민의 지위와 권리를 헌법으로 보장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힘을 얻기 시작했다. 캐나다는 1982년 개정된 헌법에 따라 원주민의 권리를 인정한다. 뉴질랜드는 1840년 일찌감치 ‘와이탕이 조약’을 맺어 원주민인 마오리족 문화 보호를 약속하고 마오리어를 공식 언어로 인정했다. 의회에 마오리 의석도 신설했다.

호주에선 2017년 원주민 대표 250명이 모여 원주민 헌법기구 ‘보이스’ 설립을 요구했으나 당시 자유당 정권으로부터 거부당했다. 그러다 지난해 당선된 노동당 앤서니 앨버니지 총리가 개헌을 공약하며 논의가 진전됐다. 지난 3월30일 개헌안이 의회에 제출됐으며, 지난 6월19일 의회에서 통과됐다. 지난달 30일엔 국민투표 날짜가 10월14일로 확정됐다.

앨버니지 총리는 자신의 정치적 자산 상당 부분을 이번 국민투표에 걸고 있다. 그는 “다가오는 국민투표는 법률과 정책에 대한 발언권을 원하는 원주민들의 바람을 존중한 것”이라며 찬성을 독려했다. 녹색당과 일부 무소속 의원, 복지단체, 종교단체, 민족단체 등이 ‘예스’의 편에 섰다.

그러나 보수적인 자유당과 농촌에 기반을 둔 국민당은 개헌에 반대하며 ‘노’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자유당의 피터 더튼 대표는 “헌법에 ‘보이스’를 두면 분열을 낳는다”고 주장했다. ‘보이스’가 아닌 원주민의 권리에 초점을 맞춘 초당적 위원회를 먼저 구성하자는 대안적인 제안도 있다.

개헌을 위해선 두 가지 조건을 갖춰야 한다. 투표자 중 절반 이상이 찬성해야 하며, 호주 6개 주 중 4개 주 이상에서 찬성이 과반을 획득해야 한다. 호주에서는 지금까지 44차례 개헌을 추진했지만, 이 중 19건만 국민투표에 부쳐졌고 가결된 건 8건에 불과하다. 가장 최근에 투표에 부쳐진 개헌안은 1999년으로, 국가 체제를 왕정에서 공화정으로 전환하는 건이었다. 이 역시 부결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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