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흥규 교수 “중국, 앞으로 30년은 비용 물리려 할 것…미·중 사이 공존 외교적 상상력 필요”

2022.08.23 21:27 입력 2022.08.23 23:29 수정

김흥규 아주대 교수·미중정책연구소 소장은 앞으로의 한·중 관계에 대해 “중국이 얼마나 우리에게 비용을 많이 치르게 할 수 있는 국가인지에 대한 질문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우철훈 선임기자 photowoo@kyunghyang.com

김흥규 아주대 교수·미중정책연구소 소장은 앞으로의 한·중 관계에 대해 “중국이 얼마나 우리에게 비용을 많이 치르게 할 수 있는 국가인지에 대한 질문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우철훈 선임기자 photowoo@kyunghyang.com

현재의 불안한 한·중관계
상황 관리 실패 땐 급전직하
미·중의 운명 건 전략경쟁서
갈등에 편승하는 행태 금물

6·25전쟁에서 총칼을 겨눴던 한국과 중국이 수교한 1992년 이후 30년간 양국은 비약적 관계 발전을 이뤄냈다. 몇 차례의 중요한 변곡점을 맞닥뜨렸던 한·중관계가 이제 다시 새로운 전환점에 서 있다.

김흥규 아주대 교수 겸 미중정책연구소 소장은 지난 19일 서울 중구 한 호텔에서 경향신문과 인터뷰하면서 “지난 30년은 축복이었지만 앞으로 30년은 상당한 비용을 치를 수도 있다”며 “중국이 얼마나 비용을 치르게 할 국가인지 질문을 던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다음은 김 소장과의 일문일답.

- 30년 전 당시 정세를 고려할 때 한국 입장에서 한·중 수교가 갖는 의미는.

“당시 한국은 극심한 냉전체제와 남북대결 속에서 한반도를 넘어선 외교·안보적 시야를 갖지 못한 채 전적으로 한·미 동맹에만 의존해 북한을 상대하는 제한적 상황을 돌파하고 싶어 했다. 사회주의 국가 붕괴 과정에서 기회 공간이 열렸고, 노태우 대통령이 북방정책으로 그 공간을 잘 살렸다. 구 소련과의 수교(1990년 9월)에 이어 중국과 연달아 수교하고 사회주의 국가들과 접촉면을 넓히면서 대북 외교·안보 정책 옵션을 더 많이 확보할 수 있었다. 경제적 측면에선 사회주의체제가 붕괴되고 시장경제로 전환되는 국제경제 질서 재편 과정에서 새 모멘텀을 찾아야 했는데 중국이라는 시장이 열렸다.”

사드는 수교 이후 최대 패착
대만 문제 등과 마찬가지로
미·중이 소통할 문제라면서
이슈화시키지 않는 게 최선

- 수교 이후 한·중관계의 변화를 상징하는 사건을 꼽는다면.

“양국 관계는 몇 차례 변동을 겪었는데 첫 번째는 1997년 2월 황장엽 북한 노동당 비서가 중국 베이징에 있는 주중 한국대사관을 거쳐 망명한 일이다. 이는 중국이 북한에 대한 고려보다 한국과의 관계를 더 중시하겠다는, 대단히 상징적 사건이었다. 두 번째는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인데, 금융위기 이후 중국은 적극적으로 미국과의 경쟁 체제로 전환했고, 이후 우리는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라는 한·중관계의 중요한 전환점을 맞이하게 됐다. 세 번째는 현재의 미·중 전략경쟁 전면화다. 미국의 자유주의 패권 질서가 약화되고 다극화로 전환되는 과정에서 한·중관계가 새로운 전기를 맞게 됐다. 한·중 간 안정적 협력을 연결해 온 ‘미·중 전략적 협력 관계’라는 외연이 사라지고, 중국의 급속한 부상으로 인해 과거의 보완적 분업체계가 경쟁적 관계로 전환되고 있다.”

- 현재의 불안한 한·중관계를 온도로 표현한다면.

“현재 온도를 유지만 해도 성공적이다. 그나마 온기가 있는 상황 관리에 실패하면 급전직하할 수 있는 시기에 직면해 있다.”

- 한·중 간 온도를 급랭시킬 수 있는 최대 악재는.

“미·중 갈등이다. 갈등에 편승해서 우리가 마치 미국의 선봉대 같은 행태를 보인다면 중국의 반감은 매우 클 것이다. 중국이 모든 운명을 걸고 미·중 전략경쟁에 뛰어들었는데, 지리적으로 가장 가까이 붙어 있고, 경제발전에서도 중국의 혜택을 가장 많이 본 우리가 앞장선다면 화풀이 대상이 될 수도 있다.”

- 그런 점에서 수교 이후 한·중 외교에서 가장 큰 패착은 사드 배치라고 보나.

“한·중관계로만 봤을 때는 그렇다. 중국이 북한에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기대가 높은 상황에서 2016년 1월 북한의 4차 핵실험 직후 당시 박근혜 대통령의 전화를 시진핑(習近平) 주석이 받지 않았다. 이전까지는 사드를 고려하지 않는다, 들은 바도 고려한 바도 없다고 얘기하던 한국은 사드 배치로 급격히 방향 전환해버렸다. 미·중이 전략적 경쟁 관계로 전환하는 지점에 한국이 미국의 대중 억제 정책 최전선에 선다는 선언을 한 셈이다.”

- 사드 문제를 어떻게 하면 우리에게 유리하게 끌어올 수 있나.

“사실 사드는 우리의 주권적 결정이 아니다 한·미 동맹에 의해 미국이 결정한 것이고 사드는 한국이 중국을 적대시하는 정책이 아니라, 미·중이 소통할 문제로 이해시키는 것이 최선이다. 사드를 이슈화시키지 않는 게 유리하다.”

- 한·중관계가 급랭할 수 있는 불씨는 사드 외에도 대만 문제 등 여러 가지가 있다.

“다른 문제도 마찬가지지만 대만 문제도 우리 스스로 미·중 전략경쟁의 기치를 들어서는 안 된다. 대만 문제는 미·중이 해결해야 할 사안이고, 우리는 다른 주요 중견국들과 함께, 엄밀한 의미에서는 한 발짝 살짝 뒤에서 그들의 스탠스(입장)를 따라가는 외교가 가장 적은 비용을 들이면서도 국격을 손상시키지 않는 외교다.”

싫다고 사라지지 않는 이웃과
공존을 위한 토대 고민해야
한·미 동맹 중심 외교정책도
근본적인 질문을 던질 필요

- 중국을 ‘이사 갈 수 없는 이웃국’으로 뒀다는 것은 위기인가, 기회인가.

“과거 30년은 엄청난 기회였다. 세계 최대 시장을 가진 중국이 평균 10%대의 경제성장을 했고, 우리의 경제발전 단계와도 딱 맞아떨어졌으니 신의 축복 같은 존재였다. 그러나 앞으로 30년은 덩치도, 자부심도 커져 위협적 존재로 변한 중국이 우리에게 큰 굴욕을 줄 수도, 또 상당한 비용을 치르게 할 수도 있다. 이전엔 중국이 ‘우리에게 무엇을 해줄 수 있을까’에 대한 질문을 던졌다면, 지금은 중국이 얼마나 우리에게 비용을 많이 치르게 할 수 있는 국가인지에 대한 질문을 해야 한다.”

- 미·중 전략경쟁 사이에서 우리의 외교 방향은.

“한·미 동맹을 중심으로 한 외교정책이 다극화로 전환하는 시기에도 맞느냐는 근본적 질문을 던져봐야 한다. 중국과 미래의 30년은 적대관계로 가야 할지, 협력 속에서 이익을 공유할지, 최소한 공존을 위한 토대를 어떻게 마련할 것인가를 고민해야 한다. 우리가 아무리 싫어해도 중국은 없어지지 않는다. 한국과 중국이 국제관계가 지닌 악마성을 이해한다면, 그 속에서 악마와 악마끼리는 서로 이해할 수 있는 부분도 있다. 상생할 수 있는 전략적 소통과 비전을 공유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다가오는 수많은 변수들을 어떻게 관리하면서 현재 온기를 유지할 수 있는지 고민해야 한다. 새 기회가 왔을 때 태세를 전환할 수 있는 공간과 여지를 남겨두는 것이 중요하고, 외교적 상상력을 품어야 한다. 수많은 악마들이 있는 국제정치라는 정글에서 여러 변수들에 대한 회복력과 대응력을 우리 외교가 가져야 한다.”

<시리즈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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