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유럽 등 서방 국가들은 26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의 일부 은행들을 국제은행간통신협회(SWIFT·스위프트) 결제망에서 퇴출시키겠다고 밝혔다. 러시아 금융 시스템을 마비시키는 ‘핵옵션’으로 평가받는 카드를 꺼내든 것이다.

■ “역사적으로 가장 광범위한 제재”

미국, 독일, 프랑스, 일본 등 G7과 유럽연합(EU)은 이날 “러시아군이 우크라이나를 공격함에 따라 우리는 러시아를 국제 금융으로부터 고립시키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이번 조치로 우선 선별된 러시아의 일부 은행이 스위프트 결제망에서 전면 배제되고, 러시아 중앙은행의 외환보유액에 대한 접근도 제한된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우리에게는 두 가지 선택지가 있다”면서 “러시아를 물리적으로 공격해 3차 세계대전을 시작하거나 국제법을 위반한 나라가 대가를 치르게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번 제재는 역사적으로 가장 광범위하고 정치·경제를 아우른다”고 말했다.

미국과 EU, 캐나다는 전날 푸틴 대통령과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이 각국에 보유한 자산을 동결하는 제재를 단행했다. 뉴욕타임스는 푸틴 대통령의 숨겨진 재산이 1000억달러(약 120조원)가 넘을 것으로 추정된다고 보도했다.

우크라이나에 대한 군사지원 방안도 추가로 발표됐다. 미 국방부는 바이든 대통령이 우크라이나에 대전차 화기, 소총, 방탄복 등 3억5000만달러(약 4200억원) 규모의 군수 물자를 우크라이나에 추가 지원하도록 승인했다고 밝혔다. 독일과 네덜란드도 대전차 무기와 로켓 등을 보낸다고 발표했다.

■ 러시아 경제에 심대한 타격 예상

스위프트는 200개국 1만1000여개 은행에 고유의 코드를 부여한 다음 이들 국경을 넘어 결제를 할 수 있도록 돕는 국제 금융거래전산망이다. 스위프트에서 배제된 은행들은 예전에 사용했던 텔렉스를 이용하거나 심지어 e메일로 연락을 주고받을 수는 있지만 보안과 속도 면에서 훨씬 많은 불편을 겪을 수밖에 없다. 러시아는 자체 결제 메시지 시스템을 추진해 왔지만 성과가 미미한 상태다. 월스트리트저널은 현대 사회에서 국경 간 금융거래는 경제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기 때문에 스위프트에서 배제되면 무역, 해외 투자, 송금 등 다양한 경제 활동에 타격을 입는다고 지적했다.

억만장자 투자가 빌 에크먼은 트위터에 스위프트 퇴출은 다른 은행과의 거래가 봉쇄된다는 뜻이고 자신이라면 은행 간 거래가 금지된 은행에 돈을 맡겨두지 않을 것이라면서 제재를 받은 러시아 은행에서 대규모 자금 인출인 ‘뱅크런’이 일어날 것이라고 전망했다.

러시아의 스위프트 배제는 우크라이나 사태 초기부터 검토됐지만 서방 국가 내부의 이견으로 실시가 미뤄졌다. 러시아를 스위프트에서 배제할 경우 러시아뿐 아니라 미국과 유럽도 피해를 입을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특히 천연가스 수입량의 40%를 러시아에 의존하고 있는 유럽은 러시아 금융기관과의 결제 통로가 막힘으로써 천연가스 수입에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고 우려해 왔다. 서방 금융기관들이 러시아 금융기관에 빌려준 1210억달러(약 146조원)의 자금도 묶일 수 있다.

하지만 앞서 발표된 제재에도 불구하고 러시아의 침공이 계속되자 독일 등 스위프트 카드에 반대해온 국가들도 반대 뜻을 접은 것으로 전해졌다. 다만 이번 스위프트 제재는 일부 선별된 은행만 대상으로 한다는 점에서 불완전한 조치다. 러시아를 제재하려다 다른 나라들까지 피해를 보는 부작용을 최소화하고 러시아의 반응을 보면서 추가 제재를 할 여지를 남겨둔 것이다.

러시아 중앙은행에 대한 제재 역시 6430억달러(약 775조원) 규모로 추산되는 러시아 외환보유액에 대한 접근을 제한함으로써 루블화의 가치를 크게 떨어뜨리고 러시아 경제의 인플레이션을 가속화시키는 등 직접적인 타격을 줄 것으로 전망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