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에서 무장반란을 일으켰다가 실패한 뒤 벨라루스로 거점을 옮긴 민간군사기업(PMC) 바그너 그룹의 일부 용병들이 폴란드 국경 쪽으로 이동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들이 발트 3국과 나머지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회원국을 잇는 전략적 요충지인 ‘수바우키 회랑’ 인근 도시로 이동한 것이 확인되면서 이 지역의 군사적 긴장감이 커지고 있다. 마테우시 모라비에츠키 폴란드 총리는 바그너 그룹이 불법 이주민으로 위장해 폴란드 영토로 침투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29일(현지시간) 모라비에츠키 총리는 폴란드 남부 글리비체의 무기공장을 방문한 자리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100여명의 바그너 부대가 폴란드·리투아니아 국경지역 수바우키 회랑과 가까운 벨라루스 서부 도시 흐로드나(그로드노) 근처로 이동했다”고 말했다.

흐로드나는 폴란드와 리투아니아 국경에서 각각 15㎞, 30㎞ 떨어진 도시다. 폴란드와 리투아니아 사이에 뻗어 있는 96㎞ 길이의 좁은 육로인 수바우키 회랑과 가깝다. 수바우키 회랑은 발트해 연안의 러시아 역외 영토인 칼리닌그라드와 벨라루스를 육로로 연결하는 전략적 요충지다. 동시에 발트 3국과 유럽연합(EU)·나토의 나머지 지역을 잇는 유일한 육로이기도 하다.

러시아가 수바우키 회랑 지대를 장악한다면 사실상 발트3국과 나머지 나토 회원국들을 분리하는 동시에 고립된 칼리닌그라드와 우방국인 벨라루스를 육로로 연결할 수 있게 된다. 이 때문에 지난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수바우키 회랑이 우크라이나의 뒤를 이어 ‘제2의 화약고’가 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기도 했다. 서방 군사전문가들은 러시아가 전쟁을 나토와의 대결로 확대할 경우 수바우키 회랑을 첫 번째 표적으로 삼을 것이라고 경고한 바 있다. CNN은 “바그너 그룹이 흐로드나에서 정확히 무엇을 하고 있는지는 불분명하다”면서도 “그러나 수바우키 회랑 근처에 러시아의 연합군을 배치하는 것은 나토와 EU 회원국을 뒤흔들 수 있는 전선의 확대를 의미한다”고 분석했다.

폴란드 정부는 바그너 병력의 이동을 폴란드 내 정치적 불안을 조장하기 위한 ‘하이브리드 공격의 단계’로 판단하고 있다. 하이브리드 전쟁이란 군사적 수단과 비군사적 수단을 혼합해 상대국의 혼란과 불안을 야기하는 것을 말한다. 모라비에츠키 총리는 “그들(바그너 그룹)은 아마도 벨라루스 국경수비대로 위장해 불법 이민자들의 폴란드 입국을 돕거나, 스스로 불법 이민자로 위장해 폴란드 침투를 시도할 것”이라며 “현재 상황이 훨씬 더 위험해지고 있다”고 말했다. 모라비에츠키 총리에 따르면 벨라루스에서 폴란드 국경을 넘으려는 불법 입국 시도가 올해부터 현재까지 1만6000여건에 달한다. EU 국경경비 기관인 유럽국경·해안경비청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벨라루스에서 불법으로 EU 국경을 넘은 사례는 총 2312건이었다. 폴란드와 리투아니아는 불법 입국을 차단하기 위해 벨라루스와의 국경을 따라 장벽을 세우고 경비를 강화하고 있다.

앞서 알렉산드르 루카셴코 벨라루스 대통령도 바그너 그룹이 폴란드로 진격하길 원한다고 밝힌 바 있다. 루카셴코 대통령은 지난 23일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만나 “바그너는 서쪽(폴란드)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들은 바르샤바와 제슈프를 보고 싶다고 한다”고 말했다. 바그너 그룹이 우크라이나의 최대 무기 지원국 중 하나인 폴란드에 “원한을 품고 있다”는 것이다. 다만 루카셴코 대통령은 “기존 합의대로 바그너 그룹을 벨라루스에 붙잡아 두겠다”고 덧붙였다.

바그너 그룹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자 벨라루스와 국경을 맞댄 폴란드와 리투아니아, 라트비아는 최악의 경우 국경 폐쇄까지 검토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