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 굶어 에이즈약도 못먹는 ‘슬픈 아프리카’

2011.12.23 21:25

케냐 등 식량가격 급등… 기아사태

케냐 나이로비에서 5살배기 조카 에밀리와 함께 살고 있는 인간면역결핍바이러스(HIV) 보균 여성 로살리아 아디암보(52)는 최근 중대한 결정을 내렸다. 그의 삶을 연장해주는 에이즈 치료약 복용을 중단한 것이다. 식량가격 급등 때문이었다. 아디암보는 최근 자신이 버는 돈으로 두 사람이 풍족하게 식사를 할 수 없자 에밀리에게 밥을 먹이는 대신 자신이 굶는 쪽을 택했다. 식사를 거른 채 에이즈 치료약을 복용할 경우 구토와 설사 등 부작용이 심해지기 때문이란 이유도 있었다. 병원에서 약과 함께 먹을 수 있는 식량을 배급했지만 아디암보는 그것마저 에밀리에게 줬다. 에밀리 역시 에이즈 치료약을 복용 중이기 때문이다. 아디암보는 조카에게 밥을 먹이기 위해 결국 약을 끊었다.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전 세계가 축제 분위기로 달아오르고 있지만 60년 만의 가뭄이 덮쳐 식량가격이 폭등한 동아프리카 케냐에서는 아디암보처럼 식사를 할 수 없어 에이즈 치료약 복용을 포기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고 AP통신이 22일 전했다.


올해 60년 만의 가뭄으로 기아사태가 선포된 소말리아의 수도 모가디슈에 마련된 임시 난민촌에서 지난 9월20일 영양실조에 걸린 한 아동이 음식 배급을 기다리고 있다.  모가디슈|AP연합뉴스

올해 60년 만의 가뭄으로 기아사태가 선포된 소말리아의 수도 모가디슈에 마련된 임시 난민촌에서 지난 9월20일 영양실조에 걸린 한 아동이 음식 배급을 기다리고 있다. 모가디슈|AP연합뉴스

아디암보의 이웃에 살고 있는 이쉬마엘 아봉고(35)도 자신과 아내, 아들이 모두 에이즈 보균자다. 세 사람은 병원에서 약과 함께 주는 식사를 나눠먹고 있다. 그러나 양이 충분하지 못하기 때문에 아봉고 역시 약 복용 중단을 고려하고 있다. 아봉고는 “내 주위에도 제대로 밥을 못 먹기 때문에 약을 끊은 사람이 4명 있다. 그리고 그들은 모두 죽었다”고 말했다.

나이로비 병원의 간호사인 발레리안 카미토는 “에이즈 치료를 거부하기 시작한 환자가 늘어나고 있다”면서 “이 병원에서 에이즈 치료약을 먹고 있는 환자 1555명 중 4분의 1 정도가 약 복용을 중단했다”고 말했다. 환자들이 약을 끊는 주요 이유는 빈 속에 약을 먹을 수 없기 때문이다. “식량가격이 급등하기 전에는 이런 일이 아주 드물었다”는 것이 카미토의 설명이다.

유엔 식량농업기구(FAO)에 따르면 올해 식량가격은 2009년에 비해 약 2배가 올랐다. 이는 케냐의 연간 물가상승률인 20%를 훨씬 웃돈다. 반면 임금 인상률은 물가상승률을 따라잡지 못하고 있다. 올해 60년 만의 가뭄이 찾아온 동아프리카에서는 1000만명 정도가 굶주리고 있다. 유엔은 지난 7월 소말리아에 기아사태를 선포하기도 했다. AP통신은 “식량가격은 폭등한 반면 에이즈 치료 프로그램의 기금은 갈수록 줄어들어 최빈국의 가정에서는 에이즈 치료와 식사가 선택의 문제로 떠올랐다”고 지적했다.

세계적 구호단체인 미국 가톨릭구제위원회에 따르면 에이즈 보균 성인은 체중을 유지하기 위해 일반인보다 약 10%의 칼로리를 더 섭취해야 한다. 어린이 보균자는 또래보다 30~50%의 칼로리가 더 필요하다. 체중을 유지하지 못할 경우 감염에 노출될 가능성이 더 커지기 때문이다.

세계식량계획(WFP)은 저개발 국가에서 에이즈를 치료하는 환자들 중 30%가량이 2년이 지나기 전에 치료를 중단한다고 밝혔다. 세계식량계획의 부국장인 닐스 그리드는 “이는 빈곤과 관련이 깊다”고 설명했다. 약을 복용하려면 영양분을 충분히 섭취해야 하는데 그러려면 나머지 가족들이 식사를 포기해야 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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