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팔레스타인 - 춤은 총보다 강하다
이스라엘 텔아비브 해변 옆 식당가 하타하나의 작은 카페에 10대 청소년 4명이 웃음 띤 얼굴로 앉아 있다. 이스라엘인 남매 데이비드 다나(18)와 로이스 다나(17), 팔레스타인인 아부 쿠투스(17)와 무하마드 마샤위르(18). 로이스와 쿠투스는 몇년째 죽이 잘 맞는 단짝 친구다. 유대인과 아랍인이 섞여 사는 이스라엘이지만 함께 어울리며 절친이 되는 경우는 드문 편이다. 로이스는 “모든 게 춤 덕분이었다”고 말했다. 이들은 6년 전 ‘댄싱 인 자파’라는 프로그램을 통해 함께 춤을 배웠다. 같은 텔아비브에 살고 있다고는 하나 유대인과 아랍인들은 서로를 투명인간 취급한다. 아이들조차 서로 눈도 마주치지 않는 상황에서 함께 춤을 춘다는 것은 좀처럼 상상하기 힘든 일이었다.
“이 프로그램을 학교에서 알게 됐을 때 다른 친구들은 대부분 거부했어요. ‘만약 아랍 애들과 춤추는 걸 본다면 우리 아빠가 날 죽이려 할 거야’라고 했지요. 전 호기심이 나서 부모님에게 말하지 않고 시작했어요. 처음엔 서로 많이 싸웠죠. 발로 차고 얼굴에 침을 뱉는 아이들도 있었거든요.”
로이스의 말에 웃음을 짓던 쿠투스가 말을 이었다. “저 역시 처음엔 유대인 친구들과 함께 춤을 배운다고 부모님께 말하지 못했어요. 다들 서로의 존재는 인식하고 있지만 분위기 때문인지 함께 이야기하거나 어울릴 계기가 거의 없어요. 서로 다른 문화·역사적 배경에 따른 오랜 적대감 같은 것 때문이죠. 그런데 저도 함께 춤을 추면서 민족이나 인종, 국적과는 상관없이 우정을 쌓을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어요.”
■ 춤으로 소통하는 사람들
‘댄싱 인 자파’는 2011년 시작된 프로그램이다. 세계적인 볼룸댄서 피에르 듈레인이 춤으로 민족 간 갈등을 치유하기 위해 유대인 학생과 아랍인 학생들이 함께 사교댄스를 배울 수 있는 교실을 텔아비브 구시가지인 자파의 학교 세 곳에 열었다. 처음 이 프로젝트가 알려졌을 때 낙관하는 사람들은 소수였다.
“춤은 다른 예술과 달리 서로 신체적인 접촉을 할 수 있는 예술이에요. 그 때문인지 세계의 많은 학생들에게 춤을 가르치면서 치유의 효과를 경험했지요. 서로를 적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끼리 가능할까 하는 걱정도 됐지만 막상 아이들을 보니 5개월도 지나지 않아 기적이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듈레인의 프로젝트는 영화감독 힐라 메달리아가 다큐멘터리로 제작하기도 했다. 무하마드 마샤위르는 “듈레인의 교실에서 춤을 추기 전엔 공부에 관심도 없었는데 춤을 추면서 내가 뭘 좋아하는지 알게 됐다”면서 “앞으로 텔아비브의 시장이 되고 싶다”고 말했다. 로이스의 오빠 데이비드는 “이 수업에서 친구들을 만나지 못했다면 평생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오해하며 살았을 것 같다”고 설명했다.
댄싱 인 자파 프로그램 외에도 무용을 통한 민족 간 문제 해결에 접근하는 예술인들은 여럿이다. 이스라엘을 대표하는 세계 정상급 현대무용단인 밧셰바 무용단도 자파에서 무슬림, 유대인, 기독교인 어린이들을 함께 교육하는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안무가 리나나 라즈는 이스라엘 북쪽 아랍인 공동체인 드루즈 마을에서 아랍의 민속춤인 ‘답케’ 무용수들과 함께 작품을 만들어 올렸다.
‘우리는 아랍을 사랑해’는 춤을 통한 민족 간 화해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작품이다. 30대인 이스라엘 안무가 겸 무용수 힐렐 코갠과 팔레스타인 동료 아디 부르투스가 공동 안무했다. 이스라엘·팔레스타인 간 정치상황을 비꼬며 권력관계의 문제를 패러디한 내용으로, 무용과 퍼포먼스, 연극 등이 결합돼 있다. 2013년 처음으로 텔아비브에서 선보인 뒤 프랑스, 스페인 등지를 돌며 지금까지 100회 이상 공연됐다. 지난 8일 프랑스 파리 롱푸앙 극장 무대에 오른 뒤 르몽드도 이를 크게 보도했다. 이스라엘 내에서 사실상 금기시된 양 민족 간의 예술적 협업이 관심을 끌고 있는 것이다.
텔아비브의 수잔 델랄 무용센터에서 만난 코갠은 “이스라엘 인구 중 팔레스타인 인구가 20%나 되는데 왜 무용계에선 이들을 찾아볼 수 없을까 하는 문제의식에서 시작하게 됐다”고 말했다.
“예술계가 진보적인 편인데도 유독 무용은 ‘아랍 제한 구역’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예요. 그래서 이 작품은 이스라엘에 자리 잡은 자국중심주의 예술의 현실을 비웃고도 있지요. 사실 이 땅에 누가 먼저 왔나요. 저희 부모님은 1972년에 왔는데 내 파트너 아디의 가족은 이곳에 정착한 지 300년이 넘었어요.”
마침 수잔 델랄 센터에선 밧셰바 무용단의 ‘나하린의 바이러스’가 공연되고 있었다. 오스트리아 작가 페터 한트케의 희곡 ‘관객모독’을 원작으로 한 작품에는 팔레스타인 민속 음악가인 하빕 알라 자말이 참여했다.
라베아 모르쿠스는 이스라엘 북부 칼릴리 인근에 있는 아랍 커뮤니티 카프르 야시프에서 사설 무용학원을 운영한다. 키부츠 댄스 컴퍼니 출신인 그는 이곳에서 10년째 팔레스타인 어린이들에게 현대무용을 가르치고 있다. 이곳에서 무용을 배운 학생들은 유수의 무용단 단원으로 진출한다. 11살 때부터 이곳에서 교습받았던 마하 아와드는 현재 현대무용단 ‘버티고’에서 연습생으로 있다. “이곳은 아랍 커뮤니티 내에서 진짜 발레와 현대무용을 가르쳐주는 유일한 스튜디오예요. 아랍 커뮤니티에선 답케밖에 배울 수 없어요. 나는 라베아의 스튜디오에 와서 발레와 현대무용, 즉흥무용을 배웠고, 그것은 내게 새로운 세계를 열어줬어요.”
■ 현대무용 강국 이스라엘
많은 예술 장르 중에서 민족 간 화해의 시도가 특히 두드러지는 분야는 무용이다. 왜 무용일까.
밧셰바를 비롯해 키부츠, 버티고 등 세계 정상급 무용단이 있는 이스라엘은 현대무용 강국이다. 주요 무용 유학국가일 뿐 아니라 무용 축제와 경연대회가 연중 끊이지 않는다. 이스라엘 댄스 서머 페스티벌, 텔아비브·아포 국제 무용 페스티벌, 갈릴리 카르미엘 국제 무용 페스티벌은 관광산업의 중요한 자원이기도 하다.
무용비평가 루스 에셸은 이스라엘 무용사를 다룬 저서 <춤이 날개를 편다>에서 “유럽 각 지역에서 모인 사람들이 이스라엘 땅에서 재정착을 하며 아방가르드 문화를 잘 흡수했다”면서 “전통적으로 민속무용이 발달했던 터라 이를 바탕으로 현대무용을 통해 정체성을 강화했다”고 분석한다. 미국의 전설적인 무용가 마사 그레이엄은 이스라엘에 특히 많은 영향을 끼쳤다. 이전까지 이스라엘은 국가주의적이거나 성서적인 내용의 무용이 지배적이었다면 1950년대 들어 미국 무용을 받아들이고 1964년 밧셰바 무용단을 창단하면서 새로운 도약을 한다. 외국 작품을 카피하다가 창작 작품이 본격적으로 나오기 시작했다. 정부의 지원과 투자가 늘어나면서 무용교육도 확대됐고 지역기반 축제도 늘어났다.
텔아비브에서 기차로 1시간30분쯤 북쪽으로 올라가면 나타나는 마을, 키부츠 갸통은 전체가 무용단지다. 세계적인 댄스 컴퍼니 ‘키부츠 현대무용단’이 이곳에 있다. 무용단 본부와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세컨드 컴퍼니, 고교 재학생 대상 무용학교, 2년짜리 전문학원, 세계에서 찾아오는 무용인들을 선발해 교육하는 기관과 연구소 등이 모여있다.
키부츠 현대무용단 예술감독 라미 베에어(60)는 “이 댄스 빌리지는 이스라엘 내에서도 매우 독특한 무용 마을”이라며 “세계 각지에서 온 학생들이 이곳에서 훈련을 받으며 이스라엘을 체험하고 문화를 배워간다”고 소개했다.
지난 6월 말 찾았던 텔아비브의 티무나 극장에선 실험적 대안무용축제 ‘인티마 댄스 페스티벌’이 열리고 있었다. 평일 낮인데도 임산부, 노부부 등 다양한 연령대의 관객들이 300석의 객석을 꽉 채우고 있었다. 텔아비브대학 무용학과 연구원인 요나트 로스먼은 “크고 작은 무용축제와 공연은 텔아비브뿐 아니라 이스라엘 전역에선 연중 열리고 있다”고 설명했다.
■ 정치적 도구가 된 예술
1990년대 이후 이스라엘 무용계에선 팔레스타인을 향한 이해와 포용을 담은 작품들이 꾸준히 늘어났다. 하지만 최근 몇년 새 그런 움직임은 주춤해졌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사이의 감정적 골이 깊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루스 에셸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사이의 갈등은 일상적일 뿐 아니라 다층적이며 복합적이기 때문에 점점 예술인들이 접근하기 어려워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스라엘 정부가 주도적으로 지원한 덕분에 현대무용 강국이 되긴 했지만 이 같은 배경은 예술인들에게 고민거리로 작용하기도 한다. 한마디로 정부의 ‘프로파간다’로 기능한다는 것이다. 프랑스로 망명해 유럽을 무대로 활동하고 있는 안무가 겸 무용수 아르카디 자이디스는 몇년 전만 해도 이스라엘 외무부로부터 든든한 후원을 받았다. 하지만 그가 이스라엘을 비판하는 내용의 작품을 만든 뒤 정부는 그에 대한 지원을 중단했다. 자이디스는 “이스라엘 무용단이 이루는 성취들이 있지만 그 이면엔 ‘프로파간다 머신’으로서 기능하는 측면도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스라엘 문화부 웹사이트에 ‘이스라엘의 춤은 최고의 문화 대사다’라는 말이 있는데 이것은 춤이 정치적으로 작용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라면서 “이스라엘이 저지르고 있는 추악한 부분들을 감추고 포장하는데 무용이 일조하고 있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실제로 이스라엘 정부는 안보 최우선주의 기치 아래 좌파 예술가들에 대한 지원을 막고 있다. 건국대 중동연구소장 최창모 교수(융합인재학부)는 “2015년 이스라엘 국회가 채택한 ‘비정부기구 투명성 관련 법안’엔 좌파 예술가들을 밀착 감시하고 문화적 충성을 강요하며 ‘유대국가로서 이스라엘의 존재를 부정하는 모든 예술가에게 보조금 지급을 금한다’는 내용이 담겨있다”고 설명했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사이에 문화적 협업이 주춤해지면서 팔레스타인은 예술적 에너지를 내부적으로 응축시켜 대외적인 소통의 창구로 활용하고 있다. 정치적 고립 상황을 외부에 알리는 통로로 사용할 뿐 아니라 문화예술 교육을 통해 민족적 결속력을 다지는 데 노력하고 있다.
현재 팔레스타인 영토의 78%는 이스라엘이 불법 점령하고 있다. 요르단강 서안지구, 가자지구, 동예루살렘 지역만 팔레스타인 땅이다. 1993년 오슬로 협정 이후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이스라엘군의 허가가 있어야 통행의 자유를 얻을 수 있다. 이스라엘이 일방적으로 팔레스타인 영토에 분리장벽을 세워 출입을 통제하고 있다.
■ 긴 싸움을 버티는 힘
지난 6월 말 텔아비브의 한 호텔 앞에서 밴을 몰고 온 팔레스타인 운전기사와 만났다. 안식일이라 대중교통을 이용할 수 없기 때문에 그의 밴으로 함께 팔레스타인 라말라로 가기로 한 터였다. 그처럼 이스라엘 영토 안에서 운전할 수 있는 자격을 갖고 있는 팔레스타인인은 많지 않다.
45분을 달려 도착한 라말라 시내는 곳곳이 공사 중이었다. 팔레스타인 정부가 있는 라말라 입구에서 유엔 소속인 할리드 알리 나시프가 합류했다. 나시프는 “팔레스타인은 인건비가 싸기 때문에 이곳에서 사업을 하고 싶어 하는 기업들의 투자가 조금씩 늘고 있다”고 말했다.
서안지구에는 20여곳의 난민촌이 있다. 그중 가장 규모가 큰 곳은 베들레헴에 있는 헤이샤 캠프다. 캠프 옆에 세워진 ‘이브다 문화센터’는 이스라엘에 땅을 빼앗긴 난민들에게 정신적 지주와도 같은 역할을 한다. 라말라에서 베들레헴으로 가는 데는 2시간 가까이 걸렸다. 예루살렘을 통과하면 30분이 채 걸리지 않는 거리지만 이스라엘 정부가 2m 높이의 콘크리트 분리장벽과 전기충격 울타리를 쌓아 길을 막아놓았기 때문에 에둘러 가야 한다.
‘이브다’는 팔레스타인 말로 창조적이라는 뜻이다. 센터는 거주하던 땅에서 쫓겨나 준전시상태의 삶을 살아가는 청소년, 여성을 위한 다양한 프로그램을 갖추고 있다. 센터 대표를 맡고 있는 할레드 사이피는 진한 에스프레소 커피를 권했다.
“우리 아이들, 청소년들에게도 제 나이에 맞는 운동과 놀이가 필요합니다. 춤추고 노래하고 그림을 그리고 운동을 하는 그 또래의 아이들이죠. 그런데 1994년 첫 인티파다 후 세계 언론은 우리 아이들을 ‘체제에 저항해 돌을 던지는 영웅(stone thrower)’으로만 그렸어요. 우린 우리의 미래가 될 아이들을 치유하고 기회와 희망을 주기 위해 이 센터를 만들었어요.”
문화적 결속과 교육뿐 아니라 수익으로까지 연결되는 것은 이들의 민속무용 ‘답케’다. 센터는 답케 청소년무용단을 꾸려 세계투어를 다니고 있다. 지난여름엔 요르단 페스티벌에서, 10월엔 프랑스에서 공연했다. 사이피는 “우린 우리의 땅을 찾아 돌아가야 하는데 언제 돌아갈지 모르는 장기 투쟁을 하고 있다”면서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인간답게 살면서 버텨야 한다”고 강조했다.
마을 담벼락 곳곳엔 그들의 ‘돌아갈 권리’를 상기시키는 메시지의 벽화와 그라피티가 새겨져 있다. 돌아갈 권리는 1948년 이스라엘로부터 추방당한 후 내쫓긴 영토로 다시 돌아가 거주할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권리를 말한다. 이곳 직원인 지하드 라마단은 “여기에 있는 모든 것, 도로 하나, 전깃줄 하나까지 우리가 스스로 일군 것”이라며 “우리는 팔레스타인의 역사를 만들고 있다”고 자랑스럽게 말했다.
취재 도중 라말라에 있는 ‘대중문화 센터’에서 취재에 응할 수 없다는 e메일을 보내왔다. 이곳은 팔레스타인의 문화와 예술을 증진하기 위해 1987년에 설립된 비정부기구다. 방문 목적을 묻는 이들의 질문에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예술적 협업 현황도 궁금하다’고 썼던 게 화근이었다. 이들은 이스라엘과 관계된 모든 일은 보이콧한다고 밝혔다.
■ 과거와 미래를 이어가는 법
사리예트 라말라 그룹은 팔레스타인 청년들에게 문화예술을 통해 미래를 모색하도록 돕는 민간기구다. 그룹 내에는 라말라 무용단, 민속무용단, 현대무용단, 어린이 극단, 무용학교 등이 있다. 이 중 2005년 창립된 현대무용단은 답케에 머물러 있던 팔레스타인 춤을 현대화시켜 팔레스타인의 예술을 세계에 알린 주역이다. 이듬해 시작한 라말라 현대무용축제는 지역의 명물로 자리 잡으면서 연례행사가 됐다. 이 축제에는 아크람 칸, 마기 마랭 등 현대무용의 거장들을 비롯해 전 세계에서 100여명의 무용수들이 참여한다.
춤이 이스라엘 정부에서 정치적 선전도구로 작용한다면 팔레스타인 측에는 정치적으로 고립된 현실에서 외부 세계와 연결되는 통로가 되고 있다. 라말라 그룹은 팔레스타인 내의 활동에만 머물러 있지 않다. 시리아와 요르단, 레바논의 현대무용단과 함께 ‘마카마트 댄스 네트워크’를 만들어 아랍권 현대무용의 발전을 꾀하고 있다. 이 네트워크는 이탈리아 로마 현대무용단과도 자매결연을 맺는 등 네트워크를 확장해가고 있다. 할레드 엘리얀 대표는 “우리에게도 무용은 몸을 통해 표현한다는 점에서 중요한 예술적 수단이자 정치적 의미가 있다”고 강조했다. “우리의 춤엔 팔레스타인의 노래, 의복, 역사가 담겨 있어요. 그것 자체로 이스라엘에 저항하는 힘과 메시지가 되는 것입니다. 서안지구에 있는 비젯대학엔 최근 예술학과가 생겨 예술에 대한 정식 교육이 이뤄지고 있지요.”
‘팔레스타인 유산과 답케를 위한 수무드 그룹’은 이스라엘에 저항하기 위해 1988년 창립됐다. 단원들이 이스라엘군에 의해 체포·투옥되면서 해체됐다가 2010년 재창립된 뒤 세계 무대에서 팔레스타인의 춤과 음악 공연을 펼치고 있다. 현재 단원은 45명이다. 답케의 전통을 원형대로 보존하는 데 중점을 두고 있는 이들은 스위스, 알제리, 불가리아, 아이슬란드, 미국 등 세계 각지에서 초청을 받는다. 하지만 항공권과 숙박비용 상당 부분을 자비로 부담한다. 이 때문에 대부분의 단원이 생업을 갖고 있다. 낮에는 헤어드레서로 일하고, 밤에는 청소년에게 무용을 가르치는 마무드 오마르는 “생업을 하면서 춤을 추는 것이 쉽지 않지만 우리에게 춤은 팔레스타인을 알리는 수단이자 사투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딱히 춤추는 것 말고 낙이 없다”는 단장 하메도 시블리는 낮에는 건축현장에서 일한다. “우리에게 민속춤과 유산을 잘 보존해 전승하고 이어가는 것은 최대의 사명이에요. 우리가 지키지 못하면 영원히 지구상에서 사라질 수도 있으니까요. 정치가 실패하고 있기 때문에 우리에겐 이 사명이 더 절실하고 소중합니다.”
최근 들어 팔레스타인에서는 ‘클럽 문화’도 확산되고 있다. 전시체제에 준한 긴장감으로 고단한 일상을 이어가고 있는 이곳 젊은이들에게 숨통을 틔워주는 공간이 되기도 한다. 얼마 전에는 팔레스타인 최초의 여성 DJ도 나왔다. ‘스카이워커’라는 이름으로 알려진 스물여섯 살 사마 압둘라디다. 그는 인근의 아랍권 국가 소녀들에게 ‘롤 모델’이 되고 있다. 무슬림인 압둘라디는 요르단에서 음악제작을 공부한 뒤 런던 유학까지 마치고 라말라로 돌아왔다. 현지 젊은이들에겐 잘 알려진 스타지만 팔레스타인 출신으로 겪어야 하는 일상의 고충은 그에게도 예외가 아니다. 텔아비브나 하이파의 유명 클럽에 자주 초청을 받지만 그는 매번 분리장벽을 넘을 때마다 까다로운 이스라엘 군사 검문소를 통과해야 한다. 그는 한 언론매체와의 인터뷰에서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겨우 40분 거리에 있는 아름다운 자파 해변에도 갈 수 없다”면서 “이동의 자유가 제한되어 있다는 것은 꿈을 빼앗긴 재난 같은 삶”이라고 지적했다.
■ 국경 밖에서 펼쳐지는 시도
이스라엘 내부에서의 협업은 위축된 상황이지만 해외에서 양측의 화해와 치유 노력은 활발해지고 있다. 이는 표현의 자유를 찾아 망명한 예술인들에 의해 주도되고 있다. 대표적인 활동가는 오스트리아 빈을 거점으로 하고 있는 안무가 겸 문화기획자 나디아 아루리다.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 청소년들로 구성된 ‘서동시집 오케스트라’ 단원으로도 활동했던 그는 2011년 라말라에서 ‘얀테’를 창립했다. 얀테는 상처 입은 청소년들에게 무용을 가르치며 마음을 보듬는 역할을 했다. 또 장애를 가진 60여명의 청소년들로 구성된 무용단 ‘세렌디피티’도 만들었다. 세렌디피티는 팔레스타인에서 여러 차례 공연을 가지면서 지역 내에서도 더욱 소외된 아웃사이더들에게 위로의 손길을 내밀었다. 현재 빈에서 팔레스타인 청소년을 위한 문화활동을 기획 중인 그와는 전화로 인터뷰할 수 있었다.
“예술은 개인의 자존감을 진작시킬 수 있는 중요한 수단이에요. 특히 사람들 앞에 서서 자신의 몸을 통해 표현하는 무용은 자존감을 얻을 수 있도록 해줍니다. 우린 청소년들, 추방된 이들, 장애를 가진 사람들이 제각기 독립적으로 설 수 있도록 가르쳤어요. 예술을 통한 화해도 좋고 평화도 좋아요. 하지만 그 전에 개개인의 상처가 치유되고 그들의 인격이 존중받아야 합니다. 저는 오랜 기간 상처받아온 그들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이스라엘 정부에 비판적인 작품을 선보였던 안무가 자이디스는 망명 뒤에도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문제를 다룬 작품을 꾸준히 무대에 올리고 있다. 아랍 무용수들과 함께 만든 ‘콰이어트’ 덕분에 세계 무대에서 그의 인지도는 높아졌다. 지난달에는 독일 베를린에서 난민에 대한 유럽인들의 경계심을 풍자한 작품 ‘탈로스’를 선보여 호평을 받았다. ‘탈로스’는 유럽연합이 제작한, 불법 월경 행위를 감시하는 이동 로봇 프로그램이다. 환승을 위해 들른 베를린에서 만난 그는 ‘시대에 대한 예술인의 의무’에 대해 목소리를 높였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사이엔 일방적이고 극심하게 비대칭적인 권력관계가 오랫동안 형성돼 있었습니다. 한쪽이 행사하는 자유 때문에 상대가 생존과 존엄성을 위협받는 관계는 분명 비정상적이지요. 당대를 이야기하고, 당대 사람들과 호흡하는 것은 예술인들의 숙명입니다. 그렇다면 이 문제에 맞닥뜨린 예술인들이 어떻게 해야 할지 그 답은 분명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