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이라크, 서로를 너무 몰랐다”

2009.02.01 17:12

"미국과 이라크는 서로를 너무 몰랐다."

미국의 초당적 정책자문기구인 이라크연구그룹(ISG) 단장을 지낸 찰스 두엘퍼는 이라크전의 실패 원인을 이렇게 진단했다. '이라크가 대량살상무기(WMD)를 개발한 정황이 있다'는 모호한 근거만 난무했을 뿐, 정작 서로의 의도와 군사능력에 대한 정보는 빈약했던 것이 이라크 사태를 수렁으로 끌고간 원인이라는 것이다.

워싱턴포스트(WP)는 31일 두엘퍼 단장의 새 회고록인 "숨바꼭질:이라크에서의 진실찾기(Hide and Seek:The Search for Truth in Iraq)"를 소개했다.

두엘퍼는 먼저 미국과 이라크가 서로를 "몰라도 너무 몰랐다"고 평가했다. 국제무대에서 슈퍼파워로 군림하는 미국이지만 미국의 최고 정책결정자들, 특히 백악관과 국방부의 관리들은 이라크의 역사ㆍ지도자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조차 갖추지 못했다는 것이다.

이라크 역시 미국에 대해 모르기는 마찬가지였다. 이라크는 WMD를 문제삼는 미국의 '진짜 의도'가 무엇인지에 대해 정확히 읽어내지 못했으며, 미국 정보기관의 능력을 과신했다. "이라크에는 WMD가 없다"며 큰소리치던 사담 후세인 전 대통령조차 자국 사령관들에게 "내가 모르게 숨겨둔 무기가 있나"라고 추궁할 정도였다.

두엘퍼는 "2003년 미국의 이라크 침공이 벌어지기 직전, 미국 관리 중 나보다 더 이라크의 지도자들과 무기 현황에 대해 잘 아는 사람은 없었던 것 같다"고 회고했다.

미국의 이라크 침공 가능성이 고조되자, 이라크 고위 관리들은 두엘퍼에게 미국과의 관계 개선을 위한 대화에 나서고 싶다는 뜻을 전했다. 1990년대 유엔 무기사찰단장으로 일하며 현지인들과 친분을 쌓아둔 두엘퍼를 매개자로 삼고자 한 것이다.

두엘퍼는 이를 미국 정부에 전달했으나 회신을 받지는 못했다.

이에 두엘퍼는 미군의 이라크 침공 이후의 상황에 대비, 이라크 국정 운영에 도움이 될만한 고위급 관리 40여명의 명단을 작성한 뒤 이들과의 비밀 접촉에 나섰다. 그러나 이라크전이 시작되자 이 명단은 악용되기 시작했다. 미군이 이 명단을 '검거 대상 명단'으로 사용한 것이다.

회고록에는 또 사담 후세인 전 이라크 대통령이 미국의 이라크 침공 직전인 2003년초 예브게니 프리마코프 전 러시아 총리를 만났던 사실도 공개됐다.

후세인을 만난 프리마코프는 블라디미르 푸틴 당시 러시아 대통령이 쓴 편지를 전달했는데, 편지에는 "후세인이 스스로 권좌에서 내려와 집권 바트당의 총재직을 유지하는데 만족한다면 미국이 이라크를 침공하지 않을 것이라고 확신한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는 것이다.

이 소식을 들은 콜린 파월 전 미 국무장관은 당시 이라크연구그룹(ISG) 대표로 있던 두엘퍼에게 이 사실을 보고서에 담지 말 것을 부탁한 것으로 알려졌다.

두엘퍼는 회고록에서 이밖에 2006년말 처형된 후세인 전 대통령의 '마지막 며칠'에 대해서도 소개했다.

처형 직전까지 바그다드 공항 인근의 미군기지인 캠프 크로퍼 내 수감시설에 머물던 후세인은 시 쓰기로 소일했으며, 그를 돌보던 미국인 간호사들과 농담을 주고받기도 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그는 자신을 처형할 때 평범한 범죄자처럼 교수형에 처하지 말고, 군인들처럼 총살형에 처해달라고 부탁하곤 했다고 두엘퍼는 전했다.

후세인은 또 자신을 담당한 연방수사국(FBI) 수사관에게 "적국인 이란과 이스라엘이 핵무기를 보유한 이상 나 역시 핵 프로그램을 추진할 수밖에 없다"면서 자신이 핵무기를 보유한 것은 수십년간의 유엔 제재에도 불구하고 이라크가 약해지지 않았다는 것을 이웃국들에게 알리기 위한 것이었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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