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치 전범 책임 어디까지? 100세 남성 기소한 독일, 역사학자 사과하라는 폴란드

2021.02.10 14:01 입력 2021.02.10 15:26 수정

지난 세기 나치 전쟁범죄의 책임은 어디까지 물을 수 있을까. 가해자였던 독일의 검찰은 나치 수용소의 하급자로 일한 100세 남성을 기소한 반면, 점령지였던 폴란드의 법원은 일부 폴란드인의 나치 부역을 지적한 교수들에게 사과하라는 판결을 내렸다.

한 남성이 독일 작센하우젠 나치 수용소로 걸어 들어가고 있다. AP연합뉴스

한 남성이 독일 작센하우젠 나치 수용소로 걸어 들어가고 있다. AP연합뉴스

가디언은 9일(현지시간) 독일 노이루핀시 검찰이 1942년부터 1945년까지 작센하우젠 수용소에서 나치 친위대의 경비원으로 일했던 100세 남성을 기소했다고 보도했다. 그는 작센하우젠 수용소에서 일하면서 3518명의 살인을 도운 혐의를 받고 있다.

노이루핀시 법원은 “혐의에는 1942년 소련의 전쟁 포로를 총살해 처형한 것도 포함된다”며 “총살은 물론 치명적인 치클론B(독일이 살충제로 개발한 시안화수소 화합물) 가스를 사용해 수용소 수감자의 살인에 가담했고, 수용소의 시설·기능을 유지함으로써 수감자를 죽음에 이르게 했다”고 밝혔다.

검찰은 그가 고령에도 불구하고 재판을 받는 데는 지장이 없다고 보고 있다. 독일은 전쟁 범죄에 가담한 혐의가 있는 90세 이상 고령자를 앞서 여러 차례 재판에 세웠다. 지난주에는 나치 수용소에서 비서로 일했던 94세 여성이 1만건의 살인에 종범으로 가담한 혐의로 기소됐다. 그는 나치 수용소에서 일할 당시 미성년자였다.

지난 10년간 나치 전쟁범죄에 대한 형사 책임 범위가 넓어진 것이 영향을 미쳤다. 2011년 독일 법원은 나치 수용소에서 경비원으로 일했던 남성에게 홀로코스트를 방조한 책임을 물어 유죄를 선고했다. 나치 수용소에서 일했다면 대학살과 무관할 수 없다는 이 판례는 이후 수용소에서 일했던 낮은 직급의 관리자·경비원·비서 등의 사법처리를 가능케 했다.

악셀 드레콜 브란덴부르크 기념재단 이사는 뉴욕타임즈에 고령이 된 전범들의 잇단 기소에 대해 “그간의 맥락에서 살펴볼 때 중요할 뿐 아니라 상징적으로도 중요하다”며 “독일 사법제도가 전쟁범죄를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지속적으로 처벌을 추구하고 있음을 보여준다”고 했다.

나치 강점기 폴란드인의 삶을 다룬 책 <끝없는 밤>. AP연합뉴스

나치 강점기 폴란드인의 삶을 다룬 책 <끝없는 밤>. AP연합뉴스

반면 폴란드 바르샤바 법원은 이날 일부 폴란드인이 홀로코스트에 가담했다는 내용의 책을 출간했다가 명예훼손으로 피소된 역사학자 2명에게 유족에게 사과하라고 판결했다. 이들 역사학자들은 나치 강점기를 다룬 책 <끝없는 밤>에서 폴란드인 에드워드 말리노프스키가 나치로부터 유대인 여성 한 명을 구했지만 “수십 명의 유대인의 죽음에 공동 책임이 있다”고 서술했다. 말리노프스키의 유족은 이미 전범 재판에서 무죄 선고를 받은 말리노프스키의 명예를 훼손했다며 10만 즈워티(한화 약 3000만원)를 배상하라는 소송을 제기했다. 법원은 학문의 자유를 위축시킬 수 있다고 보고 금전 배상 청구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최근 몇년간 폴란드에서는 폴란드인의 나치 부역에 대한 학술 연구가 진행되면서 논란이 이어졌다. 폴란드인 상당수가 위험을 무릅쓰고 유대인의 생명을 구했다는 기존 사관과 배치됐기 때문이다. 실제 이스라엘의 야드 바셈 홀로코스트 기념관은 3만5000명의 유대인을 구한 7112명의 폴란드인을 기리고 있는데, 이는 유럽 국가 중 가장 많은 숫자다. 보수-민족주의 정당이 집권하는 현재 폴란드의 상황은 논란을 보다 확장시켰다. 이달 초에는 ‘폴란드인의 홀로코스트 가담’을 기사에 언급한 언론인이 경찰 심문을 받기도 했다.

이날 선고를 받은 역사학자 얀 그라보스키 오타와대 교수는 영국 파이낸셜타임스에 “인문학을 연구하는 독립 연구자에 대한 광범위한 해고”라며 홀로코스트 관련 연구의 위축을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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