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비판 미온적인 아프리카·아시아 국가들, 왜?

2022.03.20 17:42 입력 2022.03.21 11:38 수정

2일 열린 유엔 긴급특별총회에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규탄하고 철군을 촉구하는 결의안이 114표의 찬성을 얻어 통과됐다. /신화연합뉴스

2일 열린 유엔 긴급특별총회에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규탄하고 철군을 촉구하는 결의안이 114표의 찬성을 얻어 통과됐다. /신화연합뉴스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에 맞서 단결해야 한다는 서방의 목소리에 상당수 아프리카·아시아 국가들의 반응은 미온적이다. 이들은 자유진영 대 권위주의 진영 한 편에 서기를 거부하거나 러시아의 입장을 지지한다고 밝혔다. 러시아와의 군사·경제협력, 정권 간 거래, 서방과 제국주의로 얽힌 역사, 중국과의 긴장 등이 이유다.

지난 2일(현지시간) 유엔이 긴급특별총회를 열고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규탄하고 철군을 촉구하는 결의안을 냈을 때 35개국이 기권하고 5개국(북한, 에리트레아, 시리아, 벨라루스)은 반대의사를 표시했다. 기권·반대 비율이 가장 높은 대륙은 아프리카로 54개국 중 25개국이 기권하거나 투표하지 않았다. 케냐와 가나는 러시아에 대한 비판 목소리를 냈지만 대다수 국가들은 자제하고 있다. 중국, 인도, 이란, 베트남 등도 기권했다.

러시아를 적극적으로 옹호하는 목소리도 나왔다. 30년 넘게 집권하고 있는 요웨리 무세베니 우간다 대통령은 최근 언론 인터뷰에서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의 동진이 러시아의 안보를 위협했다”며 러시아를 두둔했다. 유력한 후계자로 지목되는 그의 아들 무후지 카이네르가바 중장은 트위터에 “(백인이 아닌 인류의 대다수는)우크라이나에서 러시아의 입장을 지지한다. 푸틴이 절대적으로 옳다!”고 썼다.

아프리카·아시아에서 나타나는 이같은 분위기에는 역사적 맥락이 있다. 냉전 시절부터 아프리카 국가들은 옛 소련과 밀접한 관계를 맺어 왔다. 앙골라, 모잠비크, 나미비아, 남아프리카공화국, 짐바브웨의 반제국주의 세력은 백인 통치를 종식시키기 위해 소련과 동맹을 맺었고 소련 유학을 경험한 엘리트들도 많다. 이들 지역은 러시아를 소련의 후계자로 간주하고 있다. 러시아는 2014년 크름반도(크림반도) 합병 이후 서방의 경제제재가 시작되자 아프리카로 눈을 돌리며 협력을 더 강화했다. 러시아는 코로나19 대유행 기간에도 중국과 함께 아프리카 저개발국에 백신공급을 주도했다.

미국과 나토에 대한 반감도 크다. 브뤼셀에 기반을 둔 싱크탱크 국제위기감시기구의 무리티 무티가는 “미국이 중동과 아프리카에서 일극적인 힘을 사용하는 방식에 아프리카 지도자들이 화가 나 있다”고 이코노미스트에 말했다. 2011년 아프리카 연합 54개국이 리비아 사태를 중재하려 했으나 뚜렷한 성과를 내지 못하자 나토가 개입한 것이 단적이다. 당시 나토의 개입은 철권통치자 무아마르 카다피 제거로 이어졌지만 ‘아랍의 봄’ 이후 지역 혼란이 가중되면서 서방의 개입 자체에 대한 반감이 더 확산됐다는 것이다. 시릴 라마포사 남아공 대통령도 지난주 의회 연설에서 카다피를 언급하며 “나토가 다른 국가들을 어떻게 침략했는지 보지 않았느냐”고 말했다.

인도네시아는 유엔 결의안에 찬성표를 던졌고 조코 위도도 인도네시아 대통령은 최근 언론 인터뷰에서 휴전을 촉구했지만 인도네시아 소셜미디어에서는 러시아에 대한 우호적 여론이 강하게 나타나고 있다. 알자지라에 따르면 인도네시아의 무슬림 주민들은 팔레스타인 문제와 대비해 서방의 러시아 제재는 이율배반이라고 생각한다.

러시아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서 아프리카 독재정권의 뒷배가 돼 준다는 실용적 이유도 강하다. 짐바브웨는 이전에 러시아와 중국의 거부권 덕분에 인권 침해와 선거 부패 혐의로 유엔의 제재를 피했다. 무세베니 우간다 대통령도 부정선거와 성소수자 인권 탄압 등으로 서방의 비판을 받고 있다. 이코노미스트에 따르면 중앙아프리카공화국, 말리 등은 푸틴 대통령의 측근이 운용하는 용병 집단 와그너 그룹에 국방을 의존하고 있다.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에 보크사이트를 수출하는 기니는 전쟁으로 우크라이나 공장 수출이 막히면서 러시아에 더욱 의존하게 됐다. 짐바브웨의 금과 다이아몬드 채굴에도 러시아가 관여한다. 스톡홀름국제평화연구소에 따르면 2019년 기준 아프리카 국가 절반 이상이 러시아에서 무기를 거래한다.

중국과 대립하는 국가들 역시 러시아에 대한 비판을 자제하고 있다. 나롄드라 모디 인도 총리와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는 19일 정상회담 뒤 공동기자회견을 열고 “무력으로 현상을 변경해서는 안 된다”며 전쟁반대 뜻을 밝혔지만 회담문에 ‘러시아’에 대한 언급은 없었다. 인도는 무기의 절반을 러시아에서 조달한다. 러시아는 인도와 파키스탄의 카슈미르 지역 분쟁에서 인도를 지지하고 있다. 파키스탄은 중국과 가장 가까운 나라이기도 하다. 인도는 중국에 대한 견제책으로 일본, 미국 뿐 아니라 러시아와도 협력하고 있는 것이다. 중국과 남중국해 영유권 분쟁을 벌이고 있는 필리핀의 로드리고 두테르테 대통령도 이번 사안에서 중립을 선언했다.

강화된 신냉전 질서에 대한 우려의 시선도 있다. 국제문제 전문가인 파르한 무자히드 차크 카타르대 교수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도덕적으로 혐오스러운 괴물”이라면서도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시리아 전쟁, 이란 핵합의, 미·중갈등 모두 영향받고 있다.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국제질서를 양분해 어느 한 편에 줄을 서기를 강요한다면 군비경쟁이 심해지고 지역적 폭력은 더욱 극대화될 가능성이 있다”고 알자리라 칼럼을 통해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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