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8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8)에 각국 대표로 등록된 억만장자 4명 중 1은 석유화학, 광업, 축산업 등 오염 배출이 심한 산업으로 부를 얻었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COP28이 ‘화석연료 퇴출’ 합의를 두고 진통을 겪은 가운데 기후회의가 부유한 ‘기후 악당’들이 영향력을 행사하는 장으로 변질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12일(현지시간) 국제구호기구 옥스팜이 아랍에미리트(UAE) 두바이에서 열린 COP28에 등록된 억만장자 34명을 조사한 결과 이같이 나타났다며 “기후 위기를 해결하려는 세계의 노력에 거대 부유층들이 휘두르는 영향력이 우려스럽다”라고 보도했다. 이들 34명이 가진 재산과 기업 가치는 총 4990억달러(약 658조 6800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가디언에 따르면 COP28 공식 홈페이지에서 ‘기후 후원자’ 명단에 올라있는 안드레이 멜니첸코 재단은 지난 15년 동안 석탄과 비료 생산에 230억 달러(약 30조원)를 투자했다. 멜니첸코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측근이자 러시아 기후정책 및 탄소 규제위원장으로, 러시아의 탄소 집약 경제에 영향력을 가진 인물이다.

또 다른 러시아 대표인 바기트 알렉페로프는 미국에서 두 번째로 큰 석유 및 가스 생산업체인 루크오일의 지분 30%를 소유하고 있다. COP28에서 환경 및 사회 거버넌스를 주제로 연설한 카자흐스탄의 억만장자 대표 티무르 투룰로프는 자신의 금융회사를 통해 러시아 올리가르히의 국제 제재 회피를 도운 혐의로 기소된 바 있다.

옥스팜은 ‘기후 악당’ 억만장자 중 4명은 각국의 대표단 회의와 주요 토론이 진행되는 블루존에서 협상에 참여할 수 있는 자격을 가졌고, 11명은 UAE로부터 직접 초청받은 인물이었다고 지적했다. 이 중에는 나이지리아의 시멘트 및 석유 재벌인 알리코 당고트와 COP28 회장단의 국제 자문 패널이자 인도 석유가스 대기업의 수장 무케시 암바니, 원자력 기업을 소유한 미국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 빌 게이츠도 포함됐다.

억만장자와 오염 물질 배출 기업들이 기후회의에서 불균형적으로 큰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까닭이다.

가디언은 “기후회의에 참석한 많은 억만장자와 그들이 타고 온 수많은 제트기는 기후회의가 다보스포럼 다음으로 세계 초부유층 모임이 됐음을 시사한다”며 “그들은 기후회의에서 정부 지도자와 관료, 다른 사업자들과 거래를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번 조사에 참여한 옥스팜의 알렉스 메이트랜드는 “기후 변화에 가장 많은 원인을 제공한 슈퍼 부자들이 그 결과로 고통받는 공동체의 목소리를 없애기 위해 동원되고 있다”고 꼬집었다.

COP28에는 화석연료업계를 비롯해 각종 이익기업 로비스트들도 역대 최대 규모로 참석한 것으로 나타났다. 환경감시단체들에 따르면 COP28에 접근 권한을 얻은 화석연료업계 관계자는 최소 2456명으로 나타났다. 여기에는 탄소포집 및 저장산업 관계자 475명, 육류·유제품 및 농업 관련 기업 관계자 340명 등도 포함됐다. 이는 지난 총회와 비교해 거의 4배가 넘는 규모로, 소말리아·차드·통가·솔로몬 제도·수단 등 10개 기후 취약국 대표단을 모두 합친 숫자(1509명)보다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