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살리는’ 연구자들]호주제 논쟁과 ‘DNA 모계유전’

2004.04.25 16:19

지난해 8월말 호주제 관련 TV 토론 중 한 남성 출연자가 폭탄 발언을 던졌다. “여자가 씨가 있어요? 씨가! 남자한테만 씨가 있단 말입니다.” 이와 비슷한 이유로 남성의 우월성을 들어 호주제 유지를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서울대 최재천 교수는 지난해 생물학을 논거로 호주제의 부당성을 정면 비판한 바 있다. 최교수는 “자연계 어느 동물사회에서도 진정한 의미의 부계를 찾을 수 없다”면서 “부계 혈통을 유지하기 위한 호주제는 생물학적으로 뒷받침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최교수는 난자 속의 미토콘드리아에 들어 있는 DNA에 주목했다. 수정란 핵 속의 DNA는 난자와 정자에서 절반씩 나눠 가진다. 반면 세포질 속의 미토콘드리아 DNA는 모계를 통해서만 유전된다. 핵을 둘러싸고 있는 이 세포질은 난자만 제공하기 때문이다. 최교수는 “미토콘드리아의 DNA가 모계로만 이어진다는 사실을 이용하면 어느 생물이건 혈통을 확인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아들의 미토콘드리아 DNA는 더 이상 자녀에게 전해지지 않는다. 대신 여자 형제를 통해 유전될 뿐이다. ‘씨’는 오히려 여자쪽에 있는 셈이다.

인간세포 속의 미토콘드리아 DNA 역사를 거슬러 올라갔더니 우리 인류의 조상이 아프리카에서 화석으로 발견된 ‘루시(Lucy)’라는 여성(일명 미토콘드리아 이브)이란 잠정 결론에 도달할 수 있었다고 한다.

최교수에 따르면 자연계에서 ‘족보’를 따지기 위해 개체군을 조사할 때는 항상 암컷만 조사한다. 수태능력을 가진 암컷이 기준이다. 사실 인구변화를 계산할 때 여성 성비를 고려하는 것도 이런 연유에서다. 남성의 Y염색체는 성별을 결정하는 데 중요할 뿐이다.

이런 ‘과격한’ 주장에 많은 남성들이 발끈했다. 한 60대 남성은 “그럼 근친상간을 해도 되고, 기형아가 태어나도 된다는 말이냐”며 욕설을 퍼붓기도 했다.

최교수는 “성별을 결정하는 것과 혈통을 잇는 일은 전혀 다른 개념이다”면서 “하지만 이런 사실이 생물학적으로 여성이 더 우월하다거나 중요하다는 뜻은 아니다”고 덧붙였다.

〈전병역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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