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의 시대

2017.04.10 21:01 입력 2017.04.10 21:04 수정

[전우용의 우리 시대]스타의 시대

한국어에서 개인이나 집단의 기운 또는 기세를 뜻하던 ‘인기(人氣)’라는 단어가 ‘자기 주변에 사람을 끌어들이는 기운’이라는 의미로 변질된 것은 일제 강점 이후이다. 이 무렵부터 대중 연예인은 가장 두드러진 ‘인기인’이었다.

[전우용의 우리 시대]스타의 시대

조선물산공진회 등의 대규모 행사 때 서울시내 각 권번(기생조합 겸 기예학교에 해당) 기생들이 무리를 이뤄 거리로 나서면, 사람들이 구름처럼 모여들어 한 발자국이라도 더 가까이 다가가서 보려고 서로 밀치곤 했다.

시내의 각 권번들은 소속 기생의 사진과 프로필, 장기 등을 적은 팸플릿을 만들어 돌렸고, 이를 통해 기생들은 ‘유명인’의 반열에 올랐다. 연흥사, 장안사, 조선극장 등 신파극이 상연되는 극장 앞에는, 막이 내리기도 전에 기생들이 보낸 인력거들이 모여들어 서로 주연 배우를 모셔가려고 다퉜다. 대중 사이에 한 사람의 시선과 관심을 차지하려 수많은 사람들과 다투는 경험이 쌓여 갔다.

배우, 가수 등의 대중 연예인에게 ‘스타’라는 칭호를 헌정하기 시작한 것은 1925년께부터다. 이해 이경손 감독이 <심청전>을 제작하여 개봉했는데, 몇몇 신문은 이 영화에서 심청 역을 맡은 함흥 출신 배우 김우연에게 ‘스타’라는 명사를 덧붙였다. 밤하늘에서 빛을 발하며 수많은 사람의 시선을 끌어들이는 별. 볼 수는 있으나 만질 수는 없는 존재. 스타는 사진 인쇄술의 발달과 대중예술 공간의 증가가 만들어낸 특별한 인간이었다.

1926년 봄, 작은 극단에 소속되어 함흥에서 공연 중이던 15세 소녀 신일선은, 눈에 띄게 예쁜 배우가 있다는 소문을 듣고 서울에서 한달음에 달려온 나운규에게 캐스팅되어 바로 영화 <아리랑>의 주연을 맡았다. 영화는 공전의 히트를 쳤고, 전국 방방곡곡에 신일선의 이름이 알려졌다.

그가 거리에 나서면 고등보통학교(요즘으로 치면 중학교) 학생들을 주축으로 한 젊은 남자들이 졸졸 따라다니며 귀찮게 했다. 얼굴도 모르는 남자들이 보내온 수십 통의 팬레터를 읽지도 않고 휴지통에 버리는 건 그의 일상이 되었다. 당대의 미남이자 한량으로 소문난 박모라는 사람이 자기를 향한 연정을 주체하지 못해 달리는 기관차에 뛰어들어 투신자살했다는 소문으로 마음고생을 하기도 했다. 호시탐탐 그에게 접근할 기회를 노리는 남자들을 처리하는 것은 그의 오빠 몫이었다. 그러나 그는 얼마 후 오빠의 강권을 못 이겨 호남의 한 부호 유부남과 결혼했고, 이 일을 계기로 ‘스타성’을 잃었다. 결국 그는 매니지먼트의 대표적인 실패 사례가 되었는데, 이는 이 시점에 이미 스타란 ‘타인에 의해 만들어지고 관리되는 인격체’였음을 알려준다.

스타의 짝은 당연히 ‘팬’이다. 광신도를 뜻하는 영단어 fanatic에서 유래한 ‘팬’도 ‘스타’라는 단어와 함께 유입되었다. 이들은 자기가 좋아하는 스타에게서 ‘지고지선(至高至善)’을 보며, 그래서 종종 스타를 어떤 인간적 흠결도 지니지 않은 신(神)처럼 숭배한다. 1972년 6월, 당대 최고의 인기 스타였던 가수 나훈아가 공연 도중 괴한에게 습격당해 부상을 입었다. 대중은 물론 언론조차도, 나훈아의 라이벌이었던 남진의 열성 팬이 저지른 소행이라고 지레짐작했다. 이는 후일 사실이 아닌 것으로 밝혀졌지만, 스타는 신이고 팬은 신도라는 종교적 인식 태도는 이 무렵에 이미 일반화한 상태였다. 이교도를 원수처럼 대하고 이교도 박멸을 순결한 신도의 책무로 인식하는 중세 종교적 태도는, 스타와 팬의 관계를 통해 현세에 부활했다.

개별적으로 스타를 흠모하던 팬들이 ‘팬클럽’이라는 조직을 만들기 시작한 것은 1970년께부터다. 초기의 팬클럽이 순수 동호인 단체에 가까웠다면, 컬러TV 시대인 1980년대 중반에 출현한 ‘박수부대’는 자기들의 세력을 과시하고 확장하기 위한 전투적 선교조직에 가까웠다. ‘박수부대’는 얼마 후 ‘오빠부대’로 이름이 바뀌었고, 더불어 어떤 스타의 팬을 ‘~빠’로 칭하는 관행이 자리 잡았다.

1990년대 인터넷이 보급되자, 팬클럽들은 수십만명을 한꺼번에 수용할 수 있는 거대한 가상 교회를 세웠다. 이와 더불어 자기들이 숭배하는 스타를 찬양하고 다른 자들의 스타를 폄훼하는 문화가 급속히 확산되었다.

인터넷상에서는 때때로 팬클럽들 간의 ‘종교전쟁’이 벌어지곤 했다. 요즘에는 어떤 아이돌 스타의 생일을 맞아 대형 축하 광고판을 내거는 팬클럽들을 쉽게 볼 수 있다. 2000여 년 전 옥합에 담긴 귀한 향유를 예수의 머리에 부은 여인의 갸륵한 마음과 이들의 순수한 마음 사이에는 아무런 차이가 없다.

스타를 숭배하는 문화가 확산되면서, 이것이 포괄하는 영역도 연예 오락 스포츠를 넘어 사회의 거의 모든 영역으로 확장되었다. 정치인에게 스타라는 칭호를 헌정하기 시작한 것은 1988년 ‘5공비리 청문회’ 때부터였다. 팬클럽과 비슷한 지지자 모임은 ‘노무현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이 최초였던 듯하고.

이제 각 정치인들의 열성 지지자들은 옛날처럼 유세장에 가서 머릿수나 채워주고 투표장에서 도장이나 찍어주는 수동적 인간이 아니다. 그들은 자기가 지지하는 정치인을 비방하는 ‘이교도’들을 철저히 응징해야 한다는 사명감에 불타는 전사들이다. 개별 정치인이나 정당의 사주만으로는 이런 ‘전사형 지지자’들을 대량 생산할 수 없다. 이들을 낳은 것은 스타 숭배를 확산시키는 사회적 기술적 시스템이다. 그런데 스타 숭배 문화에 포획된 정치가 과연 건강할 수 있을까? 스타를 향한 ‘팬심’과 정치인에 대한 ‘지지’는 달라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면, 역사의 시곗바늘은 자칫 정교분리 이전의 시대로 향할 수 있다. 비판 없는 지지가 추종이다.

추천기사

기사 읽으면 전시회 초대권을 드려요!

화제의 추천 정보

    오늘의 인기 정보

      추천 이슈

      이 시각 포토 정보

      내 뉴스플리에 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