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원이 정한 비율로 보수 받는 강사는 노동자”

2017.11.24 06:00 입력 2017.11.24 06:01 수정

고법, 1심 뒤집고 정상어학원에 “강사 퇴직금·수당 지급하라”

학원과 강의료를 일정한 비율로 나눠 갖는 프리랜서 강사도 노동자나 다름없다는 판결이 나왔다.

서울고등법원 민사38부(박영재 부장판사)는 영어강사 ㄱ씨 등 6명이 정상어학원을 상대로 낸 임금청구소송에서 “강사들은 학원과 종속적인 관계에 있는 근로자에 해당한다”며 밀렸던 퇴직금과 연차 미사용 수당 등 2억1495만원을 지급하라는 판결을 최근에 내렸다고 23일 밝혔다.

어학원과 1년마다 계약해 강의를 해온 이들은 “사업자계약을 했지만 노동자나 다름없이 일했다”며 퇴직금 등을 달라는 소송을 냈다. 강의 계약 전에 일반 기업처럼 학원이 서류전형과 면접을 하는 점, 학원이 짠 커리큘럼과 교수법 매뉴얼에 따라야 했던 점, 학원이 인사고과를 한 점 등을 근거로 들었다. 지난 3월 서울중앙지법은 “근로기준법상 근로자에 해당한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결했으나, 고법은 1심 판결을 뒤집었다.

학원 강사는 보통 고정급제, 시간급제, 비율제 강사로 나뉜다. 학생이 낸 강사료를 3 대 7, 4 대 6 등으로 학원과 나눠 갖는 비율제 강사는 학원의 수익에 따라 위험부담을 함께 지기 때문에 동업자와 비슷하고, 개인사업자 성격이 짙다. 하지만 정상어학원은 학원이 학급당 학생 수를 최대 90명으로 제한했다. 또한 학원의 레벨 테스트를 거쳐 학생들을 배정하기 때문에 학생들도 강사 선택권이 없다. ‘스타 강사’ 중심의 학원 구조가 아니라 강사의 경력이나 근속, 평정 등에 따라 30~50% 선에서 학원이 보수를 정하는 식이다. 법원은 “이 학원은 강사의 개인 활동보다는 학원이 매년 통보하는 수익배분비율에 따라 보수가 달라진다”면서 ‘임금’에 더 가깝다고 판단했다.

법원은 프리랜서나 개인사업자가 퇴직금, 시간외수당, 산재보험 등 근로기준법의 권리를 누릴 수 있는지 판단할 때 계약의 ‘형식’보다는 ‘실질’을 따진다. 사용자가 근무시간과 장소를 지정했는지, 지휘·감독을 했는지 등을 따져 종속된 상태로 일했다면 노동자라고 인정하는 추세다. 최근 헬스트레이너나 뮤지컬 스태프, 구두공장과 사업자계약을 맺은 제화공 등도 노동자로 봐야 한다는 판결이 잇따라 나왔다. 2015년 대법원은 청담어학원과 메가스터디에서 시간급 보수를 받는 강사들도 “노동자가 맞다”고 판결했다.

노동자로서의 권리가 개별 소송들을 통해 차츰 확대되고 있지만, 정부가 적극 나서야 한다는 지적은 여전히 많다.

사용자들이 1인 도급이나 용역 계약을 맺는 경우가 늘고 있고, 온라인 플랫폼이 발달하면서 대리운전이나 배달앱 기사 같은 프리랜서 일자리가 많아졌기 때문이다.

이번 사건에서 강사들을 도운 노무법인 신아의 심규환 노무사는 “학원이 일방적으로 정한 비율대로 보수를 받는 강사들이 노동자로 인정받은 것은 이례적”이라면서 “개인들의 소송보다는 일선 노동청의 적극적인 근로감독이나 산재보험 가입을 늘리는 정부 차원의 노력을 통해 근로기준법 사각지대를 줄여 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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