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삶

라면 봉지는 왜 황색계열…색에 담긴 시대상

2018.07.06 21:02 입력 2018.07.06 21:06 수정
문학수 선임기자

일상과 감각의 한국디자인 문화사

조현신 지음 |글항아리 | 340쪽 | 2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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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면 포장지는 왜 황색 계열일까. 한국에 최초로 등장한 라면이었던 ‘삼양라면’의 포장지는 노란색에 가까웠다. 알려져 있다시피 삼양식품의 고(故) 전중윤 회장이 1963년 일본 묘조식품의 기술지원과 한국 정부의 보조금을 받아 ‘삼양라면’을 출시했다. 당시 가격은 10원이었다. 이 최초의 국산 라면은 일본 ‘치킨라면’의 포장을 그대로 따랐다. 볏이 붉고 몸집이 토실하며 꼬리가 풍성한 닭의 모습을 포장지 전면에 인쇄했다. 닭의 투명한 몸통을 통해 라면의 꼬들한 면발이 노출돼 있다. 1969년에는 배경색이 좀 더 짙어지면서 닭의 모습이 사라졌는데, 이것이 삼양라면 포장의 원형이 됐다. 이렇게 등장한 ‘주황색’은 1970년대에 접어들면서 ‘라면의 색’으로 자리 잡았다.

이처럼 애초에는 모방에서 시작했다. 아울러 “주황은 사랑스럽고 대중적이며 오렌지, 당근과 살구가 그렇듯 입에 군침을 돌게 하는 맛의 색”이다. “한국인의 ‘탕’ 문화를 연상”시키기도 한다. 1986년에 ‘신라면’은 이보다 더 “격하고 강렬해진” 붉은색의 포장으로 등장했다. 1990년대에 이른바 ‘웰빙바람’이 불면서 밝은 노랑과 초록이 등장하기도 했지만, ‘라면의 색’은 여전히 노랑부터 빨강으로 이어지는 스펙트럼을 지녔다.

책에는 ‘우리가 사랑한 물건들로 본 한국인의 자화상’이라는 부제가 달렸다. 개화기 이후 지난 130년간 한국인들과 동행해온 ‘일상의 디자인’을 탐색하는 책이다. 저자의 표현에 따르면 “일상에서 자주 접하는 15개 사물의 디자인에 대한 느슨한 연대기”다. 식탁 위에 놓이는 그릇, 담뱃갑, 소주 상표, 라면 포장, 화장품과 패션, 화폐 속 인물들, 초등 1학년 국어교과서, 도심의 간판에서 변두리 카페에 이르기까지 “한국 땅에서 피어난 일상의 무늬”를 들여다보고 있다.

‘한국인의 술’로 첫손에 꼽히는 소주는 양조주를 증류해 받아내는 맑은 술이다. 누룩과 고두밥으로 막걸리를 만들고 맑게 떠오른 부분, 즉 청주를 증류해 만드는 것이 우리의 전통 소주다. 하지만 오늘날 주로 마시는 소주는 물과 주정을 섞은 희석주다. 가장 유명한 브랜드인 ‘진로소주’는 1924년 평남 용강군에 설립된 ‘진천양조상회’에서 시작됐는데, 이 회사가 한국전쟁 때 남하해 1951년에 부산에서, 또 1954년부터 서울에서 소주를 출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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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창기의 진로소주 상표에는 원숭이가 등장했다. “한반도 서북지방에서 복신으로 추앙받아온 영물” 두 마리가 이삭이 풍성한 곡식단에 둘러싸여 마주 보고 있었다. 당시에 누구나 소망했던 풍성한 곡식단을 배경으로 “술이 주는 즐거운 교감”을 형상화한 상표였다. ‘진로’를 상징하는 캐릭터인 ‘두꺼비’는 1955년에 처음 등장한다. “서울에서는 원숭이가 속임수와 교활함을 상징했기에, ‘떡두꺼비 같은 아들’ ‘은혜를 갚을 줄 아는 두꺼비’의 주인공”이 원숭이를 대체했다. 처음에는 덩치가 크고 강인해 보이는 두꺼비였다. “불쌍한 콩쥐가 항아리에 물을 채우는 것을 도울 수 있는” 당당한 몸집이었다.

이후에 두꺼비의 덩치가 조금씩 작아지면서 1962년부터 ‘JINRO’라는 영문 로고가 들어간다. 1967년에는 12년 동안 두꺼비를 감싸고 있던 곡식단이 사라진다. “정부의 양곡관리법에 의해 쌀 주정이 수입산 주정으로 대체되면서”였다. 이름도 1998년에 ‘참眞이슬露’로 바뀌었고 지금은 그냥 ‘참이슬’이다. 2014년부터 “간판 캐릭터”였던 두꺼비는 사라졌고 이슬 먹고 산다는 달팽이가 등장했다. 하지만 두꺼비가 보여줬던 막강한 존재감을 달팽이에게서 느끼긴 어렵다. “두꺼비가 사라져가는 과정은 우리에게 아직은 초현실적인 힘을 지닌 자연, 그것을 이야기한 전설과 민담이 사라지는 과정이기도 하다.

저자는 130년의 디자인 역사를 “느슨한 아르누보의 근대에서 하이브리드의 탈현대”로 규정한다. 꽃과 식물의 넝쿨을 활용한 서구의 아르누보 양식은 “일본에서는 촘촘하고 정교한 방식으로” 재현됐고, “한국으로 넘어와서는 느슨하고 다소 어설픈 모양으로” 바뀌었다. 저자는 이를 한국인이 “성기고 무난한 느낌”을 선호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또 경제개발 시기에는 민족주의와 애국심이 디자인에 결합됐고, 외환위기 이전의 경제 호황기에는 중산층의 이미지를 보여주는, 아울러 탈(脫)정치를 유도하는 디자인이 넘쳐났다. 지금 우리가 흔하게 만나는 탈현대적 디자인의 사례로 저자가 거론하는 것은 도심의 건축물이 아니라 뜻밖에도 “서울 근교에 위치한 카페들”이다. 근현대의 물살에 떠밀려 도시에서 쫓겨난 물레방아와 장독대, 아궁이, 철도의 굄목 등이 이뤄내는 “혼종적이며 키치적인 미감”이야말로 “고향을 잃은 지금 우리의 모습,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고 방황하는” 모습과 닮았다는 것이다.

저자는 도시의 간판도 언급한다. “너도나도 목소리를 높여 선전하는 데만 힘쓰던 한국의 근현대 디자인에는 윤리와 미감이 종종 실종되면서 과장된 형태와 색채만 남곤 했”는데, 간판 디자인이야말로 극명한 사례라는 것이다. 저자는 이를 “건물에 매달린 아우성”이라고 표현하면서 이제는 메시지를 얄팍한 색과 형태로 보여주는 것보다 “어떤 가치를 보여주느냐가 디자인의 핵심”이라고 강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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