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삶

그림으로 치유한 ‘상처’…그림으로 간직한 ‘기억’

2018.08.10 20:41 입력 2018.08.10 20:57 수정

못다 핀 꽃

이경신 글·그림 |휴머니스트 | 304쪽 | 1만7000원

평화의 소녀상을 그리다

김세진 글·그림 |보리 | 168쪽 | 1만2000원

김세진씨는 대학생 시절 전국 75곳에 세워진 소녀상을 찾아가 그림으로 그렸다. 성남시청 앞에 세워진 소녀상 그림(위)과 고양 국립여성사전시관에 세워진 김학순 할머니를 모델로 한 소녀상 그림(아래). 보리 제공 | 이경신씨는 일본군 성노예제 피해자 할머니들에게 그림을 가르치며 할머니들이 마음 속 상처를 치유하길 바랐다. 강덕경 할머니가 그린 ‘빼앗긴 순정’(왼쪽 위)과 김순덕 할머니가 그린 ‘씨앗 공출’(왼쪽 아래)과 ‘못다 핀 꽃’(가운데)의 모습을 이경신씨가 그렸다. 휴머니스트 제공

김세진씨는 대학생 시절 전국 75곳에 세워진 소녀상을 찾아가 그림으로 그렸다. 성남시청 앞에 세워진 소녀상 그림(위)과 고양 국립여성사전시관에 세워진 김학순 할머니를 모델로 한 소녀상 그림(아래). 보리 제공 | 이경신씨는 일본군 성노예제 피해자 할머니들에게 그림을 가르치며 할머니들이 마음 속 상처를 치유하길 바랐다. 강덕경 할머니가 그린 ‘빼앗긴 순정’(왼쪽 위)과 김순덕 할머니가 그린 ‘씨앗 공출’(왼쪽 아래)과 ‘못다 핀 꽃’(가운데)의 모습을 이경신씨가 그렸다. 휴머니스트 제공

<못다 핀 꽃>은 할머니들의 ‘마음’에 관한 이야기다. 그동안 우리에게 잘 알려진 것은 할머니들이 겪은 끔찍한 폭력에 관한 것이었다. 27년 전 김학순 할머니의 첫 증언으로 세상 밖으로 튀어나온 끔찍한 반인도적 범죄 사실에 우리는 압도당했고, 그 사실을 ‘없던 일’로 지우려는 일본의 태도에 분노했다. 그런데 끔찍한 폭력을 겪고 살아남아 지금까지도 생생한 고통과 싸우고 있는 할머니들의 ‘마음’은? 감히 짐작조차 할 수 없다. <못다 핀 꽃>은 미술이라는 도구로 할머니들이 마음속 깊은 곳에 숨겨져 왔던 상처를 대면하고 치유하기까지의 과정을 보여준다.

<못다 핀 꽃>은 고 김순덕 할머니가 그린 대표작의 이름이기도 하다. 청색 바탕에 화려하게 수놓아진 목련꽃 자수에 자신의 과거이기도 한 소녀를 그려 넣었다. 이밖에도 고 강덕경 할머니의 ‘빼앗긴 순정’과 ‘책임자를 처벌하라’는 일본군 성노예제 피해자 할머니들의 대표적인 그림들이다. 책은 범박하게 이야기하자면 그림들이 탄생하기까지의 과정을 그려낸다.

저자는 1993년부터 5년 동안 나눔의 집에 거주하는 일본군 성노예제 피해자 할머니들과 미술 수업을 진행했다. 시작은 의외로 한글 수업이었다. 미대를 졸업하고 진로를 놓고 방황하던 시기, 라디오에서 “나눔의 집에서 한글을 가르쳐줄 자원봉사자를 모집한다”는 광고가 계시처럼 다가왔다. 무작정 나눔의 집을 찾아갔지만, 할머니들에게 다가가기는 쉽지 않았다. 끔찍한 전쟁터에서 살아남아 꿈에도 그리던 고향으로 돌아왔지만, 가부장적 질서가 강한 사회에서 할머니들은 자신이 겪은 상처를 꽁꽁 동여매고 들키지 않으려 숨겼다. 끔찍한 기억은 고스란히 할머니들의 정신적 고통이 되었다. 타인과 거리를 두고 자신을 드러내지 않거나, 한시도 쉬지 않고 바삐 움직이며 고통을 잊으려는 불안정한 모습을 모였다. 저자는 자신이 가장 잘할 수 있는 일로 할머니들에게 다가가고자 했다.

[책과 삶]그림으로 치유한 ‘상처’…그림으로 간직한 ‘기억’

저자의 욕심은 좀 컸다. 상처를 그림으로 표현하는 것을 넘어서 할머니들이 그림으로 그려낸 고통이 타인에게 감동을 줄 수 있는 ‘예술’의 경지로 가기를 원했다. 저자와 할머니는 이 작업을 해내고야 만다.

처음엔 선 하나 긋는 것조차 낯설어 하고 어려워하던 할머니들은 그림을 그리면서 점점 내면의 깊은 상처와 대면하게 된다. 마침내 고통을 직시한 할머니들이 토해내듯 그림을 그려내는 장면은 강렬한 감동을 준다.

“할머니들이 그림을 그리고 전시하는 것은 단순히 과거 역사의 피해자에 머무르지 않고 한 인간으로서 현재를 살고 있음을 보여줬다. 관객들은 끔찍한 상처를 그림으로 치유하며 살아가는 할머니들의 당당한 모습을 볼 수 있었다.”

타인에 대한 경계심이 강했으나, 그림으로 자신의 재능을 활짝 꽃피웠던 강덕경 할머니가 폐암으로 눈 감기 전 남긴 말, “이제 막 재미있게 살려고 하는데…내가 딱 2년만 더 살면 좋겠는데…”는 마음을 먹먹하게 만든다.

저자는 2015년 박근혜 정부가 ‘한·일 위안부 피해자 문제 합의’를 발표하며 위안부 문제를 적당히 덮으려는 것에 분노해 오래전 기억을 끄집어내 책으로 썼다. 이 책은 세대를 초월해 쌓아 올린 우정 이야기이기도 하고, 예술을 통해 인간이 어떻게 고통을 극복하고, 자아를 실현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기록이기도 하다.

[책과 삶]그림으로 치유한 ‘상처’…그림으로 간직한 ‘기억’

<평화의 소녀상을 그리다>는 할머니들의 상징과도 같은 소녀상을 찾아 전국을 일주한 청년의 기록이다. 할머니들이 자신의 상처를 대면하고 치유하고자 붓을 들었다면, 저자는 역사적 범죄를 잊지 않고 기억하기 위해 순례와도 같은 여정을 떠난다.

‘소녀상 지킴이’로 활동하던 저자는 어느 날 한 시민으로부터 “전국에 있는 소녀상이 몇 개인지, 어디 있는지 아느냐”란 질문을 받는다. 정작 소녀상에 대해 잘 알지 못했던 것에 부끄러워진 저자는 지난해 5월15일부터 8월26일까지 100일이 넘는 여정 끝에 전국 75곳의 소녀상을 찾아갔다. 낮에는 그림을 그리고, 밤에는 소녀상 옆에서 노숙을 했다. 맑은 수채화 필치에 담긴 소녀상은 때로는 결연하고, 때로는 외로워 보인다. 저자 역시 일본군 성노예제 문제를 해결하는 데 조금의 힘이라도 보태기 위해 이 작업을 했다.

추천기사

바로가기 링크 설명

화제의 추천 정보

    오늘의 인기 정보

      추천 이슈

      이 시각 포토 정보

      내 뉴스플리에 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