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왕적 대법원장 권한 사법행정회의에 모두 이양···제2의 사법농단 막는다

2018.11.07 14:08 입력 2018.11.07 17:47 수정

대법원장 1인에 집중된 제왕적 권한을 법관과, 시민을 대표하는 외부인사가 절반씩 참여하는 ‘사법행정회의’에 모두 넘겨주는 내용의 법원조직법 개정안이 7일 공개됐다. 특히 현재 대법관이 맡고 있는 법원행정처장 자리도 일반 정무직 공무원이 하도록 했다.

김명수 대법원장이 지난 3월 사법발전위원회(사발위)를 만들어 법원 개혁 작업에 착수한 뒤 법원행정처 폐지와 사법행정회의 설치 등 대략적인 방향에 대한 논의는 이어져왔지만 구체적으로 대법원장의 권한 중 어디까지 분배할지, 외부인사가 사법행정에 얼마나 많이 참여할지 등이 확정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예산·인사 등 모든 사법행정을 대법원장이 총괄하는 구조는 양승태 대법원의 사법농단 의혹이 발생한 근본적 원인으로 지목돼왔다.

김명수 대법원장이 지난 4월9일 경기 고양시 사법연수원에서 열린 전국법관대표회의에 참석해 인사말을 마친 뒤 법관들과 인사하고 있다./ 이상훈 기자

김명수 대법원장이 지난 4월9일 경기 고양시 사법연수원에서 열린 전국법관대표회의에 참석해 인사말을 마친 뒤 법관들과 인사하고 있다./ 이상훈 기자

■대법원장 ‘총괄권’ 사법행정회의에 이양

사발위 후속추진단이 7일 공개한 법원조직법 개정안을 보면, “대법원장은 사법행정사무를 총괄한다”는 법원조직법 제9조를 “사법행정회의는 헌법과 법률에서 달리 정한 경우를 제외하고 사법행정사무를 총괄한다”고 바꾸도록 돼 있다. 사법행정의 총괄권자가 대법원장에서 사법행정회의로 아예 바뀌는 것이다.

이에 따라 다양한 의견이 사법행정에 반영되고, 대법원장을 정점으로 한 법원 내 관료화 현상은 줄어들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그동안에는 대법원장이 막강한 권한을 가져 법원 내 의견수렴 없이 독자적인 결정을 내리거나, 판사들이 윗선의 눈치를 본다는 비판이 제기돼왔다.

추진단은 “수평적·민주적 합의체를 통해 의사결정을 하도록 한 것”이라며 “(사법행정회의에 이양되는 권한에는) 법관에 대한 보직인사권도 포함된다”고 밝혔다.

개정안은 사발위가 명확하게 결론내지 못한 사법행정회의의 권한 범위를 확정지었다는 의미가 있다. 지난 7월 사발위는 이 문제에 대해 토론을 했지만 위원들간 의견이 통일되지 못했다. 일부 위원들이 사법행정회의가 대법원장의 권한을 모두 가져가는 식의 급진적인 개혁은 위험하다며 반대했기 때문이다. 해당 위원들은 특히 법관 인사를 사법행정회의가 행사할 경우 정치권의 개입이 우려된다는 이유를 댔다.

그러나 추진단은 “민주적 정당성이나 책임성은 대의기구의 임명이나, 어느 한 사람에 대한 권한 집중이 아니라, 오히려 권한의 분산, 감시와 견제, 국민의 참여, 절차의 공개 등에 의하여 강화된다”며 “신중하고 민주적인 의사결정을 위하여 합의제 행정기구에서 집행을 하도록 하는 것은 현대 행정의 흐름일 뿐만 아니라, 독립성이 핵심인 재판에 대한 지원을 내용으로 하는 사법행정의 영역에서 더욱 적합한 방식”이라고 설명했다. 다만 대법관 제청과 헌법재판관 지명은 대법원장 권한으로 유지한다.

■사법행정회의 구성은 법관 대 비법관 ‘동수’로

사법행정회의를 어떻게 구성할 것인지도 핵심 쟁점이었다. 법원 내에서는 외부인사가 많이 들어오면 안 된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강했다. 사법부 독립을 침해한다는 취지였다. 사발위에서도 일부 위원들이 “과도한 변혁은 감당이 안 된다”며 외부인사 참여를 반대했다. 결국 사발위는 “적정한 수의 외부 인사가 참여함이 바람직하다”는 애매한 결론을 냈다.

추진단은 개정안에서 사법행정회의 위원을 법관과 비법관이 각 5명씩 동수로 하기로 확정지었다. 추진단은 “외부인사의 실질적 참여를 보장한다는 차원”이라고 설명했다.

위원 선정 절차도 법원 내부와 사회의 다양한 목소리를 반영하고 투명성을 확보할 수 있도록 했다. 법관 5명은 대법원장·전국법원장회의·전국법관대표회의가 각 1명, 1명, 3명을 추천한다.

비법관 5명의 경우 공모를 받아 위원추천위원회에서 심사를 거쳐 결정하도록 했다. 추천위원회에 국회의장이 추천한 3명과 법원노조 대표가 참여하도록 한 부분도 눈에 띈다. 특히 추진단은 여성의 사법행정 참여를 보장하기 위해 사법행정회의와 위원추천위원회의 일부는 필수적으로 여성을 넣도록 했다. 그동안 대법원장은 단 한번도 여성인 적이 없었고, 대법원장을 보좌하는 법원행정처 간부들도 대부분 남성이라 사법행정에서 여성들은 사실상 배제돼있었다.

■대법관 법원행정처장 없어진다

개정안에서는 사법농단 의혹의 중심에 있는 법원행정처에서 판사를 모두 빼겠다는 의지도 읽힌다. 법원행정처에서 심의관이나 실·국장급 상근 판사를 빼야 한다는 논의는 여러차례 나왔지만, 문제는 대법관이 맡는 법원행정처장과 고등법원 부장급 판사가 맡는 법원행정처 차장이었다. 사법농단 의혹에서 박병대 전 법원행정처장과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이 핵심 역할을 한 게 문제가 됐는데도 관리자에 해당하는 이들 자리는 법관이 하는 것으로 유지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었다.

추진단은 법원행정처장과 차장도 일반 정무직 공무원으로 사법행정회의가 보임하도록 개정안에 못박았다. “법원행정처장은 대법관 중에서 대법원장이 보한다”는 개정안 제68조 1항은 “법원사무처장은 사법행정회의가 정무직으로 임명한다”고 변경되도록 했다.

외부인사가 참여하는 사법행정회의가 법관 인사에 직접적으로 관여할 경우 사법부 독립 침해 등을 우려하는 의견을 담아 구체적인 인사계획, 전보인사, 해외연수 등은 사법행정회의 산하의 법관인사운영위원회에서 만들도록 했다. 법관인사운영위원회는 전원이 법관으로 구성된다. 다만 대법원장이 위원 2명을 지명하고 전국법관대표회의가 3명을 추천해 균형을 맞췄다.

그밖에 전국법원장회의와 전국법관대표회의를 법정기구로 만들고, 법원행정처 폐지 및 법원사무처 신설도 이번 개정안에 포함됐다.

추진단은 개정안을 지난 2일 김 대법원장에게 전달했다. 대법원은 개정안에 대한 최종적인 의견수렴을 거친 뒤 국회에 입법을 요청할 계획이다. 이날 본격적으로 활동을 시작한 국회 사법개혁특별위원회에서 논의될 가능성이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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