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현이·재윤이의 어이없는 죽음, 척박한 의료환경이 불렀다

2018.11.30 06:00 입력 2018.12.01 12:41 수정

③오진 부르는 의료환경

[병원, 안전합니까]종현이·재윤이의 어이없는 죽음, 척박한 의료환경이 불렀다

의료사고 28%는 ‘약물 오류’
종합병원에서 더 실수 많아
2016년에 환자안전법 발효
실수 줄일 체계 마련됐지만
현장서 지키는 건 쉽지 않아


“의사나 간호사들 중 일부러 실수하려는 이들은 없을 거예요. 실수에 내몰리거나 방치된 거겠죠.”

김영희씨는 8년 전 백혈병을 앓던 아들 종현이를 잃었다. 백혈병이 아닌 병원의 실수 때문이었다. 아홉 살 종현이는 완치를 앞두고 마지막 치료를 받기 위해 대구의 한 병원에 있었다. 항암제 ‘빈크리스틴’과 ‘시타라빈’을 차례로 주사하면 끝나는 일상적인 치료였다. 하지만 의료진은 정맥에 놓아야 할 빈크리스틴을 척수강에 잘못 주사했고, 종현이는 마비 증상을 보이다 사망했다.

아들을 떠나보낸 뒤 다른 병원에서도 투약 실수가 종종 일어난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김씨는 환자단체연합회와 함께 병원들이 의료사고를 보고하고 재발방지책을 만들게 하는 입법 운동을 시작했고, ‘환자안전법’ 제정으로 결실을 맺었다.

안전을 환자의 권리로 규정한 환자안전법은 2016년 7월 발효됐다.

환자안전법으로 병원에서 일어날 수 있는 실수를 줄일 수 있는 체계가 마련됐지만, 사고가 사라지지는 않았다. 다섯 살이던 허희정씨의 아들 재윤이가 숨진 지 29일로 1년이 됐다.

종현이처럼 백혈병이 완치돼가던 재윤이는 지난해 11월 고열 증세로 영남대병원에 입원했다. 검사 환자가 잔뜩 밀려 있고 의사와 간호사들은 정신없이 바빠 보였다. 재윤이는 산소호흡기와 응급세트도 없는 주사실에서 골수검사를 받았다. 1년차 레지던트가 아이에게 진정제를 놨다. 검사가 끝난 뒤, 아이는 이미 호흡이 멈춰 피부가 파랗게 변한 상태였다. 재윤이는 잠시 호흡을 되찾는 듯했지만 상태가 악화돼 결국 숨을 거뒀다.

◆의료진 살인적 업무량에 “감염 방지 기본인 ‘손씻기’도 못지켜”

병원에서는 재윤이의 기관지나 폐에 병원균이 들어가 ‘흡인성 폐렴’으로 사망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은 진정제를 주사한 뒤 문제가 생겼을 수 있다고 했다. 간호사 출신인 엄마 허씨는 병원이 검사를 결정한 과정이나 응급상황에서 취한 조치를 이해하기 힘들다고 했다. 진정제를 투약한 후에는 지속적으로 상태를 살펴야 하는데 그러지 않았고, 청색증이 왔을 때야 발견했다는 것이다. 응급장비가 없는 곳에서 검사를 하는 바람에 대응은 더 늦어졌다. 허씨는 “내가 일할 때도 병원에서 ‘일이 많다’며 환자 상태를 제대로 살피지 않는 경우가 있었다”며 “병원을 이대로 놔두면 또 다른 아이들을 언제든 잃을 수 있다”고 말했다.

병원에서 사고가 나면 흔히 ‘인력구조’를 지적한다. 인력이 부족한데 수익을 올리려 환자를 많이 받으니, 일에 내몰린 의료진이 실수를 저지르기 쉽기 때문이다. 생명을 책임진 이들의 실수는 환자에겐 목숨까지 앗아가는 위험이 될 수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투약 실수다. 2016년 7월부터 지난해 9월까지 병원들이 제출한 ‘환자안전사고 자율보고’ 통계를 보면, 의료사고 3060건 중 약물 오류가 28%인 857건이었다. 낙상 다음으로 많은 사고 유형이었다. 그중 의사가 주사제나 약을 처방하면서 실수한 것이 375건, 간호사의 실수가 293건이었다. 엉뚱한 주사제나 약을 조제한 경우가 83건 있었으며, 약을 다른 사람에게 주사한 사례도 56건이나 됐다.

이런 실수들은 체계가 비교적 잘 갖춰진 상급종합병원에서 오히려 더 많이 벌어졌다. 일각에선 중소형 병원을 기피하고 상급병원부터 찾는 환자들이 많아 의료진의 업무가 폭증하는 점을 지적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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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력 부족에 의료진 ‘돌려막기’

정부는 환자안전법 제정 이후 의료기관의 투약 실수를 줄이기 위해 매뉴얼과 지침을 만들고, 사고 사례를 병원들이 공유해 예방대책을 세우게 했다. 하지만 만들어진 지침이 현장에서 지켜지는지는 별개의 문제다. 의대를 졸업하고 전문의가 되기 위해 대학병원에서 일하는 전공의들의 ‘살인적인 업무량’은 숱하게 지적돼왔다. 지난해 말부터 노동시간을 주당 최대 80시간으로 제한하는 전공의특별법이 시행됐지만 개선은 더디다.

청년의사들의 단체인 대한전공의협의회가 지난해 9월29일부터 10월31일까지 전국 65개 병원 전공의들을 조사한 자료를 보면, 한 주 평균 근무시간은 84.9시간이었다. 2016년의 88.9시간보다는 줄었으나 여전히 법정 제한시간을 넘기고 있었다. 주 6일 일해도 하루 14시간씩 근무하는 것이다. 경북대병원과 신촌세브란스병원은 한 주 근무시간이 100시간을 넘겼다. 9일 연속 당직을 하거나, 당직 이후 쉬는 시간이 2시간에 불과한 곳도 있었다.

전공의, 주 평균 85시간 근무
9일 연속으로 당직하는 곳도
간호사들도 노동강도 높아
의료사고 위험에 항상 노출

이런 환경이 오진을 낳기 쉽다. 2013년부터 올해까지 의료분쟁 현황을 보면, 진료 실수로 생긴 의료사고 분쟁이 매년 평균 57건 발생했다. 위암 4기를 단순 위염으로 오진하거나 대장암 말기를 치질로 오진한 사례가 있는가 하면 폐암을 곰팡이로 진단한 경우도 있었다. 어떤 의사는 가슴 혹을 없애는 수술을 하면서 젖꼭지를 제거했다. 오진으로 환자가 사망한 사건이 5년간 46건이었다.

간호사도 인력이 부족하고 일이 많아 실수 가능성이 높은 것은 마찬가지다. 제한된 시간에 환자를 돌보고 주사를 놓으며 다양한 일들을 하다 보니 노동강도가 몹시 세다. 화장실에도 제때 가지 못해 변비나 방광염에 걸리는 간호사가 적지 않은 형편이니, ‘완벽한 돌봄’을 기대하기는 힘들다. 특히 최근 일부 병원은 의사 부족을 간호사로 보완한다면서 경험 많은 간호사를 ‘PA(진료보조)간호사’란 직군으로 돌려 의사들이 해오던 역할을 떠맡기고 있다. 이들이 빠진 자리에는 경험이 적은 간호사를 채워넣는다.

올해 5월 민주노총 보건의료산업노조가 병원 노동자 2만962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노동환경 조사 결과를 보면, 응답자의 76.5%인 2만2659명이 “인력이 부족해 의료사고가 발생할 위험이 크다”고 했다. 한 간호사는 “환자들이 병원균에 감염되는 걸 막으려면 손씻기가 기본인데, 손을 제대로 씻어가며 일하면 제시간에 약이나 주사제가 나가기 힘들다”며 “안전을 위한 기본 절차도 지킬 수 없는 업무량이라 ‘이러다 사고 치겠구나’란 생각이 자연히 들 수밖에 없다”고 했다.

■ 의사·간호사는 왜 늘 모자랄까

2016년 기준으로 한국의 인구 1000명당 병상 수는 12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5개 회원국 중 일본(13.1개)에 이어 두 번째다. 의료 인프라가 잘돼 있다고 볼 수 있다. 반면 의사 수는 한의사까지 포함해도 인구 1000명당 2.3명뿐으로, 터키(1.8명) 다음으로 적다.그런데 의대 입학정원을 늘리자는 것에 대한의사협회가 반대한다.

의료 인프라가 부족해 피해를 많이 보는 사람들은 대도시가 아닌 농어촌 주민들이다. 지방에서는 중증외상이나 심뇌혈관질환을 다루는 이들은 물론 응급실과 분만실을 운영할 의사도 찾기 어렵다. 그래서 정부가 내놓은 대안이 국립공공의료대학·대학원이다. 우선 2022년까지 전북 남원에 하나를 짓기로 했다. 공공의대를 졸업한 의사들은 지역 공공의료기관 등에서 일정 기간 의무적으로 일하도록 조정해 의사들의 대도시·특정 분야 쏠림을 보완하겠다는 취지다. 학교비리로 폐교된 남원 서남대 의대를 공공의대로 전환하는 것이라 전국 의대 정원 수에는 사실 변함이 없다.

그런데 의협은 이것조차 반대했다. 예산에 비해 효과가 불명확하고, 지방의 의료인력 부족은 기존 공중보건의 제도로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의사들이 ‘밥그릇 지키기’에 매몰돼 열악한 노동환경을 자초한다는 비판이 적지 않다. 국회에선 “의협이 반대를 위한 반대만 한다”는 얘기가 나왔다.

인력 문제 숱하게 지적돼도
의협 반대로 의사 수 못 늘려
의료계 “의사 분포가 문제”
1차병원에 환자 분산 주장

의료계에선 의사 수보다 ‘분포’가 문제라고 주장한다. 이승우 전공의협의회장은 “대형병원으로 쏠리는 환자들을 병·의원급 1차 의료기관으로 분산하는 방법, 일손이 필요한 병원에 의사들을 배치하는 방법 등을 고민해야 한다”고 했다. ‘보험수가’ 얘기도 또 거론된다. 의협 측은 “건강보험의 수가 구조상 수술 등 치료 목적의 의료서비스로 돈을 벌기는 힘들다”며 “이렇게 되니 의사들이 동네병원에서 미용 진료 등을 우선시하고, 필수 의료서비스를 공급하는 쪽으로는 잘 가려 하지 않는다”고 했다.

간호사 인력충원을 둘러싼 논란도 비슷하게 진행된다. 간호인력이 모자란다는 지적에 정부는 간호대 졸업생 수를 늘리기로 했다. 지난 3월 보건복지부가 ‘간호사 근무환경 및 처우개선 대책’을 내놨고, 지난달 8일에는 국무회의에서 내년부터 2023학년도까지 5년간 한시적으로 4년제 대학 간호학과의 편입생 비율을 늘리는 고등교육법 시행령 개정안이 의결됐다. 그러자 간호사와 간호학과 학생들이 반발했다. 간호사가 부족한 것은 숫자가 적어서가 아니라 노동환경이 워낙 열악해 그만두는 이들이 많기 때문인데 정부가 실효성 없는 땜질 대책을 내놨다는 것이다. 실제로 복지부의 ‘2011~2016년 보건의료 실태조사’를 보면 2016년 기준으로 간호사 면허 등록자는 35만6000명인데 보건의료기관에서 실제로 일하는 간호사는 17만9989명이었다. 간호사 면허를 가진 사람의 절반만이 의료기관에서 일하고 있는 것이다. 의사 면허 등록자의 80% 이상이 현업에 종사하는 것과 대비된다.

적절한 의료인 숫자에 대한 의견이 엇갈리고 정부의 인력충원 대책도 원만히 추진되지 않자, 최근 국회와 의료계에서 ‘보건의료인력지원법’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힘을 얻고 있다. 직종별 의료인 실태를 조사해 적정인력의 기준을 만들고 종합적인 배치계획을 세우게 하는 법이다. 하지만 이 법은 2012부터 네 차례나 국회에서 발의됐으나 아직 통과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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