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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T&G, 트리삭티 기업가치 ‘제로’에서 2500억원으로 ‘뻥튀기’

2019.03.18 06:00
강진구 탐사전문기자

2016년 비정상적 방법으로 기업가치 평가 지시한 문건 나와

2011년 주식 취득 때에 이어 원소유주에 또 막대한 차익 안겨

전문가들 “납득 어려운 조치…약점 잡혔거나 배후 인물 의심”

KT&G가 2016년 인도네시아 담배회사 트리삭티의 기업가치를 0원에서 2500억원으로 부풀리는 과정에서 1차 평가자료 위에 기업가치의 중간값을 2300억원으로 만들라고 지시한 자료.

KT&G가 2016년 인도네시아 담배회사 트리삭티의 기업가치를 0원에서 2500억원으로 부풀리는 과정에서 1차 평가자료 위에 기업가치의 중간값을 2300억원으로 만들라고 지시한 자료.

KT&G가 이명박 정부 시절 인도네시아 담배회사 트리삭티 원소유주와 수상한 뭉칫돈 거래를 한 데 이어 2016년에도 비정상적인 기업가치 평가로 원소유주에게 수백억원의 이익을 안겨준 사실이 드러났다. 원소유주로부터 잔여지분을 취득하기 전 트리삭티에 대한 재평가를 통해 기업가치를 0원에서 2500억원으로 만들어 준 것이다. 이로 인해 2011년 트리삭티 주식 51%를 취득원가의 5배에 팔아 700억여원을 조세도피처로 빼돌렸던 원소유주는 잔여지분 청산과정에서도 막대한 차익을 거두게 됐다.

17일 경향신문은 KT&G가 2016년 삼일회계법인과 김앤장 자문을 거쳐 트리삭티에 대한 재평가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기업가치를 2500억원으로 부풀리도록 지시한 문건(사진)을 단독 입수했다.

KT&G 사업보고서에 따르면 2015년 말 기준 트리삭티 주식을 보유한 페이퍼컴퍼니 렌졸룩의 가치는 ‘0원’이었다. KT&G에서 누군가 2011년 인수한 후 적자누적으로 사실상 주식이 휴지조각이 된 트리삭티의 기업가치를 2500억원으로 만들라고 지시한 셈이다.

경향신문이 입수한 문건은 2016년 9월 무렵 작성된 것으로 영문으로 ‘기업가치분석 요약’이라는 제목과 함께 3가지 시나리오별로 트리삭티의 기업가치가 제시돼 있다. 첫번째 경우 966억~1755억원, 두번째 경우 2205억~3672억원, 세번째 경우 2662억~4483억원으로 기업가치 분석결과가 기재돼 있다. 문건을 자세히 보면 누군가 1755억원이라는 숫자 위에 2300억원이라는 숫자를 손으로 써 놓았다.

문건을 본 KT&G 한 전직 임원은 “KT&G 내부에서 작성한 사업계획서를 기초로 삼일회계법인이 1차로 기업가치를 1700억여원으로 평가하자 누군가 기업가치 중간값이 2300억원이 나오도록 사업보고서를 재작성하라고 지시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실제로 KT&G의 트리삭티 기업가치에 대한 재평가 작업은 문건에 나온 내용과 일치한다.

경향신문 취재결과 KT&G는 2016년 6월 삼일회계법인에 사업계획서를 제공하고 트리삭티 평가 용역을 의뢰했다. 1차 용역결과 트리삭티의 기업가치가 1700억원으로 나오자 같은 해 9월 수정된 사업계획서를 제공하고 2차 평가를 의뢰했다. 그 결과 트리삭티 기업가치는 최종적으로 2500억원으로 올라갔다. 당시 삼일회계법인이 기업가치를 2500억원으로 평가한 것은 향후 시장전망이나 수익창출과 관련해 KT&G가 제시한 25가지 시나리오가 다 들어맞는다는 전제 아래 이뤄진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KT&G 기업평가 관련 자료를 검토한 회계전문가는 “25가지 가정을 전제로 한 기업가치 평가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며 “실사결과를 기초로 평가한 게 아니라 거꾸로 기업가치를 먼저 정해놓고 억지로 평가결과를 꿰맞춘 것 같다”고 했다.

KT&G는 이처럼 기업가치를 부풀려 놓은 후 2017년 2월 원소유주인 조코가 보유하고 있는 트리삭티(386억원)와 자회사 잔여지분(33%)을 각각 386억원과 88억원에 인수했다. 이어 2017년 5월 조코가 보유하고 있던 전환사채도 88억원에 인수했다.

조코 입장에서는 2015년 말 트리삭티 주식이 휴지조각이 된 상태에서 KT&G가 기업가치를 2500억원으로 부풀려준 덕분에 잔여지분과 전환사채 매각대금으로 562억원을 덤으로 챙긴 것이다. 이 때문에 투자전문가들 사이에서는 KT&G가 조코에게 뭔가 약점이 잡혔거나 조코 뒤에 또 다른 배후인물이 있는 게 아니냐는 추측이 나온다.

한 투자전문가는 “주식이 휴지조각이 된 상태에서 기업을 살리려 한다면 종전 주식에 대해 감자를 한 후 돈을 집어넣는 게 일반적”이라며 “유상증자를 하기 전에 기업가치를 부풀려 구주주의 잔여지분을 매입한 KT&G의 조치는 납득하기 어렵다”고 했다.

KT&G 김흥렬 수석 부사장은 “기업가치 평가는 외부용역기관에서 독립적으로 수행하는 과정이라 우리 회사 내부에서 관여할 수 있는 사항이 아니다”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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