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 반도체공장 노동자 79번째 사망···“이재용 처벌해야”

2017.01.15 15:13 입력 2017.01.15 18:47 수정

삼성전자 화성공장에서 근무하다 지난 14일 급성 골수성 백혈병으로 사망한 김기철씨(32)

삼성전자 화성공장에서 근무하다 지난 14일 급성 골수성 백혈병으로 사망한 김기철씨(32)

“기철이는 화장시킬 거에요. 그렇게 해서라도 자식 죽게 만든 병균을 태워 없애고 싶어요.” 삼성전자 반도체공장에서 6년간 일하다 지난 14일 급성골수성 백혈병으로 숨진 김기철씨(32)의 아버지 김정일씨(68)가 목이 메어 말했다. 김기철씨는 ‘반도체노동자의 건강과 인권지킴이(반올림)’에 제보된 삼성반도체·LCD 직업병 피해자 중 79번째 사망자다. 백혈병으로만 따지면 32번째 죽음이다.

김씨는 2006년 11월 삼성전자 협력업체인 ‘크린팩토메이션’에 입사한 뒤 줄곧 삼성전자 화성공장 15라인에서 일했다. 수백 종 화학물질을 이용해 반도체 웨이퍼를 가공하는 곳이었다. 김씨는 웨이퍼 가공 공정 곳곳을 돌아다니며 장비 유지·보수 업무를 했다. 그 중 이온주입 공정과 포토 공정은 전리방사선과 벤젠 등 발암물질 노출이 많은 곳으로 알려져 있다.

“어느날 기철이가 퇴근하고 돌아오니까 잇몸에 피가 막 나더라고요. 그래서 치과에 가보니까 내과에 가보라는 거에요.” 아버지 김정일씨가 말했다. 입사 6년만인 2012년 9월 김기철씨는 느닷없이 ‘급성골수성 백혈병’ 진단을 받았다. 입사 전까지만 해도 매우 건강했고 운동도 즐겼던 그였다. 백혈병과 관련한 병력이나 가족력도 없었다. 반올림에 따르면 당시 김씨를 살핀 직업환경의학 전문의는 “질병과 직업과의 상당 인과관계가 있다”고 진단했다. 그의 나이 27세였다.

김기철씨는 2012년 근로복지공단에 산재보상 신청을 했다. 하지만 “유해물질 노출량이 특별히 높다는 증거가 없다”며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이에 불복해 소송을 제기했지만 삼성은 재판부가 요청한 업무환경에 관한 자료를 제출하지 않았다. 고용노동부와 산하기관들도 해당 공장 안전보건 실태를 점검한 자료들을 “사업주 영업비밀에 해당한다”는 등의 이유로 협조하지 않았다.

그동안 나아지는가 싶던 병세는 2015년 12월 다시 재발했다. 이듬해 조혈모세포 이식을 받았지만 차도가 없었다. 항암치료와 신장투석을 받는 동안 김기철씨의 모습은 몰라보게 악화됐다. 182㎝가 넘는 키에 80㎏에 가깝던 근육질 체격이 무너져 갔다. 머리카락이 모두 빠졌고, 온몸에는 물이 차올라 퉁퉁 부었지만 체중은 52㎏까지 줄었다. “괴로워하는 모습이나마 영상으로 남겨두지 않은 게 정말 안타깝다”고 아버지 김정일씨는 말했다. 결국 김기철씨는 14일 새벽 4시48분 사망했다. 처음 법적 소송을 제기한 후 자료 제출 공방이 2년간 이어지던 와중이었다.

서울 서초구 서울성모병원에 마련된 김기철씨의 빈소는 한산했다. 입구에 놓인 서너개 화환 중 삼성이나 그가 일했던 협력업체에서 보내온 것은 없었다. 김기철씨는 투병 중 가족들에게 종종 “한국이 싫다, 이민가고 싶다”고 말했다고 한다. 20대 중반 갑작스레 찾아온 병마, 하지만 삼성이나 정부 중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상황에 지쳤던 탓이다. 그러면서도 “완치되면 ‘아버지 모시고 드라이브 가고 싶다, 여행도 가고 싶다’고 했었죠”라고 김정일씨는 말했다.

앞서 지난달 8일에도 삼성전자 화성공장에서 일했던 황모씨(당시 52세)가 악성림프종으로 사망했다. 황씨 역시 산재보상이나 삼성전자의 보상을 받지 못했다. 반올림은 “오는 3월이면 삼성반도체 백혈병 문제를 처음 세상에 알린 고 황유미씨(2007년 3월6일 23세로 사망)의 10주기가 되지만, 여전히 그 공장에선 백혈병으로 사망하는 노동자가 나오고 있다”며 “이재용 부회장은 삼성전자 최고책임자로서 직업병 방치, 산재 은폐, 79명의 죽음에 대해 엄중한 처벌을 받아야 한다”고 밝혔다.

▶관련 기사- 삼성반도체 노동자 또 사망···“산재신청도 보상도 못 받아”

▶관련 기사- 반올림, 삼성반도체·디스플레이 노동자 집단 산재신청…2008년 이후 12번째

추천기사

바로가기 링크 설명

화제의 추천 정보

    오늘의 인기 정보

      추천 이슈

      이 시각 포토 정보

      내 뉴스플리에 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