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인, 독자적인 언어와 문화를 가진 그들의 ‘목소리’를 전하다

2017.04.19 21:22 입력 2017.04.19 21:23 수정

‘데프 보이스’의 늦깎이 일본 소설가 마루야마 마사키

이 사회에서 장애인은 여전히 시혜의 대상이다. 어딘지 부족해 보이기에, 비장애인들이 불쌍히 생각해 도와줘야 할 사람으로 여긴다.

ⓒJu Junyong

ⓒJu Junyong

최근 국내 출간된 일본 미스터리 소설 <데프 보이스>(황금가지)는 다르다. 청각장애인이라는 익숙한 표현 대신, 농인(聾人)이라는 표현을 쓰는 이 소설에서 ‘농문화’는 청인(聽人)은 알지 못하는 새로운 언어와 감각으로 가득 찬 세상이다. 주인공 아라이 나오토는 ‘코다’다. 코다(CODA·Children of Deaf Adults)란 농인 부모에게서 자란 청인 아이를 뜻한다. 경찰 사무직을 그만두고 수화 통역사로 일하는 그는 피의자 신분인 어느 농인의 법정 통역을 의뢰받는다. 그리고 한 농아시설에서 17년 간격을 두고 벌어진 살인사건의 전모를 추적한다.

지은이 마루야마 마사키(56)는 늦깎이 소설가다. 30대 초반에 시나리오 작가로 데뷔했으나 그다지 빛을 보지 못했고, 40대 들어서야 데뷔작 <데프 보이스>로 마쓰모토 세이초 상에 응모해 최종 후보에까지 올랐다. 마루야마와 e메일로 인터뷰했다.

농인, 독자적인 언어와 문화를 가진 그들의 ‘목소리’를 전하다

“도전하기엔 늦은 나이였습니다. 신인상 수상자들을 보면 마흔 넘어 상 탄 사람이 거의 없었거든요. 그래도 성격이 다른 작품들을 생각나는 대로 마구 써댔습니다. 전부 그럭저럭 괜찮았지만 작품의 핵심이라 할 만한 것이 빠져 있는 듯했습니다. 정말 이게 내가 쓰고 싶은 것인가? 나만이 쓸 수 있는 무언가가 있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하기 시작했을 때 ‘농인’이란 존재를 만나 <데프 보이스>를 쓸 수 있었습니다.”

<데프 보이스>의 시선은 마루야마 자신의 처지에서 비롯된 것인지도 모른다. 마루야마의 아내는 심각한 경추장애인이다. 마루야마가 글쓰기에 매달린 것도 아내를 돌보기 위해 집에 머무는 시간이 많아야 했기 때문이다. 마루야마는 “일본에는 ‘장애인차별해소법’이 있어 역에 엘리베이터가 생기거나 계단차가 해소되고 자동차 좌석도 편리해지는 등 어디든 자유롭게 갈 수 있는 듯 보인다”면서도 “그러나 실제로는 남의 심기를 신경 쓰며 머리 숙여 고맙다거나 미안하다는 말을 반복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말했다. 마루야마 역시 어린 시절부터 말을 더듬는 경미한 언어장애를 앓아왔다. 그는 “장애가 있는 사람도 없는 사람처럼 육체적·정신적으로 부담 없이, 거리낌 없이 생활하는 것이 진정한 배리어프리(barrier-free)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런 의미에서 <데프 보이스>가 그려내는 농인 사회의 자긍심 넘치는 태도는 마루야마의 이상일 것이다. NHK 수화 뉴스 캐스터인 기무라 하루미를 모델로 한 소설 속의 사에지마 모토코란 인물은 “농인은 언어적 소수자”라는 입장을 개진한다. 일본수화는 일본어의 ‘모방’이나 ‘보충’이 아니라, 또 다른 언어라는 것이다. 이는 “ ‘장애인’이라는 병리적 시점에서밖에 이야기되지 않았던 농인을 ‘독자적인 언어와 문화를 가진 집단’으로 다시 파악하는” 태도다.

마루야마는 <데프 보이스> 이후 부모의 학대나 방치로 행방불명이 된 아이를 소재로 한 <표류하는 아이>라는 작품을 써냈다. 미발표작 중에는 성소수자를 주인공으로 한 소설, 발달장애 소년이 등장하는 소설도 있다. 마루야마는 “특별히 장애를 다뤄야겠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니지만, 부당하게 차별받거나 편견에 의해 고통받는 사람들에게 관심이 있다”며 “압도적인 다수 앞에서 그들의 생각과 주장은 사회나 세상에 닿지 않기에, 조금이라도 그런 사람들의 ‘목소리’를 소설이라는 형태로 전달하고 싶다”고 말했다.

<데프 보이스>는 마쓰모토 세이초, 미야베 미유키로 대표되는 ‘사회파 추리’에 속한다. 그는 “일본, 한국 모두 언뜻 평화롭고 풍요로워 보이지만, 이상하거나 이해되지 않는 사건이 왕왕 일어난다”며 “그런 사회 현상에 대해 누구나 ‘뭔가 이상해’ ‘뭔가 잘못되어 있어’라고 느끼게 하는 작품을 쓰고 싶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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