웨이스트 랜드
올리버 프랭클린-월리스 지음|김문주 옮김|알에이치코리아|480쪽|2만4000원
우리는 플라스틱 빨대 없이 커피를 마시고, 재활용이 편하도록 상표가 붙어 있지 않은 생수병을 구매한다. 비닐봉지 대신 에코백을 들고, 친구에게 일회용컵 대신 쓰라며 텀블러를 선물하기도 한다. 빨대가 목에 걸린 갈매기나 비닐이 위장에서 발견된 물고기의 이미지를 강조하지 않아도 ‘제로 웨이스트’(일회용품의 사용을 줄이고 재활용이 가능한 재료를 사용함으로써 쓰레기 배출량을 줄여나가는 삶의 형태)를 추구하는 이들이 늘고 있다.
하지만 우리의 이 작은 노력이 얼마나 쓸모 있을까? 영국의 저널리스트 올리버 프랭클린-월리스는 다 먹고 비운 요거트 통을 분리배출 통에 넣기 전에 물에 씻다가 문득 궁금해졌다. 그는 자신이 버리는 쓰레기가 어디로 가서 어떻게 처리되는지, 온전히 재활용되고 있는지 살펴보기로 했다. <웨이스트 랜드>는 그가 전 세계에 퍼져 있는 폐기물 처리장이나 거래현장을 발로 누비며 쓴 책이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인도의 ‘쓰레기 산’인 가지푸르 쓰레기 매립장, 영국의 플라스틱 재활용 공장, 패스트패션으로 몸살을 앓는 아프리카의 중고 시장부터 핵폐기물 처리장까지 찾아갔다. 그 과정에서 저자는 쓰레기가 더 낮고 가난한 이들을 향해 일정한 방향으로 흐르면서 거대한 폐기물 산업을 형성하고 있다는 점을 알게 된다.
인도 가지푸르에는 언론에 수없이 보도된 유명한 쓰레기 산이 있다. 해마다 10m씩 높아지면서 타지마할(73m)을 위협하는 높이(65m)까지 와버린 쓰레기 매립지다. 원래는 뉴델리에서 가정 쓰레기를 버릴 수 있도록 1985년에 만들어진 장소다. 도시로 사람이 몰리면서 가지푸르로 오는 쓰레기의 양이 급격히 늘어 산이 됐다. 곳곳에 오물로 쌓인 두렁이 있고, 시베리아 솔개와 이집트 독수리 수천마리가 쓰레기를 파먹기 위해 산허리에서 빙빙 돌고 있는 쓰레기 산 주변에는 사람이 산다. 쓰레기를 파내 재활용이 될 만한 것들을 팔아 먹고사는 ‘넝마주이’들이다. 인도에서 카바디왈라(고물상)라 부르는 400만명의 넝마주이 중 약 5000명이 가지푸르 쓰레기 산 주변에 임시 판자촌을 만들어 살고 있다.
최상급 자재는 주로 갓 버려진 폐기물에서 나오기 때문에 넝마주이들은 안전장비도 없이 먼 거리를 기어올라간다. 비가 오는 날에는 산 표면이 너무 미끄럽고, 맑은 날에는 쓰레기에서 나오는 열 때문에 꼭대기 온도가 50도까지 올라간다. 넝마주이들은 지반이 약한 쓰레기가 붕괴되는 산사태로 목숨을 잃기도 한다. 2017년에만 전 세계적으로 쓰레기 매립장이 붕괴해 적어도 150명이 사망까지 이르렀다고 한다. 이렇게 위험한 일은 가장 가난하고 소외된 계층인 ‘달리트’에 속해 있는 경우가 많다. 쓰레기 산에서 만난 쓰레기 중개인은 저자에게 “쓰레기가 사라지고 나면 우리는 그 사람들한테 아무것도 아닌 게 돼요”라고 말한다.
같은 쓰레기 매립지라도 영국에 있다면 상황이 달라진다. 저자는 델리에서 6700㎞ 떨어진 영국 북동부 해변의 쓰레기 매립지로 향한다. 이곳을 둘러본 저자는 “가지푸르가 쓰레기로 이뤄진 최악의 상태 가운데 하나라면, 이곳은 최첨단의 장소였다”고 말한다. 트럭에 담겨온 쓰레기들은 ‘셀’이라고 부르는 구역화된 매립장소로 향한다. 호기성 박테리아 세례 같은 화학적 처리를 거친 쓰레기들은 점토와 몇 미터의 흙으로 감싸져서 봉해진다. 쓰레기 매립지에서 일하는 것은 그다지 매력적인 선택지는 아니지만, 적어도 생명을 위협받는 일은 없다.
두 곳의 대비에서 알 수 있듯 쓰레기는 불평등의 역학에 따라 모인다. 같은 국가 내에서는 가난한 교외 지역으로, 전 세계적으로는 저소득 국가로 향한다. 부유한 북반구의 소비자들이 주로 아시아에서 만들어진 저렴한 물건들을 마구잡이로 사들이면서 쓰레기가 폭증했고, 국제적인 폐기물 무역이 20세기 중반에 시작됐다. 중국은 폐기물 업계의 큰손이었다. 폭발하는 제조 산업에 쓰기 위해 서구로부터 고철들을 사들였다. 나중에는 플라스틱 폐기물까지도 모았다. 하지만 쓰레기로 인한 오염과 건강 문제가 심각해지면서 중국은 외국산 쓰레기 수입을 금지하는 폐기물 금수조치를 2018년에 시행했다.
갈 곳 잃은 쓰레기들은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스리랑카, 베트남, 태국 등으로 다시 향했다. 저자는 1980년대 환경운동가들이 만들어낸 ‘유독성 식민주의’라는 개념을 소개한다. “다른 국가에 폐기물을 안겨주는 것은 착취의 행위, 심지어는 지배의 행위”다. 권력이 있는 자가 쓰레기의 흐름을 결정한다.
재활용의 중요성은 날로 커지고 있다. 사람들은 재활용을 위해 종이 빨대를 쓰고, 비닐 대신 종이봉투를 쓴다. 하지만 ‘재활용 가능’이라는 말은 쓰레기 문제의 본질을 가리는 수단이 되기도 한다. 특히 문제는 플라스틱의 재활용이다.
저자는 펄프 재활용 공장과 플라스틱 재활용 공장을 두루 둘러본다. 온라인 쇼핑의 성장으로 인해 종이 쓰레기의 양이 어마어마하게 증가하고 있지만, 종이 쓰레기는 순환율이 모든 쓰레기 중 가장 높다. 영국에서 종이와 포장재의 80%가 재활용된다. 하지만 플라스틱은 다르다. 플라스틱은 한 가지 소재 또는 화학 물질이 아니라 형태와 독성, 기능 면에서 극도로 다양한 수천가지 물질이다. 저자는 “플라스틱이 분해되기보다는 분리된다”며 “거대 플라스틱은 미세 플라스틱이 되고, 나노 플라스틱이 된다”고 설명한다.
플라스틱 재활용 업계는 재활용 비율을 부정확하게 제시한다. 실제 재활용되는 비율이 아니라 재활용 시설로 들어간 폐기물의 양을 기준으로 재활용률을 산출하는 식이다. 플라스틱 산업협회의 전 회장인 래리 토머스는 미국 공영 라디오 방송에서 이렇게 털어놓았다. “대중은 재활용이 효과적이라고 생각하면 환경을 딱히 걱정하지 않게 될 것이다.” 저자는 재활용이 특히 어려운 나쁜 플라스틱도 있고, 그나마 재활용이 가능한 좋은 플라스틱도 있는데 복잡한 플라스틱 분류 코드가 소비자들의 눈을 속이고 있다고 지적한다. 실제로는 그렇지 않은데도 물건이 재활용됐다거나 재활용이 가능하다고 보는 ‘위시 사이클링’이 만연해 있다는 진단이다.
저자는 다 입은 옷을 기부하거나 중고 거래를 통해 쓰임을 연장하는 것에도 이 같은 착시 현장이 있다고 짚는다. 영국에는 1만1209곳의 자선 상점이 있다. “오늘날 물건을 중고로 사는 일은 새 물건을 사는 것보다 훨씬 세련되고 멋진 일”이 됐다. 사람들은 필요한 옷을 사고 중고 상점에 죄책감 없이 기부하는데, 이로 인해 “패션의 낭비는 더욱 빨라지고 있다.”
아프리카 가나 수도 아크라에는 중고의류 국제시장 ‘칸타만토’가 있다. 가나 비영리 단체 OR 파운데이션에 따르면 1500만벌의 의류가 매주 칸타만토에서 거래된다. 저자는 “지난 몇년간 알뜰 쇼핑과 리세일 앱이 인기를 얻으면서 최고급 의류는 점차 북반구에만 머물게 됐고, 패스트패션은 칸타만토에 여느 때보다 질 떨어지는 의류를 가차 없이 퍼부었다”고 전한다. 또 “우리가 쓰레기에 대해 내린 판단이 수천 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있는 사람과 장소에 보이지 않는 결과를 낳을 수 있음을 인식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저자가 쓰레기에 관한 책을 쓰고 있다고 말할 때마다 주변 사람들은 “그럼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해?”라는 질문을 던졌다. 그가 생각하는 답은 다소 심심하면서도 단순하다. “물건을 덜 사라는 것”이다. 기업들은 재활용을 통해 순환경제를 이룰 수 있을 것처럼 말하는데, “순환경제를 강조하는 것이 물건을 (일단 사고) 처분하라고 장려하는 효과를 가진다”는 것이 저자의 분석이다. ‘소비자 심리 저널’에 실린 2013년도 연구 결과에 따르면 재활용함이 주변에 있을 때 실험 참가자들은 그렇지 않은 경우보다 종이를 두 배 더 많이 사용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더 근본적으로는 투명하고, 정직한 폐기물 체계가 필요하다. 저자는 국가나 기업이 “추정치나 절반의 진실이 아닌 진짜 재활용 통계를 발표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또 기업들이 자신이 파는 물건의 소재를 더 명확히 밝히고, 폐기물을 압도적으로 많이 만들어내는 기업에 직접 폐기물을 치우는 비용을 부과해야 한다고 제안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