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부산행 ‘희망 버스’가 던지는 메시지

2011.06.13 20:05

촛불을 들고 행진하는 대열에는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장, 문정현 신부, 배우 김여진씨 등 유명인사도 몇몇 있었지만 대부분 평범한 시민들이었다. 서울·수원·전주·순천 등 전국 곳곳에서 ‘희망 버스’를 타고 부산의 한진중공업 영도조선소로 모여든 500여명이 조선소 정문 앞에서 시위 중이던 부산시민들과 합류하자 한밤의 어둠에 묻혀 있던 이 일대는 1000여개의 촛불로 순식간에 환해졌다. 촛불시위대는 한진중 노동자 정리해고 철회를 요구하며 158일째 35m 크레인 위에서 농성 중인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본부 지도위원을 향해 “사랑해요” “힘내세요”를 외쳤다. 이 회사 노동자의 부인들은 타오르는 촛불 앞에서 ‘고맙습니다’라는 펼침막을 흔들며 엉엉 울었다.

한진중 정리해고 사태가 일개 사업장의 노사문제를 뛰어넘어 시민들의 전국적인 참여까지 불러온 데는 노조와의 약속을 헌신짝처럼 내던진 회사 측의 ‘공로’가 크다. 2003년 노조에 대한 손해배상·가압류로 김주익·곽재규 두 노동자가 스스로 목숨을 끊을 당시 회사 측은 순이익이 났는데도 650여명의 노동자를 명예퇴직시켰다. 2007년에는 ‘국외공장이 운영되는 한 정리해고는 하지 않는다’고 약속했고, 지난해 2월에는 노조와 ‘구조조정을 중단한다’는 고용안정협약을 맺어놓고도 모조리 위반했다. 지난 10년 동안 회사는 4277억원의 이익을 냈으면서도 노동자들에게는 시시때때로 해고의 칼을 휘둘렀다. 더욱이 지난 2월에는 172명 정리해고 통보를 해놓고 주주들은 174억원의 배당금을 챙겼다. 극심한 도덕적 해이가 아닐 수 없다.

지금이라도 회사 측은 노조와 맺은 약속과 협약을 준수해야 한다. 경영상 불가피한 사유로 해고는 할 수 있다지만 막대한 수익을 내면서 반복적으로 해고를 일삼는 것은 누가 보더라도 설득력이 없다. 회사 측에 돈다발을 안겨다 준 노동자들에게 특별상여금을 주지 못할망정 생존의 터전을 박탈할 수는 없는 일이다. 회사 측은 “노조의 불법파업으로 손실이 막대하다”고 주장하지만 그 파업이 왜, 무엇 때문이었는지 먼저 성찰해야 한다.

김진숙 지도위원과 한진중 노동자들을 격려하기 위해 부산으로 달려간 ‘희망 버스’에서 우리는 시민사회에서 지펴지고 있는 아름다운 연대의 불씨를 발견한다. 버스에 올라탄 이들은 직업적인 운동가도, 명망가도 아닌 그야말로 우리 사회의 이름없는 생활인들이다. 그렇지만 이들은 노동자들의 아픔이 곧 자신의 아픔이고, 그 아픔들이 많은 사람들의 손으로 어루만져질 때 치유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은 위대한 사람들이다. ‘희망 버스’는 쉼 없이, 더 힘차게 내달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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