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속의 책]최초의 그림책은 뭘까

2000.07.27 11:12

그림책을 ‘그림에 의한 메시지’로 정의한다면 그 시초는 구석기시대 동굴벽화나 우리의 암각화까지 거슬러오른다. ‘그림이 있는 책’이라 한다면 유럽 중세에 세밀화를 그려넣은 성서나 기도서, 고려시대에 불화(佛●)를 그려넣은 불경쯤 될까. 오늘날처럼 그림책을 ‘아동을 위해 글과 그림을 넣은 책’ 정도로 규정한다면 최초의 서양 그림책은 17세기 모라비아의 교육학자 요한 코메니우스가 만든 어린이용 교과서 ‘세계 도회(圖繪)’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

하지만 그림이 글에 따른 구색이 아니라 그림 자체가 예술의 경지에 다다르고 그림책 자체가 디자인 예술에 육박한 ‘현대 그림책’의 원조는 아무래도 19세기 후반에서 20세기 초에 걸쳐 활동한 영국사람 크레인, 그리너웨이, 칼데콧, 포터로 이어지는 ‘4인방’이다. 이들의 작품은 “현대 그림책의 가능성 대부분을 내포하고 있었다”는 평을 듣는다. 실제 이들의 작품과 이들의 이름을 걸고 주는 상(賞)은 아직도 명망이 높다.

영미문학과 아동문학을 연구하는 요시다 싱이치(릿쿄대 명예교수)는 ‘일러스트레이션의 전통과 문화’(이민정 옮김·범우사)에서 영국의 그림책을 통해 서양 그림책의 역사를 살핀다. ‘현대 그림책’의 원조들로부터 오늘날까지 그림책의 작가·장르·형식·작품을 다룬다.

특히 ‘4인방’을 키워냈으면서도 매우 생소한 인물이 소개돼 주목을 끈다. 에드먼드 에반스. 화가가 그린 그림을 나무에 새기는 ‘목판 조판사’였다.

에반스는 무명의 ‘4인방’을 차례로 발굴했고 당시로서 상상 가능했던 모든 기술과 방법을 동원해 색상·명도·채도가 뛰어난 그림책을 만들었다. 그의 공방(工房)에서 나온 그림책은 “오늘날 하이테크닉도 흉내낼 수 없는 손작업에 의한 장인솜씨”가 돋보인다. 확대경으로 그림책을 보면 용도가 다른 갖가지 조각칼의 쓰임새가 절로 탄성을 자아내게 한다는 것이다.

그림책의 역사를 살피면서 저자가 하고 싶은 말은 한마디로 요약될 듯하다. 좋은 책 한권은 한 개인의 소산이 아니라는 것이다. 출판 전 과정에 걸친 전통과 기술과 장인정신의 총화. 무릇 역사책은 개개인을 겸손케 만든다.

/김중식기자 uyou@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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