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설을 던진다’그렉 매덕스‘0순위’

2000.08.01 23:41

야구선수로서 통산 3,000개의 안타를 친 선수라면 당대 최고의 타자로 불릴 만하다. 3,000개의 안타가 아니더라도 통산 500개의 홈런을 때려낸 선수라면 역시 최고의 타자로 꼽는다. 투수의 경우 통산 300승을 달성하면 역사에 길이 남을 대선수가 될 수 있다.

야구에서 3,000안타·500홈런·300승의 기록은 최고의 선수로 평가받을 수 있는 대표적 기준 역할을 해왔지만 타자와 투수간의 불균형이 갈수록 심화되고있는 현재에는 기준이 바뀌어야 한다는 이론이 고개를 들고 있다.

한 시즌에 50개 이상의 홈런을 때려내는 거포가 여러명 존재하는 요즘 500홈런은 그다지 드문 일이 아니다. 최근 2년 동안 3,000안타를 돌파한 선수도 3명이나 나왔을 정도로 타자가 강세를 보이고 있다. 그러나 5일의 등판 주기로 한시즌 30번 안팎의 등판 기회를 갖는 현대야구에서 투수가 통산 300승 고지를 넘는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지금까지 300승을 돌파한 투수는 모두 20명에 이르지만 대부분은 야구가 지금같은 형태로 정착하기 전인 1950년대 이전의 선수들이다. 40대 이하의 야구팬들이 기억할 만한 300승 투수는 1990년 마지막으로 300승을 돌파한 놀런 라이언을 비롯, 스티브 칼튼, 필 니크로, 단 서튼, 톰 시버 등이 있을 뿐이다.

현역선수 중에는 뉴욕 양키스의 로저 클레멘스가 256승으로 최다승을 기록하고 있지만 그의 나이는 올해 38세. 이제 시즌 10승을 올리기도 벅찬 고령이기 때문에 클레멘스의 기록달성은 어렵다. 지난달 31일 200승을 넘어선 애틀랜타 브레이브스의 특급 좌완투수 톰 글래빈도 34세의 나이에 비해서 300승은 너무 멀리 있다.

이 때문에 ‘마운드의 마에스트로’로 불리는 그렉 매덕스(애틀랜타 브레이브스)는 역사상 마지막으로 300승에 도달할 수 있는 유일한 선수로 꼽힌다. 매덕스의 현재 승수는 233승. 올해 34세인 매덕스가 300승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앞으로 4년 이상 매해 15승 이상을 올려야 한다. 얼핏 불가능해 보이지만 매덕스가 최근 5년 동안 세번이나 19승을 올린 데다 힘에 의존하지 않는 기교파 투수이기 때문에 기대를 거는 팬들도 많다.

문제는 매덕스 자신의 결심이다. 매덕스는 “현대 야구에서 300승은 꼭 도달해야 할 지상과제가 아니다”라고 말한다. 이 말 속에는 300승을 채우기 위해 말년에 추한 모습을 보이지 않겠다는 뜻이 들어있다.

1960년대 시카고 화이트삭스의 얼리 윈은 300승을 위해 발버둥친 대표적 선수로 남아있다. 299승을 올리고도 마지막 1승을 보태지 못하고 번번이 패했던 윈은 결국 1962년 팀에서 방출당한 뒤 이듬해 42세의 나이에 애걸하다시피 클리블랜드 인디언스에 합류했다. 마지막 힘을 짜내 천신만고 끝에 300승을 채운 윈은 그 이후 1승도 추가하지 못하고 기진맥진 은퇴했다.

기록 달성 여부에 관계없이 이미 역사상 가장 뛰어난 투수중 하나로 검증받은 매덕스로서는 이같은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은 것은 당연하다. 매덕스가 자신의 말처럼 기록에 그다지 큰 비중을 두지 않는다면 이제 야구에서 통산 300승이라는 기록은 영원히 나올 수 없는 전설의 기록이 될지도 모른다.

〈유신모기자 simo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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