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벗과의 만남]안토니오 그람시와 다산 정약용

2000.11.01 16:58

1926년 8월 안토니오 그람시(1891~1937)는 로마 경찰에 체포되어 레지나 코엘리 감옥의 독방에 갇힌다. 당시 법정에서 그람시에게 내린 판결은 “20년 동안 저 사람의 두뇌가 활동하지 못하게 하라”는 것이었다. 곱사등이인 데다 잦은 질병으로 허약한 몸을 이끌어온 그에게 20년간의 감옥은 사형선고나 마찬가지였다. 아닌 게 아니라 그는 투옥 11년 만에 버거운 감옥생활을 견디지 못하고 숨을 거두었다. 그러나 판결문과 달리 그의 두뇌활동은 중단되지 않고 오히려 더 왕성해졌다. 구속과 질병이라는 악조건 속에서도 불굴의 의지와 정신력을 지켜온 그는 ‘옥중수고’라는 20세기 마르크스 사상의 고전적 저작을 일궈냈다. 최근 출간된 그람시의 서한집 ‘감옥에서 보낸 편지’(민음사)는 그의 긴장되고 절제된 옥살이를 잘 드러내준다.

“나는 지나치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있고, 나중에 고치기 힘든 버릇을 들이지 않으려고 애쓰고 있습니다. 감옥에서 조용히 살기 위해서는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만 갖는 데 익숙해져야 합니다. 자신의 저항력을 유지하기 위해서 스스로에 대해 엄격한 규율을 부과해야 합니다”(1927년 9월12일, 처형 타니아에게 보낸 편지)

그람시가 감옥에서 20세기의 마르크시즘을 빚어냈듯 다산 정약용(1762~1836)은 또다른 감옥인 유배지에서 실학을 완성시켰다. 다산의 학문과 사상의 핵심이 되는 ‘주역사전’ ‘논어고금주’ ‘경세유표’ ‘목민심서’ 등 대부분의 주요 저작들은 18년의 유배 기간에 이루어졌다.

500권의 방대한 저서가 다산의 학문적 결정체라면, 유배지에서 쓴 다산의 서한들은 인간 정약용을 집약적으로 보여준다. 편지 속에 나타난 다산은 외로운 유배자였고, 정이 많은 평범한 아버지였다. “이제 너희들은 망한 집안의 자손이다. 그러므로 잘 처신하여 본래보다 훌륭하게 된다면 이거야 말로 기특하고 좋은 일이 되지 않겠는가? 폐족(廢族)으로서 잘 처신하는 방법은 오직 독서뿐이다. 독서는 인간의 제일 가는 깨끗한 일로서, 호사스런 부호가의 자제는 그 맛을 알 수 없고 또한 촌구석의 수재들도 그 오묘한 이치를 알 수 없다”(1802년 12월22일, 두 아들에게 보낸 편지)

그람시의 ‘감옥에서 보낸 편지’와 다산의 ‘유배지에서 보낸 편지’에는 갇힌 자의 깊은 사유가 배어 있다. 그들이 빚어낸 사색과 고민, 저항의 몸부림은 시공을 뛰어넘어 독자들을 끌어당기고 있다. 철창과 가시울타리의 금압도 생각의 날개는 끝내 꺾지 못하는 법. 20년20일을 감옥에서 보낸 신영복 선생은 “‘꿈의 징역살이’를 경계하라”고 말했다. 정신이 깨어 있으면 절반은 자유인이기 때문이다.

/조운찬기자 sidol@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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