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馬死’에 소송걸린 마사회

2002.04.01 18:48

“목장측의 관리부실 때문이다” “무슨 소리, 말의 공격적인 성격 때문이다”

한 주한 외교관과 한국마사회가 한마리 말의 죽음에 대한 책임소재를 놓고 15개월째 치열한 법정공방을 벌이고 있다. 1일 서울지법 민사합의14부(재판장 孫潤河 부장판사)에 따르면 주한 아르헨티나 참사관인 호세 마리아 베레네는 지난해 2월 “목장측의 관리 부주의로 말이 죽었다”며 한국마사회 등을 상대로 10만달러(약 1억3천만원)의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냈다. 국내에서 동물의 죽음과 관련한 거액의 민사소송이 제기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지난 2000년 7월 베레네 부부는 본국 아르헨티나로 여름휴가를 떠나기에 앞서 자신들의 애마인 ‘몽고’와 ‘카보차드’를 한국마사회에서 운영하는 원당목장에 맡겼다. 이들 부부는 목장측과 정식으로 위탁계약서까지 작성했다.

그러나 다음날 목장측으로부터 청천벽력같은 전화 한 통을 받았다. “종마(種馬)인 ‘몽고’가 놀이마당에서 뛰놀던 중 갑자기 거세마인 ‘카보차드’를 공격, ‘카보차드’의 앞다리가 골절돼 안락사시켜야 한다”는 것이었다. ‘카보차드’는 그 다음날 베레네 부부가 지켜보는 가운데 수의사에 의해 안락사당했다.

이후 ‘카보차드’의 죽음에 대한 책임을 두고 양측은 한치의 양보도 없는 법적 다툼을 벌여왔다.

원고측은 “종마인 ‘몽고’가 갑작스레 ‘카보차드’를 공격한 것은 ‘몽고’가 방목과정에서 암말 냄새를 맡았기 때문”이라며 “목장측이 ‘몽고’가 다른 암말의 냄새를 맡지 못하도록 적절한 조치를 취하지 않은 만큼 피해에 대해 배상하라”고 주장하고 있다. 원고측은 여기에다 말 구입비, 운송료, 마장마술 훈련비용까지 덧붙여 요구하고 있다.

이에 대해 마사회측은 “야간에는 ‘몽고’를 개별막사에 분리수용했다”면서 “이번 불의의 사고는 과거 ‘사고를 친’ 경험이 있는 ‘몽고’의 특수한 성격 때문에 발생했다”고 반박하고 있다.

말 전문가들은 종마는 암말 냄새를 맡으면 성질이 사나워지고 공격적이 된다고 설명한다. 이 때문에 종마의 경우엔 교배기간을 제외하고는 늘 격리수용하는 것이 관리의 기본이라는 것이다. 말 한마리를 둘러싼 이 팽팽한 다툼의 중간에 서게 된 재판부는 전문가들을 수소문, 말의 행태 등에 대한 다양한 공부를 하면서 외국의 말보험 보상사례까지 정밀 조사해왔다. 재판부는 과연 누구의 손을 들어줄까.

〈김형기기자 hg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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