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 바래봉 철쭉‘봄의 절정·여름의 시작’

2002.05.01 16:23

지리산 간다. 철쭉 보러 남원 바래봉 간다. 산을 덮어버리는 꽃물결. 해마다 5월이 되면 삼삼한 꽃불이 눈에 어른거려 꽃몸살이 난다. 지난 겨울 통영의 동백부터 올 봄 섬진강과 해남의 매화밭, 거제도의 진달래 산, 논산의 배꽃과 사과꽃밭까지. 그만큼 꽃구경했으면 이제 꽃이 지겹지도 않으냐고?

지리산 바래봉 철쭉‘봄의 절정·여름의 시작’

올해는 꽃이 조금 이르다. 속리산 화양구곡을 찾았을 때 바래봉 철쭉제가 1주일 앞당겨졌다는 소식을 들었다. 지리산이 철쭉으로 벌겋게 물들었다고. 서둘러 방향을 바꿔 지리산으로 향했다. 산마을인 전북 남원시 인월의 여관 주차장이 승용차로 가득했다. 어라! 바래봉 철쭉에 몸이 단 사람이 어지간히 많았나보다.

동이 트자마자 운봉읍 용산리로 달린다. 국도변에서 보아도 산 아래까지 빨갛다. 산행기점 격인 용산리에는 아스팔트 주차장까지 들어섰다. 국립종축원 앞을 가로지르던 산행로도 이제 용산리로 바뀌었다.

산행길이 가볍다. 새끼발가락에까지 힘이 잔뜩 들어간다. 망아지 걸음으로 산정을 향해 걷는다. 사실 산길은 그리 운치도 없는 길이다. 국립종축원이 뚫어놓은 임도. 목장 언저리인 데다가 나무도 많지 않다. 오전 10시만 되어도 땡볕이 정수리를 쪼는 그런 따분한 길이다. 그래도 신이 나는 것은 초입부터 철쭉이 바다처럼 펼쳐져 있기 때문이다.

철쭉밭은 길 양쪽에 펼쳐져 있다. 물감을 툭 떨어뜨려 번진 것 같은 붉은 꽃밭이 산길 아래 목초지까지 뻗어 있다.

붉음과 푸름의 경계. 꽃과 신록의 대비. 뭐라 표현할 단어가 확 떠오르지 않는다. 그저 아름답다고 할 수밖에. 이만한 꽃밭을 다른 곳에서는 찾아보기 힘들다. 산비탈에는 철쭉밭이 더 빽빽하다. 철쭉에 포위된 오리나무, 소나무, 낙엽송…. 말 그대로 ‘그림’이다. 따지고보면 등산로도 철쭉에 포위돼 있다.

철쭉은 산 중간부(500m)까지 봉오리를 열었다. 철쭉제는 원래 절정기에 맞춰 하는 법일 텐데. 4월28일 철쭉제는 좀 이른 것 같다. “오라. 운봉 사람들이 철쭉밭을 오래도록 소문내기 위해 꾀를 냈구나”. 마을사람들은 산이 크고, 철쭉밭이 광대하다보니 고지별로 절정기가 따로 있는 셈이라고 한다. 4월말의 절정기는 하단부(500m 안팎)의 목장 능선길. 5월초부터 10일 사이는 700m고지가 타오른다. 5일부터 15일 사이는 8부 능선(900m), 정상(1,165m)은 10일부터 20일 사이가 절정이다.

산중턱에서 뒤를 돌아보니 운봉 들판이 한눈에 들어온다. 산과 산에 둘러싸여 있는 들이 넓고 좋다. 이런 게 명당인가. 운봉을 ‘천하길지’라고 했던 까닭이 짐작이 간다. 정감록은 운봉을 10승지(十勝地) 중 하나로 꼽으면서 ‘어진 정승과 훌륭한 장수가 나서 가히 오래 몸을 보존할 수 있는 곳’이라고 적었다.

지리산 바래봉 철쭉‘봄의 절정·여름의 시작’

최영의 홍산대첩과 함께 여말 왜구를 섬멸한 2대첩으로 유명한 황산전투를 기리는 비문이 운봉면 화수리에 남아있다. 근세의 동학농민전쟁, 해방 후 빨치산과의 치열한 전투에서도 전화를 입지 않았다. 6·25만 해도 바로 옆자락 뱀사골은 쑥대밭이 됐는데 운봉은 전화가 없었다니 참 신기하다.

8부능선에 오르면 산이 지금까지와 딴판이다. 8부능선부터는 산 모양이 마치 스님들의 밥그릇인 ‘바리때’를 엎어놓은 것 같다. 바래봉이라는 이름이 여기서 나왔다. 바래봉 철쭉은 이곳부터 정상까지가 가장 아름답다. 초지와 어우러져 한 뭉치씩 모여있는 철쭉 군락지. 꽃이 피면 마치 정원사가 다듬어놓은 것 같다고 한다.

1971년 이곳에서 호주로부터 들여온 면양 시범목장을 운영했다. 먹성 좋은 면양이 초목을 모두 뜯어먹고 독성이 강한 철쭉만 남겨두었다.

발 아래는 아득한 운봉 들판. 정상에서는 거대한 지리산 줄기를 한눈에 볼 수 있다. 천왕봉에서 노고단까지 크고 작은 봉우리들이 늘어서 있는 지리산맥이 장관이다. 구름이라도 산중턱에 걸치면 천상화원이 된다.

‘산마을 사람들아/고향땅 천리 밖에 있어도/철쭉 핀 노을강 앙금이 보인다/아름답게 갈라진 노을강 허리/하늘마저 삼켜버린 노을강 강바닥/지리산 철쭉밭에 꽃비로 내리고/즈믄밤 내린 꽃비 꽃불로 타오르고…’(고정희의 ‘철쭉제’)

뱀사골에서 숨을 거둔 지리산 시인 고정희의 시구처럼 봉홧불처럼 타오르는 바래봉. 꽃불이 이렇게 또 지리능선을 타고 북으로 번져간다.

▲여행 길잡이

경부고속도로를 타고 회덕을 지나 ‘무주’ 이정표를 보고 대전 남부순환고속도로로 진입한다. 계속 직진하면 지난해 말 뚫린 대전~진주간 고속도로와 연결된다. 함양분기점에서 88올림픽고속도로를 탄다. 지리산IC에서 빠져나온다. 2㎞ 직진하면 인월읍 인월초등교 4거리. 우회전해서 7.6㎞ 달리면 운봉읍이다. 운봉읍 4거리에 들어서 ‘바래봉’ 표지판을 보고 좌회전해 달리면 용산리. 용산리에 차를 세워두고 오르면 된다. 정상까지는 1시간30분 거리다. 하루 10차례 운행하는 전라선 열차를 타고 남원까지 가거나 30분~1시간 간격으로 운행하는 고속버스를 타고 남원까지 간다. 남원 버스터미널에서는 20~30분 간격으로 운봉까지 직행버스가 다닌다. 운봉읍사무소 (063)620-6631/6631, 남원역 632-7788.

인월읍내에 있는 산골농장(636-2701)은 지리산 토종돼지를 맛볼 수 있는 곳. 직접 농장을 운영해서 생고기를 맛볼 수 있다. 신김치와 동치미도 일품이다. 운봉읍쪽에 옥계타운(634-1234), 서광파크(634-7508), 정령치모텔(626-1011)이 있다. 인월에는 지리산장(636-2649), 반야장(636-5585) 등이 있다.

지리산 실상사가 가깝다. 통일신라 때인 828년 창건된 실상사는 선종(禪宗)을 계승한 구산선문의 첫 사찰. 보기 드물게 평지에 세워진 사찰이다. 조선 숙종때 36동의 당우를 새로 지었으나 고종때 다시 불에 탔다. 그래서 역사에 비해 당우가 많지는 않다. 현재 발굴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입구에 3개의 석장승이 남아있다. 경내에는 국보 10호 백장암 3층석탑을 비롯, 보물로 지정된 수철화상능가보월탑과 탑비, 부도, 3층석탑, 증각대사응료탑과 탑비, 철제여래좌상 등이 있다.

/남원·최병준기자bj@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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