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정책점검]대미관

2002.05.01 18:34

노무현 후보의 대미(對美)정책 기조는 한·미 동맹관계의 테두리는 유지하되 한국 주도의 ‘자주적 외교’를 강화하겠다는 것이다. 외견상으로는 김대중 대통령의 대미정책과 유사하다. 실제 노후보는 김대통령의 대미정책을 높이 평가하면서 자신은 이를 ‘좀더 수평적이고 대등한 관계’로 계승·발전시키겠다는 입장을 분명히 하고 있다.

그는 “노태우(盧泰愚) 대통령 시절까지 한·미관계에서 미국의 입장이 일관되게 관철됐고, 김영삼(金泳三) 대통령 시절에는 오락가락하면서 정서적·감정적으로 자주적인 목소리가 있었으나 실제 정책에 있어서는 한국의 주도권을 관철시키지 못했다”고 평가한 바 있다.

반면 김대통령의 대미정책에 대해서는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면서도 의존적이고 종속적이었던 한·미관계가 차츰 상호관계로 변했다”며 “(앞으로) 한국의 주도성이 차츰 강화될 것”(2002·4·12 SBS라디오 인터뷰)이라고 밝혔다.

노후보는 대미 의존적 외교행태에 대해 거부감을 드러내고 있다. 대표적인 예가 과거 대통령 후보들의 ‘눈도장찍기’식 워싱턴 방문에 대한 비판이다. 노후보는 “대통령 후보가 되면 미국 조야에 신고를 해야 한다는 사람이 많아서 힘들다”며 “수평적이고 대등한 한·미관계를 위해 흔들리지 않겠다”(2002·4·24 서울지구당 유세)고 강조했다.

외교전문가들은 굳이 이런 말을 할 필요가 없지 않느냐는 의견을 내놓고 있다. 미국에 안가면 그만이지 속내를 그런 식으로 그대로 드러내는 것은 불필요한 오해를 불러일으킬 우려가 있다는 것이다.

노후보는 현 미 공화당 행정부의 한반도정책을 포함한 세계정책에 대해 수차례에 걸쳐 반감을 드러냈다. 그는 ‘노풍’이 불기 전인 지난해 11월 안동시민연대 초청강연에서 조지 W 부시 대통령의 외교정책을 강도높게 비판했다. 노후보는 자신이 생각하는 ‘세계 역사에 기록될 위대한 지도자’로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을 들면서, 그 이유로 냉전 이후 화해와 협력을 기초로 한 평화와 공존시대를 연 외교정책을 꼽았다.

반면 부시 대통령의 외교정책에 대해서는 “지금 미국의 역사는 뒷걸음질치고 있거나 되돌아가고 있으며, 부시 대통령은 전세계를 대결과 긴장의 시대로 몰아가고 있다”고 직격탄을 날렸다. 대통령 후보로 선출되기 이전의 발언이지만 노후보의 이같은 직접화법은 그가 대통령이 될 경우 부시 대통령과의 관계에서 문제가 될 수 있다는 분석이 있다.

한·미 동맹관계의 핵심 축인 주한미군 주둔에 대해서 노후보는 입장을 바꿨다는 말을 듣는다. 재야 변호사 시절에는 주한미군 철수를 주장했다가, 민주당 경선과정에서 이를 지적받자 “1991년 통합민주당 대변인 시절 김대중 당시 총재와의 토론과정에서 외교현실을 고려할 때 적절치 않다는 입장조율을 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지난 4월3일 이인제(李仁濟) 당시 경선후보 질의서에 대한 답변에서는 “통일 후에도 현재와 같은 안보 대치구도가 유지된다면 주한미군은 계속 주둔해야 한다”고 밝히기도 했다.

노후보는 취약한 외교경력 때문에 다소 우려섞인 지적을 받는다. 미국에는 한번도 가본 적이 없고 해외여행마저 고작 세번 다녀왔을 뿐만 아니라, 대중정치인으로서 국제관계에도 직접화법을 자주 사용하고 있기 때문인 듯하다.

이는 노후보의 참모진 가운데 외교전문가가 적다는 점과도 맥이 닿아 있다. 지난달 30일 오마이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지지율이 높아지니까 몰려드는 미국통이 많다”고 말할 정도다. 최근 노후보의 국제담당 특보가 미국 방문과정에서 “미국은 한국 대선에 끼여들 생각은 하지마라. 한국 경선에서 손떼라”고 발언해 파문을 일으킨 사례도 있다.

전문가들은 노후보의 국내정책에 비해 외교문제에 대한 식견이나 이해가 부족하다는 지적을 한다. 자신의 정치적 이상을 외교현실과 치밀하게 접목시키는 노력이 결여됐다는 것이다.

〈차세현기자 csh@kyunghy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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