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마을]강은 없다

2002.10.01 16:27

/김호진 (시인·의성 동산약국약사)/

가슴 한 기슭을 강에 빠뜨린 그는

배롱나무 붉은 꽃잎 지는 것만 보아도

강이 깊다는 것을 안다

배롱나무 일시에 각혈하며 기진할 때

그가 본 것은 뒤척이는 강의 허벅지다

반야사 두리기둥 갈라진 틈새들이

강의 허벅지에 보태어져 물살을 이룰 때

처마 밑 단청이 쓰다듬는 물빛은

반야사보다 피멍든 꽃잎에 먼저 스민다

강이 범람할 듯

저녁연기 낮게 스멀거린다

가슴 한 기슭을 강물에 빠뜨린

그가 오기 전 반야사에는

배롱나무 두 그루만 있었다

강은 없다

-시집 ‘생강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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