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호진 (시인·의성 동산약국약사)/
가슴 한 기슭을 강에 빠뜨린 그는
배롱나무 붉은 꽃잎 지는 것만 보아도
강이 깊다는 것을 안다
배롱나무 일시에 각혈하며 기진할 때
그가 본 것은 뒤척이는 강의 허벅지다
반야사 두리기둥 갈라진 틈새들이
강의 허벅지에 보태어져 물살을 이룰 때
처마 밑 단청이 쓰다듬는 물빛은
반야사보다 피멍든 꽃잎에 먼저 스민다
강이 범람할 듯
저녁연기 낮게 스멀거린다
가슴 한 기슭을 강물에 빠뜨린
그가 오기 전 반야사에는
배롱나무 두 그루만 있었다
강은 없다
-시집 ‘생강나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