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먼인뉴스]“개구리소년, 남의 일 아닙니다”

2002.10.01 18:24

“어떻게 유골로 발견될 수가 있습니까. 수면제를 먹지 않으면 잠을 이루지 못하던 개구리소년 부모들의 모습이 가슴을 칩니다. 아이를 잃어버린 부모 심정을 조금이라도 이해한다면 하루빨리 ‘미아실종법’이 제정돼야 합니다”

대구 개구리소년들의 유골이 발견됐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지난 28일 다른 지역 실종 어린이 부모와 함께 발굴 현장으로 달려온 나주봉씨(48·서울 동대문구 제기동)는 개구리소년 부모들의 손을 잡고 말을 잇지 못했다. 그는 소년들이 실종되던 해인 1991년부터 부모들과 함께 전국을 돌며 찾아온 터라 유골 발견 소식에 부모 못지 않게 참담해 했다.

그는 유골 발굴 현장을 찾아 ‘종식아 찬인아 영규야 호연아 철원아 극락왕생하거라’라고 쓴 리본이 달린 꽃바구니를 놓고 소년들의 명복을 빌며 이틀간 그들의 부모들 곁을 지키며 위로했다. 또 다른 지역에서 찾아온 실종 어린이 부모들의 사연도 현장에 모인 사람들에게 알리고 모든 실종 어린이 부모들이 자신의 아이를 찾을 수 있는 사회적 여건 조성을 위해 ‘미아실종법’ 제정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을 역설했다.

부모들이 실종된 자녀를 찾는데도 행정기관에서는 문전박대를 하거나 무성의한 태도로 일관, 피눈물을 흘리는 부모들의 가슴에 대못을 박는 일이 예사로 일어나기 때문이다.

나씨가 이렇게 자신의 일처럼 실종 어린이들을 찾는 일에 팔을 걷어붙이고 나서게 된 것은 개구리소년 부모들과의 만남이 인연이 됐다. 1991년 7월 인천 월미도에서 ‘각설이타령’을 하며 카세트테이프 노점상을 하다 그곳까지 아들을 찾으러 온 부모들을 만난 것이다. 요란한 각설이타령으로 자신의 주위에는 사람들이 많이 모여있는데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는 개구리소년 부모들을 보면서 전단 500부를 뺏다시피해 행인들에게 나눠줬다. 아이들을 잃어버리고 생업도 내팽개친 채 전국을 떠돌며 자식을 찾아나선 부모의 심정이 순간 가슴을 쳤기 때문이다. 이후 나씨는 자비로 전단 2만장을 만들어 개구리소년 찾기에 힘을 쏟았다.

그는 나선 김에 개구리소년뿐 아니라 이래 저래 알게 된 다른 실종 어린이들도 함께 찾기 시작했다. 자신의 트럭에 아이들을 찾는 그림판을 덕지덕지 붙이고 전국을 돌며 각설이타령으로 테이프를 파는 것보다 아이들을 찾는 데 더 마음을 썼다. 이 때문에 생활이 어려워져 트럭을 처분해야 할 정도까지 됐지만 대신 리어카에 아이들 사진을 붙이고 군밤장수로 나서기도 하면서 잃어버린 아이들을 찾는 일을 포기하지 않았다.

이렇게 해서 나씨가 찾아준 아이는 지금까지 모두 19명에 이른다. 앵벌이조직에 잡혀있던 아이를 10여일간의 미행 끝에 빼내 부모 품에 안겨주기도 했다. 92년 이형호군(당시 9세) 유괴사건 때는 범인의 협박전화 목소리를 담은 테이프 5만개를 자비로 제작해 시민들에게 나눠주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친척들을 비롯한 주위 사람들은 아이찾는 일에 모두 지쳐 떨어졌지만 포기하지 않는 나씨는 실종 어린이 부모들에게 ‘마지막 희망’이었다.

그는 이렇게 알게 된 부모들이 70여명에 이르자 지난해 4월 ‘전국 미아·실종가족찾기 시민의 모임’을 구성했다. 사무실은 지난해 제13회 서울시민대상 장려상으로 받은 상금 3백만원으로 서울 청량리역 앞에 컨테이너박스를 설치해 마련했다. 그리고 지난 5월 민주당 김희선 의원에게 건의, ▲경찰청내 전담부서 설치 ▲미인가시설의 의무적 신고 및 수용자 유전자 검사 의무화 등을 내용으로 하는 가칭 미아실종법안을 만들어놓고 법 제정운동을 벌이고 있다.

“아이를 잃어버린 가정은 몇년 내에 대부분 파탄상태에 이릅니다. 미아발생사건을 부모의 책임으로만 돌리지 말고 최소한 부모가 자식을 찾을 수 있는 제도적인 지원과 장치를 마련하도록 해야 합니다”

개구리소년들 유골 앞에서 “지난해 간암으로 숨지기 전 종식이 아버지 김철규씨가 손을 잡고 ‘아이들을 꼭 찾아달라’던 말이 생각나 못 견디겠다”며 눈물을 떨군 나씨. 그는 “해마다 우리나라에서 5,000여명의 미아가 발생하고 이 가운데 300여명은 영영 가정으로 돌아오지 못하는 현실에서 누구나 자식을 잃어버릴 수 있는 만큼 그들을 나라가 돕는 관련법 제정이 꼭 필요하다”고 재차 강조했다.

〈대구/최슬기기자 skchoi@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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