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려워 말고 休~하며 쉬어라

2002.11.01 16:20

조립식 침대가 있다. 나무들을 조립해 침대를 만들기 위해 나사를 조인다. 느슨하면 삐걱거릴뿐더러 도중에 나사가 풀려버릴 수 있다. 드라이버를 두 손으로 잡고 꽉꽉 조인다. 이사를 간다.

짐을 싸고 침대를 해체한다. 나사가 영 풀리질 않는다. 다시 드라이버를 두 손으로 잡고 힘껏 돌린다. 나사머리에 파인 홈이 뭉그러진다. 나사는 다시 쓸 수 없다.

호숫가에서 물수제비 뜨기를 한다. 천천히 던지면, 돌은 ‘퐁’ 물 속에 빠져버린다. 사람들은 사라져버리는 것을 바라지 않는다. 일상의 속도를 늦추면, 깊이를 알 수 없는 물 속으로 빠질지 모른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계속 분주히 움직인다.

그러나 두려워하지 말라. 남아메리카 어느 부족은 행군을 하는 도중, 자주 멈춰 앉아 휴식을 취한다. 며칠을 쉬다 다시 행군을 한다. 영혼이 자신들을 따라잡을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 책 ‘휴(休)’는 숨을 내쉴 때 나는 소리다. 들숨이 숨을 들여와 몸 안에서 생명과 힘을 창조하는 과정이라면 날숨은 쉬는 일이다. 숨을 내놓지 않고 어찌 다시 숨을 들이 쉴 것인가. 들숨과 날숨은 순환해야 한다.

“바닥 닦기를 마쳐도 또다시 바닥 닦을 일이 생기고, 아이를 목욕시켜도 다시 또 씻겨주어야 한다. 삶 전체가 이런 순환속에서 움직이는데, 어떻게 일을 끝마칠 수 있겠는가? 모든 것을 끝마칠 때까지 휴식을 취하지 않는다면 죽을 때까지 결코 휴식을 갖지 못할 것이다”

‘바쁘다’는 한자 망(忙)은 마음(心)의 죽음(亡)이다. 장자는 ‘누가 감히 흙탕물을 깨끗하게 만들 수 있겠는가? 그냥 고요하게 놔두면 그 물은 절로 깨끗해지는 법이다’라고 말한다. 쉬라, 그러면 영혼의 찌꺼기들은 저절로 가라앉을 것이다.

저자는 ‘쉼’을 강조한다. 그렇다고 수도자처럼 가정을 떠나 은둔하고, 일상적인 삶을 버리라고 요구하지 않는다. 그저 쉬라는 것이다. 회사, 일, 출세와 같은 세속의 욕망을 내려놓으라는 것이다.

가장 아름답고 활력있고 진실한 것이 무엇인지를 들으라는 것이다. 아이들과 함께 어울리는 것도 좋고, 아침 침대에서 게으름을 떨며 아내와 맨살을 비비며 서로를 느끼는 것도 좋다. 그렇게 충만함을 느끼는 순간, 관대한 영혼은 친절을 베풀고 나눠주고 싶어한다. 그때의 영혼은 삶을 전장(戰場)에서 끌어내 ‘사랑의 오솔길’에 서게 한다. 단지 서너번 큰 숨을 들이쉬고 내쉬는 것만으로도 영혼은 제 본성인 관대함을 되찾는다. 전지전능인 하나님도 창조 짬짬이 뒤로 한발짝 물러서서 ‘흐뭇한 마음으로’ 쉰다.

빛과 어둠을 분리시킨 뒤 쉬고, 하늘과 땅과 바다를 만든 뒤 쉬고, 태양과 달과 남자·여자를 만든 뒤에도 한발짝 물러나 흐뭇한 마음으로 쉰다. ‘열심히 일한 당신, 떠나라’. 당신은 떠날, 쉴 준비가 되어 있는가. 사실 쉬는 것에 준비가 있을리 없지만, ‘떠나라’가 ‘사표 쓰라’는 말로 들린다면 당신은 더욱 집착과 욕망을 버리고 쉬어야 한다.

“행복이야말로 자유시장 경제에서 생산해낼 수 없는 유일한 상품이며 쉼만이 만들어낼 수 있다”는 저자의 말이 다가온다.

/윤성노기자 ysn04@kyunghyang.com/


추천기사

기사 읽으면 전시회 초대권을 드려요!

화제의 추천 정보

    오늘의 인기 정보

      추천 이슈

      이 시각 포토 정보

      내 뉴스플리에 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