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칼럼]‘정직한 정치인’의 소명

2003.01.02 18:46

“정치와 도덕을 구분해서 다루는 사람은 둘 중 어떤 것도 이해할 수 없다”는 장 자크 루소의 말은 옳다. 정치 관행은 정직의 의무와 조화될 수 있으며 반드시 그래야 한다. 하지만 과연 정치인이 정직하다는 게 가능한 일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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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질문은 민주주의의 핵심과 연결된다. 유권자들이 정치인들을 부정직한 집단으로 여길 때 반민주주의적 움직임이 창궐한다. 하지만 모든 정치인들은 보편적 진리를 압도하는 모호성과 절충성을 잘 알고 있다. 때로는 소악(小惡)을 선택해야 하는 경우도 있다. 품위와 정당성에 관한 일반적인 기준이 모든 경우에 적용될 수는 없다. 이는 정치적 냉소주의나 위선의 문제만은 아니다.

정치적 부정직은 다양한 형태로 나타난다. 일반적으로 부정직하다고 여겨지는 사람이라면 어떤 상황에서도 부정직한 지도자나 관리가 될 것이다. 또다른 유형인 ‘아마추어’들은 서투르고 미숙하기 짝이 없어서 자신이 도모하려는 이익을 도리어 해치기 일쑤다. 정치적 재능을 나쁜 데 사용하는 ‘정치 도박꾼’들은 재주는 있되 무자비하고 반성할 줄을 모른다. 비슷한 유형인 ‘정치 말썽꾼’들은 다른 사람이 어떤 곤경에 처하든지 모든 수단을 동원해 자신의 야망을 추구한다.

언제나 자신이 절대적으로 옳다는 확신에 눈먼 ‘정치광’들도 부정직한 부류들이다. 이들 못지않은 ‘권모술수꾼’들은 ‘비전’도 줏대도 원칙도 없으며 책임 앞에선 꼬리를 내린다.

보다 흔한 부정직한 태도로 냉소적 실용주의자들이 있다. 이들은 도덕적 의무와 정치적 이해가 갈등을 빚을 때면 언제나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시킨다고 여긴다.

정반대 극단에 있는, 순진하고 공상적이고 도덕주의적인 태도 역시 부정직하긴 마찬가지다. 이들은 사소한 흠결이나 정치 상대주의를 개탄하고 도덕성 회복을 위한 무익한 호소를 늘어놓는다. 하지만 상황은 그처럼 단순하지 않다. 모든 사람들이 정직하다면 정치는 더 이상 필요없을 것이다.

지금까지의 이야기가 우리가 정직한 정치인들을 구분할 방법이 없다는 뜻은 아니다. 임마누엘 칸트는 정치인을 두 가지 유형으로 구분했다. ‘정치적 도덕주의자’는 정치를 냉소적인 게임으로 간주하면서 도덕의 문제를 해결한다. 앞서 열거한 모든 유형의 부정직한 정치인들이 여기에 해당한다.

두번째 유형은 ‘도덕적 정치인’으로 이들은 냉소적 실용주의를 거부하며 순진한 도덕적 훈계에도 승복하지 않는다. 정직한 정치인은 정치를 공통선을 추구하기 위한 수단으로 여긴다. 그는 순진하지 않으며 때로는 참고 타협해야 하고 느린 행보도 필요함을 잘 안다. 요컨대 정직한 정치인은 원칙에 기초한 실용주의를 추구한다. 사람들이 반기지 않는 것도 말할 수 있는 용기를 가져야 하지만 언제나 건설적인 태도를 견지해야 한다. 정직한 정치인의 가장 어려운 시험은 옳지만 인기없는 주장을 변호해야 하는 때이다. 특히 선거가 다가올 때는 종종 그 시험에서 낙오하곤 한다.

정치적 정직이 정치인만의 책무는 아니다. 여론도 걸맞은 역할을 해야 한다. 정치적 정직은 관용과 연대의식과 평등한 인권이 향유되는 사회에서 뿌리를 더 잘 내릴 수 있다. 그런 토양은 부정직한 무리들이 활개치지 못하게 만든다.

나는 직업 정치인이다. 그래서 어떤 이론이나 분석도 정치인들로 하여금 정치적 선택에 맞닥뜨렸을 때 무엇이 정직이고 무엇이 부정직인지의 질문에서 양심의 갈등을 겪는 일로부터 해방시켜줄 수 없음을 잘 알고 있다. 정직한 정치인이라면 이런 부담을 기꺼이 걸머지려 할 것이다.

〈알렉산드르 크바스니에프스키/폴란드 대통령〉

〈정리/문영두기자 ydmoo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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