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로 가는 길 맨발로 걷기…충남 서천군 비인만

2003.07.01 16:27

장맛비가 그치자 바닷물도 비구름을 따라 멀어져갔다. 물고기를 몰고 왔던 사리 때의 밀물이 아득한 먼바다로 다시 밀려간 뒤 드러난 해변. 바닷물 속에서도 파도가 치는지 모래밭에는 물이랑 자국이 또렷하다. 해안선을 닮아 이리저리 굽은 기하학적인 모래무늬. 그 작은 물고랑 틈에선 손톱만한 칠게와 농게들이 빠끔히 고개를 내민다. 물고랑을 따라 기어다니며 팔딱팔딱 뛰어오르는 손가락만한 망둥어 새끼들도 귀엽다.

바다로 가는 길 맨발로 걷기…충남 서천군 비인만

몇해 전까지만해도 비인만을 찾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대천해수욕장과 춘장대, 일출과 일몰을 함께 볼 수 있는 마량포구 바로 아래에 붙어있으면서도 교통이 불편했기 때문이다. 대천에서 서천으로 오려면 주포방조제와 부사방조제를 지나야 한다. 그 아래 비인만은 개발이 덜 돼 구불구불한 농로길을 타고 들어와야 했다. 하지만 서해안 고속도로가 뚫리면서 한달음에 연결되는 새길을 따라 비인만을 찾는 여행자들이 부쩍 늘었다.

비인만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은 만 한가운데 있는 서면 월호리 월하성 포구와 비인면 선도리 해변. 월하성포구는 50여가구가 사는 작은 마을이다. 월하성은 ‘달 아래 성’이란 뜻. 월호리의 옛이름은 달포리다. 호수처럼 잔잔한 바다에 달빛이 비치는 모습이 아름답다는 뜻의 낭만적인 이름이다.

포구의 모습을 제대로 보려면 썰물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물이 빠지기 시작하면 어민들도 바빠진다. 주차장 한 편 트레일러에 실어놓은 소형 어선을 바다로 끌고 들어가 배를 띄운다. 바닷물이 들어가지 않게 모터를 한 뼘 정도 들어 올려 특수개조한 경운기다. 요즘은 대부분의 어선들이 트레일러를 이용한다.

비인만은 아직 오염이 덜 돼 어자원이 풍부한 편이다. 봄이면 주꾸미가 많이 잡힌다. 요즘은 소라와 곰치, 백조기 시즌이다. 7월 중순부터는 자하와 중하가 잇달아 잡히고, 가을에는 대하가 나온다.

바다로 가는 길 맨발로 걷기…충남 서천군 비인만

“근데 큰일이여. 7월부터 산란기 2개월 동안은 연근해에서 고기를 못잡게 한다는 디 그러면 여기 어민들은 다 죽어요. 우리 마을은 배가 작아 먼 바다에도 못나가고 요 앞에서 먹고 살아야 하거든…”

조수간만의 차가 크지 않은 비인만 일대의 포구는 큰 배가 들어올 수 없다. 대부분 1t짜리 소형 어선을 운영하는 어민들의 걱정이 이만저만 아니다. 그러나 여행객들에게 비인만은 어느 바다보다 재미있는 곳. 맛을 잡는 재미가 있기 때문이다.

썰물 때 모래밭에 들어가 삽으로 겉모래를 떠내고 맛소금을 뿌리면 맛이 고개를 쑥 내민다. 이때 재빨리 손으로 낚아채 그물에 담는 재미가 쏠쏠하다. 어른·아이 할 것 없이 맛을 잡으며 탄성을 내지른다. 솜씨 좋은 사람은 1시간이면 1㎏ 정도를 잡아낸다. 맛잡기 체험 어장은 주민들이 지난해 7월부터 허가를 받아 운영하기 시작했다. 1년도 안됐지만 한 번 다녀온 사람들이 소문을 퍼뜨리면서 요즘 주말에는 차를 댈 자리가 없을 정도로 북새통이다.

“요즘은 어민만큼이나 맛을 잘 잡는 사람들이 많아요. 아예 일삼아 ‘원정’을 오는 어부들도 있어요. 새끼는 남겨둬야 하는데 먹지도 못하는 것을 모두 쓸어가 걱정이에요”

밤새 물빠지기를 기다렸다가 새벽부터 가마니째 실어나르는 ‘얌체족’들도 있다. 실제로 몇해 전 맛잡기로 인기를 누렸던 춘장대는 요즘 맛이 거의 씨가 말랐다고 한다. 선도리 해변에서도 맛을 잡을 수 있다. 선도리는 해안도로를 타고 조금 돌아가야 하지만 월하성 포구에서 빤히 보이는 곳이다. 해변을 걷는 운치는 월하성보다 낫다. 선도리 앞바다에는 무인도 2개로 이뤄진 쌍도가 떠있다. 물이 빠지면 쌍도까지는 모랫길이 열린다. 연인들이 즐겨 걷는 곳이다. 쌍도는 지금 사유지. 일제 때 금을 캤다는 굴이 남아 있다.

선도리 포구에서 쌍도까지는 700m 정도. 월하성 포구보다 조수간만의 차가 크지 않기 때문에 모래펄이 더 넓다. 월하성 포구가 초승달 같은 지역의 북쪽 끝이라면 선도리는 한가운데. 모래밭은 월하성과 연결돼 있다. 그만큼 광활하다. 중간 지대에선 꼬막과 바지락이 나오며 끝부분에서는 맛을 잡을 수 있다.

선도리는 원래 이름난 해수욕장이었다. 해변에 물막이용 방파제가 세워진 뒤 모래가 쓸려나가 백사장이 많이 줄었다. 요즘은 바다 중간에 들어가야 모래밭이 펼쳐진다.

수많은 갯생물을 품어 키워내는 비인만. 달빛 비추는 밤바다가 아름다운 곳. 맛을 캐고 조개를 잡는 해변이 넉넉하고 평화롭다.

바다로 가는 길 맨발로 걷기…충남 서천군 비인만

▲여행길잡이

서해안 고속도로 서천IC에서 빠지는 길과 춘장대IC에서 빠지는 길이 있다. 춘장대IC 코스는 톨게이트를 나와 춘장대 해수욕장 방향으로 달린다. 저수지를 지나면 서면 읍내. 면사무소를 지나자마자 왼쪽에 띠섬목으로 가는 첫번째 3거리 갈림길이 나온다. 좌회전해서 띠섬 입구를 지나면 월호리 가는 길. 오른쪽에 월호리 입구가 있다. 바닷가에 30대 이상 차를 주차할 공간이 있지만 주말에는 차량이 많아 입구에서 통제한다. 월호리를 지나 617번 지방도를 타고 장항쪽으로 가는 길에 선도리가 나타난다. 서천IC 코스는 톨게이트를 나오자마자 우회전해 국도 21호선을 탄다. 갈림길이 나오면 춘장대 길이 아닌 지방도를 타면 된다. 그린투어 홈페이지(www.greentour.or.kr)에서 충남을 클릭하면 월호리 바다에 대한 자세한 설명을 볼 수 있다. 반드시 물때를 확인하고 가야 한다. 서천군청 관광과(041)950-4224

월호리에는 음식점이 많지 않다. 월호리에서 45분 거리의 장항 ‘온정집’은 서천에서 유명한 아귀 전문점. 3대째 아귀맛을 이어오고 있다. 장항역에서는 5분 거리에 있다. 아귀탕은 2인분에 2만6천~3만6천원. 아귀찜은 10만원이다. 값이 비싼 편이지만 그만큼 푸짐하다. 아귀탕에는 얼리지 않은 생아귀가 가득 들어간다. 여관이 없기 때문에 민박을 해야 한다. 월하민박(041-952-2258), 월하회

가든(041-953-9292), 동백민박(041-952-1781), 체험민박(041-952-3637) 등이 있다.

/서천/최병준기자 bj@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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