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토의 땅’은 러시아 것이 아니었다

2003.08.08 17:47

◇ 샤먼의 코트

안나 레이드/미다스북스

‘동토의 땅’은 러시아 것이 아니었다

시베리아를 연상시키는 말들은 대체로 음울했다. 영하 60도까지 떨어진다는 혹독한 추위. 그 정도의 추위라면 수은이 납으로 변하고, 브랜디는 시럽처럼 걸쭉해진다. 그러기에 도스토예프스키의 ‘죽음의 집의 기록’이었고 고리키의 ‘죽음과 사슬의 땅’이었으며 솔제니친의 ‘수용도 군도’였다. ‘유배의 땅’ ‘동토의 땅’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시베리아엔 원래부터 나름대로의 역사와 풍습을 갖춘 사람들이 살고 있음을 잊어서는 안된다. 16세기 이방인인 러시아인이 발을 들여놓을 때까지. 지금은 도리어 원주민들이 초라한 이방인이다. 오늘날 시베리아 인구 3천2백만명 중 원주민은 1백60만명뿐. 현재 시베리아 원주민(에벤족) 출신으로 모스크바 과학아카데미 대학원생인 나타샤의 푸념.

“‘나는 소련사람이에요’하고 말하는 게 훨씬 편했어요. 그런데 지금은 내 입으로 러시아인이라고 말하는 건 불가능해요. 러시아는 내게 어울리는 카테고리가 아니니까요”

러시아인들은 담비모피를 얻기 위해 우랄산맥을 넘었다. 온통 침략과 파괴뿐이었다. 그것도 모자라 매독과 천연두, 인플루엔자 등 온갖 질병, 그리고 사람의 넋을 빼앗는 보드카로 ‘시베리아의 순수맨’들을 오염시켰다. 특히 17~18세기에 창궐한 천연두와 매독으로 한티족, 만시족, 네네츠족, 에벤키족, 케트족, 유카기르족 인구 절반이 목숨을 잃었다. 현재의 몽골, 바이칼호 인근 카흐타에 둥지를 틀고 살던 부랴트족에게 어느 러시아인이 비아냥댔다.

“너희들은 어쩌다가 안짱다리가 됐냐”. 그러자 부랴트족이 대답했다. “칭기즈칸 시절부터 그렇게 됐다. 너희 러시아인들의 모가지에 걸터앉았던 그 시절부터”. 부랴트족은 러시아의 침략에 30년이나 맞섰다.

러시아인에게 잡힐 경우 자결을 일삼는 등 워낙 강인한 민족으로 20세기가 돼서야 정복된 추크치족. 어느날 추크치족이 중국에 선전포고했다. 중국 사절이 어이없어하며 “중국인구가 10억명이라는 걸 아느냐. 그래도 싸우기 원하느냐”고 묻자 추크치족은 대답했다. “그게 정말이냐. 그럼 너희들 모두를 어디에 묻어주랴?”

또하나 시베리아는 ‘샤머니즘의 고향’이다. 그들은 이 세상 모든 것이 살아있다고 믿는다. 이처럼 활기넘치는 만물과 사람을 이어주는 이가 바로 샤먼(에벤키족은 ‘모든 걸 다 아는 사람’으로 부른다)이다. 러시아의 끝없는 박해에도 불구하고(스탈린은 ‘한번 하늘을 날아보라’고 하면서 샤먼들을 헬기에서 내던지기도 했다) 끝내 맥을 이어갔다.

저자는 ‘시베리아는 시베리아인에게’라는 모토로 이 책을 썼다. 시베리아를 횡단하며 9개 민족을 일일이 찾아다니면서 묻혀버린 원주민의 슬픈 역사와 고단한 삶을 생생한 필치로 그려내고 있다. 러시아에 의해 정복된 시베리아는 이제 ‘기회의 땅’으로 각광받고 있다. 그러나 그것은 거꾸로 시베리아가 다시 강대국들의 야욕을 채울 쟁탈의 대상으로 떠오르고 있다는 얘기다. 그렇다면 그나마 남아있는 원주민의 흔적은 사라져 버릴 것이다. 바로 그게 정작 우려되는 바가 아닐까. 윤철희 옮김. 1만3천5백원.

〈이기환기자 lkh@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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