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사람의 집]윤동혁 PD의 횡성 전원속 편집실

2004.04.01 15:57

“세상에서 가장 호화롭고 분에 넘치는 편집실이지요. 허허.”

‘인간시대’ ‘자연다큐-버섯’ ‘김치를 말한다’ 등 휴먼·자연 다큐멘터리를 연출해온 윤동혁 PD(53·푸른별영상 대표)는 강원도 횡성에 있는 그의 전원 속 편집실을 이렇게 소개했다. 원목으로 안팎을 꾸며 만든 2층 집은 논과 밭, 얕은 산, 작은 개울을 주변에 끼고 평화롭게 자리하고 있다. 10가지도 넘는 새소리가 들린다는 이곳은 공기맑고 조용한 전원주택 그 자체다.

집 1층에는 모니터, 컴퓨터 등 편집기기가 놓인 작업실과 안방이 있고 계단으로 올라간 2층에는 작은방과 전경이 좋은 베란다, 그리고 아늑한 다락이 정겹게 이웃하고 있다.

[그 사람의 집]윤동혁 PD의 횡성 전원속 편집실

그가 강원도 횡성 지역과 인연을 맺은 것은 1988년 무렵. MBC에서 휴먼다큐멘터리 프로그램인 ‘인간시대’를 연출할 때 횡성에 사는 아주머니를 취재하면서부터다. 방송이 나간 뒤에도 때마다 와이셔츠 상자에 구운 메뚜기를 가득 담아 보내주는 아주머니와 가까운 친척처럼 안부를 전하며 지냈는데, 시골에서 살고 싶어 하는 그에게 아주머니가 지금의 자리를 추천했다.

1995년 서울 양재동에 있는 사원 아파트를 팔고 이곳에 집을 지었다. 1998년 SBS에 다니다 명예퇴직을 신청하면서 아예 이곳으로 들어온 것이다. 프리랜서로 독립했지만 장비 문제 등이 해결되지 않아 서울과 원주를 떠돌다가 지난해 11월이 돼서야 터를 잡았다.

[그 사람의 집]윤동혁 PD의 횡성 전원속 편집실

프리랜서로 독립한 뒤 벌이는 많이 줄었지만 대신 원하던 자유와 전원생활을 얻었다. “논길, 밭길을 산책하는 즐거움이 1년에 2천만원, 새소리 듣는 게 1천만원 등 적어진 연봉 대신 얻은 것도 많다”며 웃음을 짓는다. 시골생활을 꿈꾸면서 자연친화적인 삶을 영상에 담아온 그에게 지금의 삶은 자신의 속과 겉을 비로소 일치시킨 셈이다.

“서울에서는 수박껍질을 버리는 게 어찌나 싫었던지요. 다 쓰레기잖아요. 여기서는 수박씨는 마당에 ‘훅’ 뱉고, 껍질은 잘게 썰어 밭 거름으로 쓰지요.”

나무로 만들어진 집을 포함, 그의 전원주택은 안팎 모두 자연친화적이다. 그의 집안 곳곳에는 숯이 접시나 바구니에 담겨 놓여 있다. 살균작용이 뛰어난 숯의 기능에 대해 자신이 만들어 방송했던 내용대로 생활에서도 적용하고 있는 것. 텔레비전, 싱크대, 책상 등에 놓여 있는 숯은 공기를 맑게 하고 습도를 조절한다고 한다.

집 주변 1,300여평의 밭에는 비료 하나 쓰지 않고 쑥갓, 상추, 고추, 깨, 부추, 옥수수 등을 직접 기른다. 식사 직전에 먹을 만큼 뜯어와 밥에 비벼 먹기도 하고 찾아온 사람들에게 마음껏 뜯어가게 한다. 마당 한구석에서 기르는 닭 4마리에서 매일 나오는 달걀도 주된 반찬이다.

그의 영상제작물이 평범한 사람들의 생활에 정보와 함께 감동을 주는 것은 소박한 삶을 귀하게 여기는 그의 가치관 덕분이다. 매번 5일장에 나가 생선이나 과일을 사고, 봄이면 화분과 묘목을 사 나른다.

전원주택을 짓다가 사기도 당하고, 서울에서 살다가 팔아버린 아파트 가격이 3배 이상 뛰어 재테크에 처절하게 실패한 그 모든 것은 사람과 김치와 벌레에 쉽게 마음 흔들리는, 자연인이고 싶은 그의 운명일 터이다.

“요즘 부는 웰빙 바람이 못마땅합니다. 돈으로 사는 웰빙이잖아요. 돈 없는 사람한테는 자괴심만 심어주니까요. 그래서 가난한 식탁이지만 건강을 유지할 수 있는 현실적 방안에 대해 고민 중입니다. 유기농 사과는 못사지만 그냥 사과를 숯 담근 물에 담가두고 콩세제로 닦아 껍질째 먹는 식 말입니다.”

[그 사람의 집]윤동혁 PD의 횡성 전원속 편집실

“막술 마시고 막담배 피우는 강원도 할아버지는 100살 가까이 산 반면 자전거로 출·퇴근하고 주말마다 등산한 내 친구는 암으로 50살에 죽더라고요. 건강에 좋은 것은 정해져 있지 않은 것 같습니다. 자기 DNA에 맞게 사는 게 중요하죠.”

그의 머리와 마음은 열려 있었다. 아주 활짝.

-층마다 넉넉한 베란다, 뒤뜰엔 작은 옹달샘-

윤동혁 PD의 전원주택 겸 작업실에는 아기자기한 공간들이 많다.

집안 계단을 올라 2층으로 가면 계단끝 오른쪽으로 난 작은 문을 통해 다락방으로 들어갈 수 있다. 원래는 카메라맨이나 편집기사 도움 없이 혼자서 작업해야 할 경우를 위해 편집실 용으로 마련한 공간이라고 한다. 세로로 기다랗고, 한쪽 벽은 지붕모양 따라 경사진 이 방은 방끝 창으로부터 환한 햇빛이 들어와 화사하고 깨끗했다. 한쪽 벽에는 윤PD가 그동안 찍은 작품들의 비디오테이프가, 한쪽 벽에는 촬영하는 데 참고한 책들이 차곡차곡 쌓여 있다.

마당쪽으로 환하게 트인 시야를 즐길 수 있게 베란다 공간을 넉넉하게 꾸민 것도 이 집의 특징이다. 1층은 현관 문 앞에 베란다 공간을 널찍하게 만들어 흔들의자에 앉아 경치를 바라볼 수 있게 했다. 2층에도 작은 베란다가 있어 좀더 높은 곳에서 집 앞 풍경을 내다볼 수 있다.

집 뒷마당에는 작은 옹달샘이 있어 목을 축이고 손도 씻을 수 있다. 아토피 피부염으로 고생하는 막둥이 아들을 위해 만든 앞마당 작은 수영장은 계곡물을 받아 사용한다.

〈횡성|글 임영주·사진 김영민기자 minerva@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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