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섬강의 첫줄기 횡성 ‘병지방(兵之坊)’

2004.06.01 16:18

초여름. 습기 섞인 햇살이 무겁다. 이른 더위로 멀리 산자락마저 어른거리는 6월. 이제는 계곡이 그립다.

강원 횡성군 갑천면 병지방에 간다. 병지방은 구면이다. 겹겹산속에 둘러싸인 벽촌. 5~6년전 처음 찾았을 때는 비포장길 한 가닥이 탯줄처럼 마을을 연결하고 있었다. 지금도 매양 마찬가지지만 마을로 이어지는 길은 2배 정도 넓어졌다. 숲그늘 짙은 산줄기 사이로 겨우 승용차 한 대 지나갔던 옛길이었는데…. 내년 완공될 도로를 위해 이런 산줄기들을 덜컥 잘라냈다. 비포장길은 새 흙을 깔아 다지고 있다. 지방도에서 마을 복판까지는 비포장도로로 8㎞ 정도. 길이 완공되면 관광객들이 몰려들 테지만 아직은 심심산골이다.

고갯마루를 넘어서면 계곡의 윤곽이 잡힌다. 계곡은 그리 크지도, 넓지도, 깊지도 않다. 개울처럼 작고 아담하다. 여울도 없이 시종 잔잔한 계곡은 멀찌감치 앉아있는 산줄기 속으로 꼬리가 닿아있다. 지도상에도 병지방 계곡이란 이름 대신 대관대천이라고 씌어있다. 이 물줄기가 바로 섬강 첫 줄기다.

“처음 온 사람들은 계곡이 고만고만하다고 하지만 사실 이곳 저곳 물골이 많아요. 조금만 들어가면 사람 하나 없는 그런 계곡들이 흩어져 있어요.”

공세울, 장승골, 다락골, 산뒤골, 샘골, 공세울…. 마을 앞에 세워진 안내 그림판에는 골짝도 많이 그려져 있다. 비포장길이 끝없이 이어진 공세울 상류를 밟아보니 원시림 같은 이끼골도 나타났고, 마을을 지나 산으로 이어진 늘목길에는 편백나무 숲이 울창하다. 여기저기 뚫린 임도는 끝을 알 수 없이 산을 감고 사라진다. 늘목재 아래 계곡은 등산로의 흔적이 아직 남아있다. 비오는 날만 물줄기를 뿜어내는 건천도 있다.

사실 계곡만 따지면 병지방은 설악산이나 오대산에 비할 수 없다. 계곡 군데군데 석축을 쌓아놓아 예전보다 운치도 없어졌다. 그래도 한 번 계곡에서 놀다간 사람들은 다시 찾는다고 한다. 시퍼런 소(沼)나 깊은 담(潭)이 없어 눈길 줄 데가 많지 않지만 대신 안전하게 탁족을 즐기기에는 그만이다.

물가에 들어서면 막 길어놓은 샘물처럼 맑고 차가운 물줄기에 더위가 싹 가신다. 사방이 산에 둘러싸인데다 자작자작 강자갈을 적시며 흐르는 물소리, 숲을 옮겨 가며 우는 새소리, 앙칼지지 않게 긴 울음을 던지는 강아지…. 화려하진 않아도 은근하게 마음이 가는 곳이다.

계곡뿐 아니라 오지 여행의 재미도 느낄 수 있는 곳이다. 횡성은 북동쪽으로는 태기산(1,261m), 청태산(1,190m), 봉복산(1,028m), 운무산(980m), 어답산(789m)을 끼고 있다. 북쪽으로는 수리봉(1,028m), 발교산(998m), 오음산(930m), 대학산(876.4m)이 첩첩 늘어서 있다. 동쪽으로는 사자산(1,120m)·배향산(808m)이, 남쪽엔 치악산 남대봉(1,819m)·향로봉(1,042m)·비로봉(1,288m)과 매화산(1,084m)이 있다. 병지방은 이중 어답산, 발교산, 대학산 안에 앉아있다.

“옛날에는 화전민 촌이었더래요. 그때가 더 북적거렸지요. 1970년대에 녹화사업으로 다 쫓겨 가 버리고 그나마 땅뙈기가 있는 사람들만 남았지요.”

한때는 이 산 저 산을 잇는 산길이 한자리로 합쳐지는 산마을이어서 제법 행인들이 많았던 곳이다. 50여년 전만 해도 장돌뱅이, 약초꾼, 화전민들이 들락거리는 주막집도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 병지방리 삼거리는 옛이름이 주막거리였다.

다른 마을들은 산을 깎고 길을 내어 이리저리 연결시켜 놓았지만 병지방은 그동안 개발에 뒷전이었다. 행(幸)인지 불행(不幸)인지 그 덕택에 산마을의 예스런 풍광을 간직할 수 있게 됐다. 횡성군은 그런 병지방을 토종마을로 지정했다. 실제로 토종꿀을 치는 사람이 많고, 더덕밭을 가꾸는 집도 있다. 산그늘이 드리워진 경사진 밭고랑 끝머리에는 녹슨 양철지붕을 이고 있는 옛집(사진 맨위)도 많다. 아직 디딜방아가 남아있는 집도 있다. 마을은 채 50여가구가 못된다.

병지방(兵之坊)이란 옛날 군인들이 주둔했던 곳이라고 한다. 전쟁의 역사는 무려 2,000여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진한의 마지막 왕인 태기왕이 신라의 박혁거세에게 쫓겨 이곳으로 들어왔다고 한다. 갑천면에는 태기왕이 피묻은 갑옷을 씻었다는 전설이 내려온다. 어답산(御踏山)이란 임금이 친히 밟은 땅이란 뜻으로 박혁거세와 태기왕이 찾았던 곳이다. 공세울에는 태기왕이 군사들을 먹이기 위해 세금을 거둬갔다는 뜻이 담겨져 있다.

요즘 병지방에도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마을 안에 청소년 수련관과 함께 마을 주민들이 관리하는 통나무집 산림문화회관이 들어섰다. 지난해에는 청소년 수련관이 문을 열었다. 계곡 위쪽에 7만8천평 규모의 어답산 관광단지가 2006년까지 들어설 계획이다. 단지 내에는 관광 펜션과 오토캠핑장 등이 들어선다. 주변 풍광도 수년 사이 많이 변했다. 병지방 인근에 횡성온천이 개발됐다. 5년전 횡성댐 건설로 생긴 횡성호도 지척이다.

자연 속에 숨겨져 있던 병지방 계곡. 웅웅장장한 암벽은 없고 고만고만한 산마을 끼고 있는 아담한 계곡이지만 다른 곳에서 느낄 수 없는 소박한 멋을 느낄 수 있는 곳이다.

▲여행길잡이

▶교통

횡성은 중앙고속도로와 영동고속도로가 지나는 교통의 요지. 중앙고속도로 횡성IC, 영동고속도로 원주IC에서 가깝다. 횡성IC에서 빠져나와 횡성읍 쪽으로 방향을 잡는다. 횡성교를 지나 섬강유원지 표지판을 보고 달리면 섬강과 횡성댐 갈림길. 횡성댐 방향으로 우회전한 뒤 달리다보면 왼쪽에 공사중인 비포장길이 나타난다. 비포장길로 접어들면 병지방 가는 길이다. 이정표가 작아 지나치기 쉬우니 주의해야 한다. 횡성에서 국도 19호선을 타고 홍천 서석면 방면으로 달려도 된다. 호반에 있는 병지방 콩두부집을 지나 갈림길에서 좌회전한 뒤 두번째 나타나는 주유소를 끼고 다시 좌회전하면 횡성온천 방향. 온천을 지나면 자그마한 저수지가 나타나고 계속 달리면 오른쪽에 비포장 병지방길이 이어진다.

▶먹거리

병지방에서는 변변한 식당 하나 찾기 힘들다. 원주IC로 이어지는 원주공항 맞은편 이화식당(033-343-2367)은 30년 전통의 곰탕집이다. 5,000원. 횡성호 가는 국도변의 병지방 콩두부(343-0082)는 직접 집에서 만든 두부 요리를 내놓는다. 순두부 5,000원, 두부전골 2만원부터.

▶숙박

병지방 계곡에는 여관은 없지만 마을주민들이 직접 운영하는 통나무집 산림문화회관이 있다. 큰 방을 제외하고 나머지는 공동화장실을 이용하지만 취사가 가능한 콘도형이다. 방 크기에 따라 3만, 5만, 7만원. 이장집(345-9237). 통나무집 관리하는 집(345-5684). 횡성에는 자연휴양림이 4개나 있다. 병지방에서 가장 가까운 곳은 횡성자연휴양림(344-3391). 둔내면에는 청태산 휴양림(343-9707)과 둔내자연휴양림(343-8155) 등이 있다. 횡성온천(344-4200)은 피로를 풀기 좋은 곳. 온천수는 약알칼리성이다. 온천 바로 앞에는 모텔 어답산 파크장(344-9400)이 있다.

〈횡성/글 최병준·사진 김영민기자 bj@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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