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주목않는 ‘조용한 反戰단식’

2004.09.01 18:28

“1, 3, 5, 7, 9…. 홀수 날만 잘 참으면 먹고 싶은 생각은 사라져요. 14일째를 넘기며 다리가 후들후들 떨렸지만 지금은 힘든 게 없습니다. 기도의 힘이라고 생각해요.” 김재복 수사는 1일 청와대 분수대 앞 사랑방 쉼터에서 38일째 반전단식을 하고 있다. 지난달 27일 오후에 만난 김수사는 지율 스님이 떠난 자리에서 ‘이라크 파병반대, 전쟁반대, 철군’을 요구하면서 단식기도를 하고 있었다.

아무도 주목않는 ‘조용한 反戰단식’

“혹시, 파병반대운동이 이미 끝났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지요? 제가 단식기도를 하는 건 그런 분위기가 싫었기 때문이에요. 노무현 정부가 파병을 강행하면 시민단체들은 투쟁수위를 더욱 높일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우리 군대는 계속 이라크로 가고 있고, 전쟁도 끝나지 않았어요. 자이툰 부대가 이라크에서 뭘 하고 있는지 시민사회에는 정보도 없어요.”

김수사는 가슴에 쌓아두었던 말들을 쏟아냈다. 그러면서 “대안이 없다고 가만히 있을 수만은 없는 것 아니냐”며 청와대 앞에서 단식농성을 하는 이유를 전했다.

“생명을 찾으려고 여기 왔습니다. 우리들의 헌법을 되찾으려 하고, 이라크에 가 있는 우리 군의 철군을 호소합니다.”

김수사가 사랑방 쉼터에 붙인 하얀 종이에는 이같은 내용이 고스란히 적혀 있다. 외국인을 위한 영문판도 마련돼 있다. 그러나 정작 그가 말하고 싶은 것은 반전운동에 대한 기대였다.

“반전운동이 흐물흐물해져서는 안돼요. 반전평화운동가들은 시민들에게 생명의 소중함을 얘기해야 합니다. 시민들이 가슴으로 생명의 소중함을 느끼고, 평화운동의 대열에 동참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그러나 운동이 시끄러운 마이크, 확성기여서는 곤란합니다. 목소리만 크고 감동이 없는 것은 ‘빈 메아리’에 불과하지요.”

김수사는 운동진영에 일침을 놓았다. 8월3일 대규모 촛불집회가 막을 내리기 전까지는 모두 다 공감하는 파병반대운동이었지만, 그 뒤로는 운동에 너무 힘이 빠진 게 아니냐는 자성이 숨어있다. 그는 “미선·효순 여중생 추모집회 때 촛불을 끄지 않았던 것처럼 지금은 ‘전쟁반대 평화’의 촛불을 내릴 때가 아닌 것 같다”고 말했다.

김수사는 지난해 여름과 겨울, 가톨릭교회 청년들과 함께 이라크에 다녀왔다. 바그다드, 모술, 바스라, 키르쿠크 등을 다니면서 물과 전기가 끊긴 전쟁터에서 의료지원 등의 활동을 벌였다.

“정말 죽을지도 모른다는 각오로 이라크에 갔어요. 그런데 정작 죽겠다고 떠난 사람들은 살아 돌아오고, 살아오겠다는 오무전기 노동자들이 피격됐지요. 내가 살아있기 때문에 그들이 죽었다고 생각하니까 가슴이 아픕니다.”

김수사는 “파병은 잘못된 거고 노무현 대통령은 헌법을 위반했다고 말하고 싶다”고 했다. 김수사의 주장은 세상을 바꾸거나 뒤집자는 강력한 성토가 없다. 잔잔한 고백과 자기성찰만 있을 뿐이다.

“소중한 건 사람이에요. 단식하고 있으니까 인왕·북한산 정기도 받고, 새·벌레·바람 소리 모두 느낄 수 있으니 좋아요. 침묵 속에서 글도 쓰고, 자신을 돌아보게 되거든요. 나는 지금 무엇을 해야 하는가. 숨을 마시고 뱉을 때마다 평화의 기도를 외우면서 생각 중입니다.”

〈장윤선 오마이뉴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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