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리보는 영화·소설

(63)연애의 목적

2005.06.01 16:04

[미리보는 영화·소설](63)연애의 목적

그가 빈말을 하고 있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홍은 잠시 유림을 바라보았다. 그로 인해 몇 시간 방 안에 갇혀 있는 동안 홍은 답답하고 괴로웠다. 그가 말도 안돼는 소리로 그녀를 자극하는 말을 할 때마다 창문을 열고 그 못지 않게 대거리를 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를 보내야 한다는 생각으로 간신히 침대에 붙어 있을 수가 있었다.

“알았어요. 제가 나갈게요.”

유림의 얼굴은 초췌했다. 그 몇 시간 동안 괴로웠던 것이 자신만은 아니었다고 생각하며 홍은 최대한 너그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싫어요. 들어가서 얘기해요.”

홍의 표정이 굳어졌다. 3년 동안 단 한번도 연호를 데리고 오지 않는 데에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다. 아니, 이유가 있다고 생각했다.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이유이기에 다른 사람은 이해해주지 않지만 말이다. 하지만 추워 보이는 유림의 얼굴을 보자, 홍은 갑자기 그 모든 이유가 생각나지 않았다.

“이게 무슨 예의예요? 집까지 찾아왔는데, 차라도 한 잔 줘야지.”

유림이 투덜거렸다. 그의 말에 홍은 설렘 같은 것이 마음을 간질이며 살짝 지나가는 것을 느꼈다. 그를 집안에 들이지 말아야 할 새로운 이유를 홍은 떠올렸다.

“알겠어요. 일단 이것 좀 놔요.”

“그냥 지금 들어가도 되잖아요.”

순순히 고개를 끄덕이는 홍이 더욱 수상하게 느껴져, 유림은 문고리를 조금 잡아당겼다. 홍은 그가 하는 대로 내버려두고는 그를 달래듯 말했다.

“옷도 입어야 돼요.”

유림도 어쩔 수 없었다.

“금방 열어줘야 해요.”

홍은 고개를 끄덕이고 문을 닫았다. 유림은 문을 노려보며 서 있었다. 10분이 지나갔다. 유림은 이번에는 문 앞에 쪼그리고 앉아 기다렸다. 다시 10분이 지나갔고, 담배 생각이 간절해졌다. 유림은 담배를 만지작거리다가 5분이 지난 뒤 초인종을 눌러보았다. 안에서는 아무 기색도 없었다.

“나 담배 한대 피울 테니, 다 됐으면 창문에서 말해줘요.”

유림은 홍의 창문 아래에 앉아 담배를 피우며 다시 10분을 보냈다. 가끔 안쪽을 들여다보았지만, 불이 켜져 있다는 것 빼고는 조금 전과 다름없었다. 유림은 차츰 불안해졌다. 그때 건물 계단을 내려서는 홍이 보였다.

“아니, 뭐야? 금방 나오겠다더니 샤워에 화장까지?”

“가요.”

씩씩거리는 유림을 보며 홍이 말했다. 유림은 홍의 팔을 잡았다.

“어딜 가요, 가긴?”

“얘기하자면서요.”

“집에 들어가야지.”

“미쳤어요? 요 앞 커피숍으로 가요.”

홍은 유림의 팔을 뿌리치고 앞으로 걸어갔다. 유림은 기가 막혀 그녀의 뒷모습을 보았다.

“내 이럴 줄 알았어. 아까 분명히 집에서 얘기하기로 해놓고는.”

유림의 목소리를 들으면서도 홍은 아랑곳없었다. 그녀의 뒷모습을 노려보던 유림이 갑자기 그녀에게 달려들었다.

“에이!”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홍은 건물 쪽으로 달려 들어가는 유림의 모습을 보고서야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아차렸다. 그녀의 옆구리에 끼여있었던 지갑이 없어졌다. 지갑에 달려있던 열쇠꾸러미도 함께였다. 홍은 얼른 집으로 달려갔다. 하지만 그녀가 현관으로 달려갔을 때에 유림은 마지막 자물쇠를 열고 안으로 들어서고 있었다.

“여기가, 남자친구도 한 번 못 들어온 금지구역이라 그 말이죠?”

성을 빼앗은 장수처럼 거들먹거리며 유림이 넓지도 않은 방 안을 구석구석 돌아다니고 있었다. 얼굴은 승리감으로 가득했다. 유림은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현관 앞에 우두커니 서 있는 홍을 돌아보았다. 순간 그는 뭔가 어울리지 않는다는 느낌을 받았다. 세련되고 화려한 느낌의 홍이 손님처럼 보일 만큼 방 안은 그녀와는 전혀 다르게 수수했다.

“음… 좋네. 내 방보다 넓다.”

“빨리 나가세요. 좋은 말 할 때. 이선생님, 미친 거 아니에요?”

홍의 목소리가 잔뜩 곤두서 있었다. 그 모습을 보자 어두운 느낌의 방 때문에 위축되었던 유림은 다시 기운이 났다.

“아하… 그러고 보니 청소까지 하셨네? 사람 기다리게 해놓고, 샤워에 청소까지……. 들어올 줄 알았던 거죠? 그렇지 않음 매너가 아니지.”

유림은 키득대며 웃다가 침대 위로 몸을 던졌다.

“차 줘요.”

대 자로 누운 유림이 뻔뻔하게 말했다. 홍은 그런 그를 가만히 내려다보았다. 유림은 그녀를 달래듯 미소를 지었다.

“차만 마시고 나갈게요.”

장승처럼 서 있던 홍은 어쩔 수 없다는 표정이 되어 가스레인지로 갔다. 주전자를 닦고 그 안에 물을 담은 뒤, 가스레인지 위에 올려놓는 홍의 뒷모습을 유림은 말없이 지켜보았다. 학교나 다른 곳에서와는 달리, 그녀의 모습은 한없이 작아보였다. 어떤 것보다도 위축되어 보이는 모습이 자신 때문인지 유림은 잠시 생각을 해보았지만, 그런 것만은 아닌 것 같았다.

“맨날 혼자 밥해 먹어요?”

“네.”

“난 엄마가 해주는데.”

“좋겠네요.”

홍은 관심 없다는 투였다. 유림은 홍이 느끼지 못하도록 조용히 침대에서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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