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

2006.08.01 18:21

천 석들이 큰 종을 보게나 請看千石鍾

크게 치지 않으면 소리가 없다네 非大구無聲

어떻게 하면 지리산처럼 爭似頭流山

하늘이 울어도 울지 않을 수 있을까 天鳴猶不鳴

-남명 조식(1501~1572)의 ‘덕산 시냇가 정자의 기둥에 쓴 시’(題德山溪亭柱)

[옛글의 숨결] 지리산

1555년 남명에게 ‘단성현감’이 제수되었다. 앞서 묵묵히 벼슬을 물리치곤 했던 남명이었지만, 이때는 달랐다. 더이상 썩은 정치를 묵과할 수 없었다. 그는 붓을 들었다. 그리고 조정의 폐정·실정을 신랄하게 파헤쳤다. 이름하여 ‘단성소’(丹城疏). 상소문은 정국을 흔들었다. 특히 명종은 어머니 문정왕후를 세상물정 모르는 ‘과부’로, 묘사한 대목에서 격노했다. 신하들의 만류가 없었다면 남명은 대죄를 면키 어려웠을 것이다.

조정의 심장부에 붓끝을 겨누었던 남명의 기개는 어디에서 연유된 것일까. 경(敬)과 의(義)로 무장한 선비정신이다. 또 산천을 유람하며 기른 호연지기도 한몫 했을 터이다. 가야산 자락에서 태어났지만 남명은 유독 지리산을 좋아했다. ‘남명집’은 그가 58세 때까지 12번 지리산에 올랐다고 적고 있다. 선현 가운데 최다 등반기록이다. 61세 때는 아예 천왕봉 아래 덕산으로 거처를 옮겼다. 그곳에서 학문을 닦고 후학을 길렀다. 정인홍·곽재우 등 내로라하는 의병장들은 대부분 그의 문인이다. 실천적인 유학자 남명, 그리고 그의 ‘사상의 고향’ 지리산. 이 여름, 그 산에 가고 싶다.

〈조운찬 문화1부 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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