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칼럼

러시아 정치 엘리트들의 편집증

2006.12.01 17:58

〈안드레이 피온트코프스키/모스크바 전략연구소장〉

정치에 관한 러시아 속담에 미국과 러시아의 관계는 미국 대통령이 공화당 출신일 때 더 좋다는 말이 있다. 이 속담의 문제점은 그 뒤에 놓여있는 편집증적 사고방식이다. 이 속담은 지정학적 적대 국가라는 러시아·미국 관계의 성격이 냉전이 종식된 이후에도 근본적으로 변하지 않았다는 뜻을 내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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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사고 방식을 지닌 정치·언론 등 러시아 엘리트들은 최근 몇 년 간 러·미 관계를 악화시키기 위해 열심히 노력했다. 러시아는 폭격기, 잠수함, 항공모함 등 최첨단 무기를 중국에 판매한다. 러시아가 이란의 핵 개발을 지원하는 것도 자기 파괴적이고 어리석은 행동의 범주에 포함된다. 러시아는 이란의 발전용 핵원자로 건설을 도울 뿐 아니라 이란을 제재하려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노력에도 적극 동참하지 않는다.

미국과 불화를 일으키고자 사용하는 수단에 이 같은 외교적 방해만 있는 것은 아니다. 엘리트들은 미국이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회원국을 전 동구권 국가로 확대하면서 러시아를 위협하고 있다고 국내 여론을 자극한다. 자신들의 영향력을 유지하기 위해 미국의 이미지를 러시아의 영원한 적대국가로 포장해야 한다고 느끼는 것이다.

물론 이런 적개심은 소련 시절에 보던 것과는 다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미국의 탄도미사일 요격 방어망을 뚫을 수 있는 새로운 미사일이 러시아에서 개발됐다는 소식을 알리기 위해 TV카메라 앞에 서야 한다고 생각한다.

푸틴의 조언자들이 이런 진부한 성명을 발표하도록 푸틴을 고무하는 이유를 추측하려면 러시아인들의 상실감을 먼저 이해해야 한다. 러시아인들은 러시아가 더이상 강대국이 아니라는 데 불만을 느끼고 있다. 이 같은 정신적 외상은 러시아의 지도자들에게 더 깊다. 그들은 강하고 완고한 콤플렉스를 갖고 있으며 미국과 서방은 러시아의 궁극적인 적이라고 생각한다.

철학자 데카르트는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고 말했다. 러시아 지도자들은 “나는 미국에 저항한다, 고로 나는 위대하다”는 신조로 살아가는 것처럼 보인다.

최근 주간지 ‘모스크바 뉴스’의 편집장 비탈리 트레티야코프가 쓴 글을 생각해보라. 그에 따르면 “민주당원의 대통령 당선은 부시 행정부의 야만적 제국주의보다 더 나쁜 것”이다. 공화당원들은 러시아가 아닌 이슬람 테러리스트와 ‘불량 국가’를 겨냥하고 있다. 그러나 민주당 행정부에선 러시아의 권위주의, 인권 침해 등이 비난의 주요 대상이 될 수 있다. 그래서 트레티야코프에겐 나쁜 부시와 공화당원들이 매우 나쁜 민주당원보다 더 나은 것이다. 그의 병적인 논리는 러시아에 뿌리 내린 편집증적 시각을 완벽하게 반영하고 있다.

그러나 만약 나토가 붕괴되고 이슬람이 승리한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그 다음엔 누가 아프가니스탄에서 중앙아시아에 이르는 러시아 남부 국경으로 향하는 이 엘리트들의 전진을 막을 것인가. 외교적 편집증의 문제점은 그들이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다는 게 아니다. 현실의 적과 가상의 적 사이의 차이를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없다는 게 문제다.

〈정리|최희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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