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고

2008.01.01 17:30

[옛글의 숨결]각고

송나라 주희 선생이 아들을 공부시켜 타관으로 보낼 때에는 ‘근근’(勤謹:부지런하고 삼감) 두 글자로 경계하였고, 선생이 임종시를 당해서는 제생(諸生)들에게 ‘견고각고’(堅固刻苦:뜻을 굳게 갖고 열심히 노력하는 것) 네 글자를 당부하였다. 이 전후 여섯 글자야말로 어찌 후학(後學)들이 죽을 때까지 가슴에 새겨둘 것이 아니겠는가. -우암 송시열(1607~1689)의 ‘돈암서원의 유생에게 써서 보이다’(書示遯巖院儒, ‘송자대전’에서)

우암 송시열은 깐깐하다. ‘존주대의’(尊周大義)와 복수설치(復讐雪恥)를 외치며 북벌정책을 추진하던 모습을 떠올려보라. 그는 고집불통이다. 자신의 주장은 금과옥조였고, 반대의견을 내는 사람은 모두 원수였다. 그는 냉혈한이다. 많은 사람들의 손에 피를 묻힌 조선시대 사화·당쟁의 한 가운데에 우암이 있었다. 그에 대한 부정과 폄훼의 극치는 조선이 ‘송시열의 나라’였다는 말이다.

그러나 송시열도 인간이었다. 한 가정의 가장이었고, 따뜻하면서도 엄격한 스승이었다. 고희를 막 넘긴 해, 53년을 해로한 부인 이씨가 세상을 뜨자 “당신의 운명이 기구하여 나같이 못난 사람과 짝이 되었다”며 통곡했다. 자식과 제자들에게는 성실과 근면을 학문의 요체로 삼을 것을 강조하곤 했다. 지금 예술의전당 서울서예박물관에서 열리고 있는 우암 탄생 400주년 기념전은 이러한 우암의 삶의 철학과 인간적인 면모를 확인할 수 있다. 그 가운데 초서로 쓴 세로 164㎝, 가로 82㎝의 대자서 ‘각고(刻苦)’는 기개와 열정을 느끼게 한다. 우암이 돈암서원 유생에게 당부한 글 가운데에서 취한 ‘각고’ 두 글자는 제자 유명뢰에게 써 주었던 것이다. ‘어려움을 견디며 몸과 마음을 다하여 노력하자’는 이 말. 새해 아침, 모두가 되새겨야 할 금언이 아닐까.

〈조운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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