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에서-‘법구경’

2008.01.01 18:44

사십대 중반에 제주에 와서 꽃을 그리다 보니 해가 또 가고, 어느덧 칠십을 바라보는 백발 노인이 되었다. 하얀 턱수염을 자르고 또 자르는 할아버지가 되었지만 내 마음은 언제나 편안하다. 하지만 갈등이 없는 것은 아니다. 서해의 기름 유출 사고로 온 국민이 피땀을 흘리고 있는가 하면, 정치판은 진보와 보수 간에 탐욕스러운 얼굴들로 중상모략, 배신, 거짓말, 증오의 충돌로 아수라장으로 얼룩져 온 국민을 불안하게 만들었다. 늙은 촌로의 가슴이 펄렁거린다. 우리의 자화상이 저런 모습인가 한숨만 나온다. ‘그래도 희망을 갖고 미래를 바라보자.’ 마음을 추스르고 평상심으로 돌아가 그림을 그리고, 지우고, 그리는 반복의 시간이다.

[책읽는 경향]제주에서-‘법구경’

나는 ‘제주 생활의 중도(中道)’란 주제로 그림을 그린다. 중도란 집착을 끊어버리고 치우치지 않는 마음. 모든 사물은 평등하다는 내용을 중심축으로 그림을 그린다. 이러한 정신적 체계는 한 권의 책에서 크게 영향을 받았다. 서울 생활을 접고 제주에 온 이유도 이 책의 영향이 크다. 그 책은 ‘법구경’이다.

기원전 인도의 법구란 스님이 인생의 지침이 될 글들을 모아 엮은 아름다운 법구이다. 나이가 들어서일까, 조용하고 편안함이 좋다. 편안한 마음은 어디에서 오는가, 행복한 마음은 어디에서 만들어지는가를 답해주는 ‘법구경’을 권하고 싶다. 그 가운데 내가 좋아하는 시구를 소개한다.

‘無慾無有畏 恬담(마음심 변에 불화 둘)無憂患 무욕무유외 염담무우환

欲除使結解 是爲長出淵 욕제사결해 시위장출연.’

‘사람은 욕심 때문에 온갖 번뇌 망상이 다 생겨 마음의 안정을 찾지 못하고, 두려움과 괴로움에 시달리고, 욕심을 버리면 마음의 안정을 찾아 고요해지고, 근심 걱정이 없으면 번민의 수렁에서 벗어나게 된다.’

〈화가 이왈종|제주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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