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십대 중반에 제주에 와서 꽃을 그리다 보니 해가 또 가고, 어느덧 칠십을 바라보는 백발 노인이 되었다. 하얀 턱수염을 자르고 또 자르는 할아버지가 되었지만 내 마음은 언제나 편안하다. 하지만 갈등이 없는 것은 아니다. 서해의 기름 유출 사고로 온 국민이 피땀을 흘리고 있는가 하면, 정치판은 진보와 보수 간에 탐욕스러운 얼굴들로 중상모략, 배신, 거짓말, 증오의 충돌로 아수라장으로 얼룩져 온 국민을 불안하게 만들었다. 늙은 촌로의 가슴이 펄렁거린다. 우리의 자화상이 저런 모습인가 한숨만 나온다. ‘그래도 희망을 갖고 미래를 바라보자.’ 마음을 추스르고 평상심으로 돌아가 그림을 그리고, 지우고, 그리는 반복의 시간이다.
나는 ‘제주 생활의 중도(中道)’란 주제로 그림을 그린다. 중도란 집착을 끊어버리고 치우치지 않는 마음. 모든 사물은 평등하다는 내용을 중심축으로 그림을 그린다. 이러한 정신적 체계는 한 권의 책에서 크게 영향을 받았다. 서울 생활을 접고 제주에 온 이유도 이 책의 영향이 크다. 그 책은 ‘법구경’이다.
기원전 인도의 법구란 스님이 인생의 지침이 될 글들을 모아 엮은 아름다운 법구이다. 나이가 들어서일까, 조용하고 편안함이 좋다. 편안한 마음은 어디에서 오는가, 행복한 마음은 어디에서 만들어지는가를 답해주는 ‘법구경’을 권하고 싶다. 그 가운데 내가 좋아하는 시구를 소개한다.
‘無慾無有畏 恬담(마음심 변에 불화 둘)無憂患 무욕무유외 염담무우환
欲除使結解 是爲長出淵 욕제사결해 시위장출연.’
‘사람은 욕심 때문에 온갖 번뇌 망상이 다 생겨 마음의 안정을 찾지 못하고, 두려움과 괴로움에 시달리고, 욕심을 버리면 마음의 안정을 찾아 고요해지고, 근심 걱정이 없으면 번민의 수렁에서 벗어나게 된다.’
〈화가 이왈종|제주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