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공 뛰어 넘어 입체적 ‘서울 구경’

2008.05.09 17:41
손제민·사진 강윤중기자

‘서울은 깊다’ 출간 전우용 교수

갑작스러운 소나기가 쏟아진 뒤 갠 지난 7일 오후 서울 종묘 앞 공원. 인근 처마 밑, 나무 밑, 지하도 등에 피신했던 노인들이 각자의 자리로 돌아와 앉았다.

[이사람]시공 뛰어 넘어 입체적 ‘서울 구경’

“저 노인분들은 전차가 달리던 옛 종로의 모습을 기억하겠지만, 대다수 사람들은 왜 서울역에서 청량리로 뻗은 노선이 지하철 1호선인지 알지 못하고 알려고도 하지 않습니다. 더구나 110년 전 이 길 위에서 벌어졌던 장중한 행렬을 기억하는 사람은 이제 아무도 없습니다.”

최근 ‘서울은 깊다’(돌베개)를 출간한 전우용 서울대병원 병원역사문화센터 교수(46)가 종묘 앞에서 이렇게 말했다.

‘110년 전 장중한 행렬’은 1897년 덕수궁 대안문에서 종로를 거쳐 청량리 홍릉까지 이어졌던 명성황후의 국장 행렬과 그후 있었던 고종의 홍릉 행차를 말한다.

이 ‘퍼레이드’들은 국운이 쇠약했던때 왕이 백성에게 보여주는 정치적인 ‘축제’였다. 1년 뒤 이 길을 따라 국내 최초의 전차가 개설됐다. 전차 차량이 거대한 상여를 연상케도 했다지만 전차는 국장 행렬과 왕의 능행길을 지켜봤던 서울 사람들의 환호 속에 첫 운행을 했고, 꼭 70년간 서대문에서 청량리까지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태워날랐다. 전차를 없앤 김현옥 당시 서울시장의 바람대로 자동차가 그 길을 메우는 대신 지하철 1호선 착공이 이뤄진 것은 그로부터 2년 뒤인 1970년.

세운상가와 노인들로 상징되는 쇠락한 이미지에도 불구, 종로가 여전히 서울의 중심으로 인식되는 데는 이처럼 켜켜이 쌓인 무언가가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걸 다 기억하면서 종로를 지나가는 사람들은 이제 없다. 다 잊었다고 해야 할 것이다.

명성황후 능은 고종 사후인 1919년 남양주로 옮겨져 합장됐고, 1929년 ‘경성전기주식회사이십년연혁사’는 전차에 관한 고종의 ‘기획’을 “능행길 비용이 너무 들어서 설치했다”라며 ‘코미디’로 만들어버렸고, 능행길 ‘퍼레이드’에 앞서 동대문에서 홍릉까지 조성됐던 국내 최초의 가로수 백양목들은 1933~34년 도로확장 과정에서 모두 베어졌다. 전 교수는 “1968년 종로 전차 궤도가 철거될쯤에는 이미 더 이상 잊을 것조차 아무것도 남지 않은 상태였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기억하는 것만이 역사가 아니라 잊어버리는 것도 역사”라고 했다. 어떤 것은 눈 앞에서 사라졌고, 그래서 기억 속에서도 사라졌지만 그것들이 왜 잊혀졌는가 따져보는 것이 지금 우리의 진짜 모습을 아는 데 중요하다는 뜻으로 읽혔다.

‘서울의 시공간에 대한 인문학적 탐사’라는 부제가 달린 그의 책은 서울이라는 도시 공간이 얼마나 켜켜이 쌓인 ‘깊이’를 갖고 있는지, 그 깊이가 지금 서울시민들의 삶을 어떻게 규정하고 있는지 탐색하려 한 시도다. 그가 훈련 받은 전문 역사학자라는 점은 건축학, 도시계획학, 미술사 등의 입장에서 서울 도시사를 다룬 기존 시도들보다 넓고 깊게 들어갈 수 있게 해주었다. 게다가 서울시립대 부설 서울학연구소에서의 10년은 그에게 도시계획학, 도시공학, 경제학, 사회학, 건축학, 행정학, 토목학, 조경학, 문화인류학 등 도시와 관련한 다양한 분야를 섭렵하게 해주었다.

그는 책에서 ‘서울’이라는 말의 본 뜻를 살피는 데서 시작해, ‘똥개’ ‘땅거지’ ‘무뢰배’ ‘깍쟁이’ 등의 유래를 추적하며 서울의 생태와 풍속을 되살려내는가 하면, ‘청계천’ ‘종로’ ‘덕수궁 분수대’ 같은 상징물들의 변화에 담긴 의미를 추리해내기도 하고, ‘물장수’ ‘복덩방’처럼 사라져버린 문화를 회고해주기도 한다.

그가 요즘 사람들이 기억해주길 바라는 것 중의 하나는, 서울의 역사와 문화에 존재하는, 고관대작의 큰 집 한 채에 붙어있는 여러 채의 작은 집들이라는 골목 안 택지구성이 만들어낸 가진 자와 못 가진 자의 연대감이다. 이것은 ‘초고층 주상복합’이 일반화하는 등 점점 도시 공간이 경제력에 따라 분리되는 현재의 한국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21세기는 ‘문화의 시대’라고들 하더군요. 그런데 여기서 문화는 새 시대의 잘 팔리는 신상품으로만 이해됩니다. 자기 삶을 바꿀 것인지 말 것인지, 바꾼다면 어떻게 바꿔야 하는지 망설이고 고민하는 사람들 앞에 기업들은 아름답게 포장된 문화라는 신상품을 내놓고 모든 고민거리를 ‘지갑을 여는 문제’로 단순화했습니다. 그 탓에 문화콘텐츠와 상품은 넘쳐나지만, 우리 삶에 정말 영향을 미치고 있는 역사와 문화가 무엇인지 제대로 알지 못하고 있습니다.”

‘서울은 깊다’는 그가 하려 하는 서울 도시사 작업의 절반이다. 조선 개국부터 일제 강점 전까지만 다뤘기 때문이다. 일제 강점기 이후부터 강남이 서울의 판도로 들어오는 1960년대 이후까지가 미완성된 절반이다. 그는 “나머지 절반을 언제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했다. 문제는 기록이다. “조선후기 때보다 일제강점기 때 기록이 더 적고, 일제강점기 때 기록보다 최근 기록이 더 적은” 역설적 현실 때문이다.

“개인적 차원에서는 근대로 넘어오면서 옛것에 대한 회의와 저주 때문에 기록을 파기해버린 측면이 있고, 공적인 차원에서는 강남개발 등에 관련한 중요한 국가문서가 투명하지 않았던 문제 때문에 기록으로 제대로 보관하지 않는 측면이 많아요.” 문화의 시대를 얘기하는 지금, 언제까지 그와 같은 역사학자들의 눈밝음과 발품팔이에만 기댈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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