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대군주 루이 14세와 왕권신수설

2008.12.01 15:19
류회명 연구원|한우리독서논술연구소

르네상스 시대, 대항해 시대를 거치면서 유럽의 힘은 점차 커져갔습니다. 특히 16세기 이후에는 중세의 봉건 제도가 무너지고 국왕 중심의 중앙 집권과 국가 통일이 이루어져 절대주의, 절대왕정 시대가 열리게 됩니다. 그리고 역사가들은 절대왕정을 대표하는 왕으로, 절대군주의 상징으로 프랑스의 루이 14세를 이야기합니다. 그 이유는 무엇인지 알아봅시다.

[어린이 역사논술]절대군주 루이 14세와 왕권신수설

16세기 이후 유럽의 각국은 해상 무역의 주도권과 지배권을 놓고 한판 전쟁을 벌였다. 그 결과 해상 무역의 주도권은 에스파냐와 포르투갈에서 네덜란드로, 그리고 네덜란드에서 영국과 프랑스로 넘어갔다. 이 시기 유럽 각국이 해상 무역의 주도권을 놓고 싸움을 벌인 이유는 무엇일까. 당시 유럽 각국은 국내외의 상업 활동을 보호하려 했고, 식민지를 세워 원료 공급지와 해외 시장을 확보하고자 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강력한 왕이 등장하여 병력을 키우고 많은 군대를 확보할 필요가 있었다. 이를 계기로 절대왕정이 등장한 것이다. 특히 종교 개혁 이후로 종교와 교황의 힘이 약화되고, 상대적으로 국왕의 힘이 커지면서 강력한 국왕 중심의 시대, 이른바 절대주의, 절대왕정 시대가 열린다.

절대주의란 국왕이 아무런 제약을 받지 않고 국가의 모든 힘을 행사하는 정치 형태를 말하는데, 이를 이론적으로 뒷받침하기 위해 왕권신수설이 등장했다. 왕권신수설이란 국왕의 권리는 신에게서 받은 절대적인 것이므로 사람들이나 의회에 의하여 제한되지 않는다는 내용이다. 이에 따라 국왕은 군사권, 외교권, 재정권, 재판권 등 나라의 모든 힘을 가졌다.

그리고 절대주의 시대를 대표하는 인물은 단연 프랑스 왕 루이 14세다. 역사가들이 17세기 후반을 ‘루이 14세 시대’라고 부를 정도다. 그를 일컫는 말인 ‘태양왕’ ‘대군주’, 그리고 “짐이 곧 국가다”라는 말은 루이 14세의 힘이 어떠했는가를 짐작하게 한다. 루이 14세는 왕이 됨과 동시에 왕권을 강화하고 나라의 힘을 키우는 데 온 힘을 기울였다. 이를 위해 즉위 초기 재정 전문가인 콜베르를 등용하여 국가 재정을 확대시켰고, 유럽 각지의 숙련공들을 데려와 프랑스 노동자들이 기술을 익히도록 했으며, 외국과의 경쟁에서 국내 산업을 보호·육성하기 위해서 수입품에 높은 세금을 내도록 했다. 이처럼 강력한 통제와 보호 속에서 프랑스의 산업은 발전했고, 해외 무역도 증가해 프랑스는 부자 나라가 됐다. 그리고 이런 막대한 재력은 프랑스 군대를 당시 유럽에서 가장 강력한 군대로 만들었다.

베르사유 궁전(사진)은 루이 14세의 위세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건축물이다. 40여 년간의 공사 끝에 만들어진 베르사유 궁전은 오로지 ‘태양왕’을 위한 것이었다. 당시 베르사유 궁전에는 루이 14세를 중심으로 약 1만5000여 명의 사람들이 살았는데, 이 궁전은 프랑스 상류 귀족들이 모이는 사교계의 선망의 대상이었고, 유럽 문화의 중심지였다. 이 궁전에서 이루어진 궁중 생활의 하나하나가 당시 유럽 귀족 사회의 표준이 됐을 정도다.

루이 14세는 유럽에서 가장 강력한 절대 국가를 건설해 반세기 동안 국제 정치를 좌우한 절대군주의 상징입니다. 루이 14세가 주장한 왕권신수설은 17세기 유럽에 퍼져 각국이 절대군주제를 채택하도록 했으며, 그가 수립한 절대군주제는 18세기 후반까지 유럽의 대표적인 정치 형태로 유지됐습니다. 이뿐만 아니라 베르사유 중심의 궁정 문화와 예술은 전 유럽에 영향을 미쳐 프랑스를 유럽의 중심이 되도록 했습니다.

함께 해봐요

1. 16세기 이후 유럽에서 절대주의가 등장하게 된 배경은 무엇인가요?

2. 루이 14세가 절대군주의 상징으로 불린 이유를 생각해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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